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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⑤

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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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으로 파멸하는 ‘놀이하는 인간’

권력 특혜 의혹으로 번졌던 사행성 게임기 ‘바다이야기’

‘바다이야기’는 사행성 업자들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권력 주변의 수상한 이권 탐닉이 손잡고 만든 더러운 결과물이다. 국민참여를 내세웠던 정부가 내부의 부패로 무너져 내린 것은 진보세력의 개혁노선을 지지한 자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다. 그 권력이 도덕성을 가장 큰 덕목으로 널리 선전했기 때문에 그들이 더러운 이권에 연루된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분열주의자들, 우익 기득권자들, 영남 패권주의자들이 다시 득세하는 물꼬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환멸은 더 커졌다.

바다이야기

1902년에 서울 주재 이탈리아대사이던 카를로 로제티는 구한말 한국인의 속내를 들여다본 뒤 “도박에 대한 열정은 모든 한국인이 천부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쓴다. 한국인을 타고난 도박꾼으로 보았단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쌍륙 놀이가 대세였다. 양반과 기생들이 돈을 놓고 쌍륙 노름에 빠지고, 사대부가의 부녀들도 규방에 모여 쌍륙 놀이를 즐겼다. 쌍륙은 조선 전기에는 귀족층이 즐기던 놀이였는데, 중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서민층에까지 널리 퍼졌다. 놀라운 것은 정약용이나 박지원도 이 쌍륙 노름 마니아였다는 사실이다.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던 1799년에 절도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경자년 봄에 촉석루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심 비장과 함께 저포 노름을 하여 3000전을 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벌써 19년이 지났는데도 어제의 일처럼 역력합니다.”(유승훈, ‘다산과 연암, 놀음에 빠지다’)



구한말에는 투전과 골패라는 도박이, 일제 강점기에는 마작이, 이즈막에는 고스톱 판이 벌어진다. 놀이는 사람의 본능이니 그걸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중독’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독은 주체의 의지 바깥에서 흘러넘치는 잉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때 잉여는 어떤 주체적 삶의 생산에도 관여하지 않고 한없는 소비를 낳는다. 중독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되는 행복감을 통제하려는 시도”(크레이그 네켄, ‘중독의 심리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 안의 자유의지를 잃고 혼돈 속에서 표류하는 것이다. 중독자는 주체의 운명을 주체 아닌 것에 떠맡겼다는 점에서 이미 죽은 자다. 중독자는 인과적 결정론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위조하며 위조된 자기가 진짜 자기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의 삶은 중독이라는 환각 안에서 존재를 오작동하며 존재를 무의미하게 방출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이 많은 한국인은 특히 갖가지 중독에 취약하다. 이미 ‘도박중독’에 이른 사람이 3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 300만명이 탕진한 것은 재산만이 아닐 것이다. 재산만이 아니라 인격, 정서적 자산, 인간관계들도 하나씩 깨지고 줄어든다.

그렇다면 왜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조차 중독의 정서적인 논리 앞에 무너지는가?

중독은 정서적인 층위에서 시작한다. 크레이그 네켄은 ‘중독’에 대해 “중독자가 친밀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정서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문제는 정서적인 착각이다. 대개의 중독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내부로 움츠러드는 사람들이고, 물질이나 행동과 사회에서 용인하는 수위를 훨씬 넘어서서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울함과 외로움과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중독에 의존한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도박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편으로는 ‘분명히 딸 것’을 믿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 주에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떠올린다. 내면에서 정서적인 압력이 쌓인다. 중독에는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정서적인 긴장을 해소시키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자신의 충동에 굴복한다. 이 기회를 붙잡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난 후에 굴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크레이그 네켄,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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