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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⑤

“느리게 사는 삶이 조화로운 것 같아요”

천연염색하는 작은 거인 이성래의 보성 초은당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느리게 사는 삶이 조화로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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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초은당 사랑채의 장판빛, 검은 듯 가라앉은 푸른빛이 바로 쪽에서 얻은 벽색이란 얘기다. “홍화의 붉은빛에도 치자의 노란빛에도 다 그런 변화의 단계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게 너무 한순간에 지나가버려 쪽처럼 뚜렷하지가 않아요. 선생님은 비뚤어진 선을 아름다움으로 쳐줬어요. 그게 가장 큰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반듯하게 만들려고 하는 긴장이 아름다운 것이지 반듯하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런 언질은 그가 아름다움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손으로 매만진 정성 어린 노동이 미(美)의 최상을 이룬다는 것도 깨달았다.

“도구를 써서 반듯하게 만드는 짓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라고 하셨죠.”

도자기든, 집이든, 가구든 너무 매끈한 면과 반듯한 선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까닭이다. 자로 그은 듯 반듯한 것은 자연의 선이 아니다. 자연은 적당히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다. 자연을 닮은 선과 면이 우리를 푸근하게 만든다.

한창기 선생에 이어 한상훈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어쩔 수 없이 그도 징광을 떠났다. 징광에 늘 찾아와 요가를 가르치던 분 중에 윤두병 선생이 계셨다.



“모리거사라고 부르던 분이셨어요. 기인이셨죠. 도솔사에서 승려생활을 하다 환속하셨고 독재에 항거하다 옥고도 치르셨다고 들었어요. 태극권과 수박도를 하셨어요. 그분을 따라 경남 거창으로 갔지요.”

스승을 찾아 떠나는 순례였다. 배움이 목말랐다. 아름다움을 위해 살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눈과 몸이 반쯤만 만들어진 상태여서 목마름이 더욱 컸다. 그의 눈에 모리거사는 호연지기를 가진 어른이었다. 별명으로 쓰는 모리(某里)는 ‘어떤 마을’이란 의미로 하늘 아래 모든 곳을 내 집으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그는 거창에서 지향이 비슷한 이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 거기서 이씨가 새로 만난 스승이 김광현 목사였다.

“그분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목회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 흙을 파서 농사를 짓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땅목사’이셨어요. 그분은 나라는 소우주를 자연이라는 대우주와 하나가 되게 풀어놓으라고 하셨지요. 자연에 합일하는 정신을 목사님께 배웠어요. 자연 속의 나무와 풀이 우리 몸에 어떻게 약이 되는지도 배우고요. 거기서 다석 유영모 선생의 ‘예수와 기독교’,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장일순 주교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나님’,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의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었습니다. 참 종교가 뭔지를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성래씨가 말하는 책은 그냥 독서용 책이 아닌 것 같다. 머리맡에 놓고 책장이 반질반질 닳게 매만지면서 정신을 흡입하는 양식이랄까. 책 제목을 하나씩 말하는 데서 그런 몰두와 애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금도 그 책은 초은당 찻방에 귀하게 꽂혀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출판했던 민중자서전도 거기 꽂힌 책 목록 중 하나다.

아내 박정신씨도 김광현 목사 댁을 드나들던 이였다.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두 살 위 오빠가 사고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인생의 좌표를 잃은 채 기우뚱대던 처녀였다. 그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구들방 치료를 위해 거창에 머물던 중이었다.

“김 목사님 댁에 갔더니 연주 아빠(이성래씨)가 차를 내오더라고요. 차 한 잔에 지극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도대체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는 모습이 그날 제 눈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아 보였습니다.”

박정신씨는 오빠를 잃고 방황하다 도법 스님의 실상사 귀농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농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연 속에서 농사짓고 살면 몸과 마음에 스민 절망과 우울이 풀릴 것 같았다. 서른이 넘은 동갑내기 처녀총각은 서로에게 진지하게 이끌린다. 농촌에서 살고 싶은 박정신에게 농촌에서 살 준비가 완료된 이성래가 ‘신선처럼’ 때맞춰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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