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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한반도 전쟁소설

2014

11장 38선(線)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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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한국군 장성 두어 명이 소리쳤고 박수 소리까지 들렸다가 곧 조용해졌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8월10일 자정까지 철군하지 않을 때는 북한 영토를 침입한 것으로 간주해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오늘 방송은 인터뷰 형식이 아닌 성명발표다. 발표를 끝낸 이동일의 영상이 사라지자 상황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서로 중구난방 떠들던 장성들은 외침소리에 조용해졌다. 참모장 해리슨이다.

“조용! 간부들은 회의실로!”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소리쳤다.

“5분 후에 회의 시작이야!”

“아직도 자기가 북한 통치자라고 믿는 것 같군.”

화면이 꺼졌을 때 후성궈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헤드셋을 벗은 후성궈가 말을 잇는다.

“저런 임기응변력을 경제발전에다 응용했다면 남한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제 독재정권 연장에만 머리를 썼으니 말야.”

“사령관, 전화 왔습니다.”

후성궈가 혼잣소리로 분개하는 동안 전화가 온 것이다. 옆으로 다가선 양훙이 전화기를 내밀고 서 있다. 후성궈의 시선을 받은 양훙이 말했다.

“주석 동지올시다.”

시진핑이다. 후성궈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받고는 귀에 붙였다.

“예, 주석 동지. 후성궈입니다.”

“방금 평양 방송을 보았소.”

시진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으므로 후성궈는 긴장한다.

“예, 주석동지.”

“전황(戰況)은 어떻소?”

“반란군 소부대가 부딪치고는 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소?”

시진핑이 불쑥 물었으므로 후성궈는 심호흡을 했다. 그렇다. 187포병여단이 궤멸당한 후에 후성궈는 적극적인 작전을 건의했다. 그것은 ‘평양점령’ 작전이다. 사방에서 평양을 포위하고 대항하는 몇 개 부대만 격퇴하면 사흘 안에 평양을 함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후성궈가 대답했다.

“예, 주석 동지. 이대로 시간이 가면 저희들이 불리합니다.”

더구나 조금 전에 김정일이 중국군 철수를 기한까지 정해놓고 공공연히 요구한 것이다. 망설일 여유가 없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김경식을 시켜 북조선 지도부의 정통성을 공격하시오. 그리고 결전에 대비하시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6시, 개전 11일째. 오산 한미연합사 사령부 벙커 안. 상황판을 응시하는 연합사 지휘관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거대한 상황판에는 수많은 전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푸른 등이 한국군이다. 휴전선 근방에서부터 북한 전역은 무수한 등으로 표시되었고 그 하나하나가 단위부대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 영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푸른 불덩이가 시선을 끌고 있다. 바로 105기갑사단이다. 사리원 아래쪽 봉산에 주둔한 105기갑사단은 그 좌우로 820전차군단이 호위하는 형식으로 5개 여단이 배치되어 있는데다 그 아래쪽 고속도로 주변에 14개의 한국군 단위부대가 배치되었다. 105기갑사단을 고립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북상시킨 기갑부대, 대전차부대, 포병연대, 미사일대대, 그리고 군수지원단 등이다.

또한 그들을 지원하려고 이미 확보된 고속도로를 통해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2개 사단 병력이 북상하고 있다. 전연지대의 서부지역인 제4군단이 통로를 개방했기 때문에 이제 황해남도는 교전이 끝난 상태였고 황해북도에 한국군이 진루하는 중이다. 이것은 모두 105기갑사단의 전격적인 전진과 북한 820전차군단의 응원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한 ‘인민혁명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105기갑사단은 전선에서 애를 먹었을 것이다. 상황판을 응시하던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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