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고승철의 읽으며 생각하기

한국에 싹튼 인문학의 뿌리는?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한국에 싹튼 인문학의 뿌리는?

2/2
혁명, 사랑, 아나키즘 추구한 박열

개화기에 의사, 교육자로 활동한 이만규(1889~1978)가 쓴 ‘조선교육사’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실증사학에 따라 교육사를 살핀 책이다. 화랑도 교육을 매우 높이 평가했고 교육 면에서 일제강점기를 민족교육파멸기라고 규정했다. 저자는 경성의학교를 나와 개성에서 개업의로 일했으나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배화여학교 등에서 25년간 교편을 잡았다. ‘조선교육사’에 대한 강의를 진행한 정미량 박사는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현재 남북한 대부분의 한국교육사 개설서는 이 책을 재인용하는 것만 봐도 고전의 위치에 오른 책”이라 평가했다.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박열(1902~74)은 애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국왕을 테러로 제거하려다 붙잡혔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일본인 판사에게 반말을 하는 등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일본 국왕을 죽이려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에 당황한 판사는 비공개 재판으로 얼른 바꾸었다. 박열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0여 년간 일본에서 영어(囹圄)의 몸으로 지냈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48년에 출판한 ‘신조선혁명론’에서 우리 민족에 알맞은 민주주의와 좌우분열을 극복할 통일전선을 강조했다.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한 논리였다. 오제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혁명, 사랑, 아나키즘 이 세 가지 단어가 박열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신남철(1907~58?)의 저서 ‘역사철학’은 같은 제목의 다른 책과는 달리 치열한 현실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담았다. 경성제국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미야케 교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광복 후 서울대 교수가 된 그는 1948년 1월에 이 ‘역사철학’을 펴낸다. 곧이어 5월에는 ‘전환기의 이론’이라는 책을 냈고 6월에는 월북한다. 6·25 때 그는 남한에 내려와 서울시 문화부장 자리에 앉는다. 신남철은 피란을 가지 못한 옛 동료 박종홍 서울대 교수와 조우했는데 북한 체제에 약간 실망한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기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던 김동석(1913~53?)이 지은 ‘뿌르조아의 인간상’은 1949년 2월에 나온 평론서다. 4월에 재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안회남, 김동리, 이광수, 김광균 등의 작품에 관한 평론을 수록했다. 이광수와 김동리 같은 우파 진영의 작가에 대해 혹평을 퍼부었다. 김동석은 인천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공부했다. 그는 ‘뿌르조아의 인간상’을 낸 후 몇 달이 지나 월북한다. 전쟁 때는 인민군 통역장교로 남한에 왔는데 그 후로는 활동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 전후에 국내 최고의 경제사학자로 인정받던 백남운(1894~?)은 1949년 2월22일부터 4월7일까지 소련을 방문했다. 북한의 내각교육상 자격으로 갔다. 소련 방문기를 정리한 책이 ‘쏘련인상’이다. 강의 진행자인 이상호 박사는 “이 책을 분석하면 당시 지식인의 최고봉인 백남운의 시각을 통해 북한의 대외인식, 특히 사회주의 대국 소련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 배성룡(1896~1964)의 ‘농민독본’은 지식인 시각에서 농민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한 책이다.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는 “이 책은 농민을 각성시켜 스스로 권익을 쟁취하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농민민주주의’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서구 미학사상을 국내에 제대로 소개한 선구자 김태오(1903~76)는 1950년에 ‘미학개론’ 초판을 펴냈다. 문필가, 심리학자, 철학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저자는 독일 학풍에 영향을 받아 심리학적 미학 분야에 천착했다. 강의 진행자였던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한편으로는 지루했지만 당시에 이런 고민을 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북한 학자 홍기문의 ‘조선신화연구’는 우리 고대사의 맨 앞을 차지하는 역사를 정확히 보자는 의도를 담은 책이다. 신화를 역사학적 입장에서 규명한 최초의 시도였기에 부제를 ‘조선사료고증’이라 붙인 듯하다. 홍기문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의 장남이다.

대구에서 활동한 이종하(1913~2007)가 쓴 ‘우리 민중의 노동사’는 저자가 88세이던 때인 2001년에 출판됐다. 영남대 교수였던 저자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노동자 단체들이 무상으로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었다. 이 책은 민중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그득 담았다. 저자의 아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

12강이 진행되는 동안 진지하게 참여한 청중 가운데 수십 년 전 저자들과 직접 만난 분들이 있었다. 이들 원로 청중은 강사도 파악하지 못한 저자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신동아 2011년 6월호

2/2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목록 닫기

한국에 싹튼 인문학의 뿌리는?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