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무룡,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1971년 작 ‘미스 리’.
영화 ‘제삼지대’는 같은 시기의 액션 영화들에 비해 통속으로 빠지지 않고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려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자이자 감독인 최무룡이 아무리 오락 영화인 액션 영화라도 불량식품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뭔가 석연찮다. 박노식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영화가 저렇게 이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일본 로케이션이라는 부담 때문에 박노식의 등장이 많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속편에서 둘의 대결을 그리려는 속셈인가? 다음해 이 영화의 속편 ‘흑점. 속 제삼지대’(최무룡 감독, 1969)가 만들어지지만, 아쉽게도 남아 있지 않아 영화를 볼 수 없다.
‘제삼지대’와 속편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최무룡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거듭된 영화 제작과 현실 감각 없던 돈 씀씀이로 그는 빚만 짊어진 채 김지미와 이혼한다. 당시 그의 빚은 살고 있는 집과 전 재산을 다 처분해도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감독으로서 그는 ‘서울은 만원이다’(1967) 같은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부터 ‘지하여자대학’(1970) 같은 호스티스 영화, ‘북한’(1968)같이 정권에 밉보인 자신을 만회하려는 선전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서서히 침몰한다.
빚더미에 오른 천재

최무룡이 영화계의 외면을 받던 시기인 1981년 윤정희와 함께 출연한 영화 ‘자유부인’의 한 장면.
세월이 흐른 후 최무룡은 출소해 다시 명동거리로 찾아온다. 사랑하는 윤정희. 그녀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명동은 주인이 바뀌었다. 윤정희는 소식도 없이 사라진 최무룡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새로운 명동의 패자 윤양하의 지극정성 어린 헌신에 마음을 열고 이미 그의 아내가 되어버렸다. 남의 아내가 된 윤정희 앞에 유령처럼 나타난 최무룡은 그 유명한 최무룡만의 전매특허, 자신을 3인칭 어떤 사람으로 놓는 긴 대사 읊조리기를 감행한다. “먼 옛날 어떤 바보가 있었습니다. 그 바보는 한 여인만을 생각하며 감옥의 벽돌 하나하나에 그녀의 얼굴 새겨 넣고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렸답니다. 운운” 한다. 모두가 안다. 오직 최무룡만 모르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 것.” 윤정희는 이미 윤양하의 여자다. 그녀가 괴로워하며 자신을 따라가겠다는 결심을 못하자 최무룡은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을 들고 윤양하를 찾아간다. 윤양하의 부하들이 서슬 퍼렇게 지켜보는 가운데 최무룡은 윤양하와 담판을 짓는다. “내놔라” “못 내놓는다” “내가 너보다 더 윤정희를 사랑한다”“아니다 내가 더!” 절대 끝날 수 없는 말싸움. “그러면 칼로 해결하자”며 최무룡이 윤양하와 자기 사이의 테이블에 단도를 꽂는다. 이때 윤정희가 달려와 “내가 없어지면” 하면서 자결을 하고 최무룡은 테이블에 꽂힌 칼을 집어 들고 윤양하도 품에서 칼을 꺼내 서로를 찌른다. 최무룡의 칼이 조금 더 깊고 빨랐다. 거목이 쓰러지듯 윤양하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 윤양하의 부하 수십 명이 최무룡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 깊숙이 칼을 꽂아 넣는다. 부하들의 몸이 최무룡에게서 떨어지자 온몸에 구멍이 뚫린 최무룡의 몸이 기우뚱 쓰러지고 화면은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