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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④

꿈꿨기에 불행했던 이카루스의 지친 뒷모습 최무룡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꿈꿨기에 불행했던 이카루스의 지친 뒷모습 최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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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침몰

꿈꿨기에 불행했던 이카루스의 지친 뒷모습 최무룡

최무룡,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1971년 작 ‘미스 리’.

20명과의 대결이 끝날 무렵 야쿠자 두목이 총을 빼들고 이때쯤 박노식이 나타나 최무룡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데,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최무룡 혼자서 야쿠자들을 모두 처치해버린다. 드디어 라스트. 도대체 어머니까지 죽었는데 박노식은 어디 간 거야? 영화 중간 조총련 내부에 민단 쪽의 첩자가 있다며 혹시 박노식이 민단 쪽 첩자였다는 것이 밝혀질까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최무룡. 그는 이제 조총련들의 악랄한 짓을 처단하는 처단자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것이 피를 나눈 형일지라도 자신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묘지를 나오는 최무룡 앞에 박노식이 서 있다. 박노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냉혹하게 지나치는 최무룡. 박노식에게 다가온 형사 오지명이 그에게 앞으로 형제간에 피바람이 몰아치겠다고 하지만 박노식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멀어져 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제삼지대’는 같은 시기의 액션 영화들에 비해 통속으로 빠지지 않고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려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자이자 감독인 최무룡이 아무리 오락 영화인 액션 영화라도 불량식품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뭔가 석연찮다. 박노식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영화가 저렇게 이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일본 로케이션이라는 부담 때문에 박노식의 등장이 많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속편에서 둘의 대결을 그리려는 속셈인가? 다음해 이 영화의 속편 ‘흑점. 속 제삼지대’(최무룡 감독, 1969)가 만들어지지만, 아쉽게도 남아 있지 않아 영화를 볼 수 없다.

‘제삼지대’와 속편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최무룡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거듭된 영화 제작과 현실 감각 없던 돈 씀씀이로 그는 빚만 짊어진 채 김지미와 이혼한다. 당시 그의 빚은 살고 있는 집과 전 재산을 다 처분해도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감독으로서 그는 ‘서울은 만원이다’(1967) 같은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부터 ‘지하여자대학’(1970) 같은 호스티스 영화, ‘북한’(1968)같이 정권에 밉보인 자신을 만회하려는 선전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서서히 침몰한다.

빚더미에 오른 천재



꿈꿨기에 불행했던 이카루스의 지친 뒷모습 최무룡

최무룡이 영화계의 외면을 받던 시기인 1981년 윤정희와 함께 출연한 영화 ‘자유부인’의 한 장면.

1970년 22편. 1971년 37편. 자신의 최고 전성기 때의 작품 수를 능가하는 출연횟수를 기록한다. 빚 때문이었을까? 이 무렵 최무룡은 깡패영화에 다수 출연한다. 명동 시리즈, 종로 시리즈 등등. 나는 이 시기에 그가 출연한 수많은 깡패 영화들 중 인상적인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명동 잔혹사’(1972)는 세 명의 감독이 세 명의 배우를 데리고 일제강점기, 6·25전쟁 직후, 1960년대 말 이렇게 시대를 구분해 만든 옴니버스 영화였다. 박노식, 김희라, 최무룡 세 명의 배우가 주연을 했다. 그중 최무룡이 주연한 에피소드는 다른 두 편의 에피소드를 초라하게 만드는 박력이 있다. 아름다운 여인 윤정희를 만난 깡패 최무룡. 그는 윤정희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지옥불까지 마셔버릴 기세다. 두목을 찾아간 최무룡은 자신을 놓아달라고, 이제는 손을 씻겠다고 한다. 어찌된 일인지 두목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들어준다. 다만 조건이 있다! 라이벌 깡패 집단의 두목을 살해하면 소원대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지옥불까지 마셔버릴 기세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최무룡은 장검을 들고 혼자서 상대편 깡패 집단을 찾아간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던가? 최무룡의 두목은 최무룡의 행동을 배신이라 여기고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상대편 깡패두목에게 최무룡의 습격을 미리 통보해 대비토록 하고, 경찰에게 알린다. 두목의 배신을 모르는 최무룡은 장검을 휘두르며 깡패 두목을 살해하지만, 경찰에 잡히면서 윤정희와 결혼하는 꿈은 갈가리 찢기고 만다.

세월이 흐른 후 최무룡은 출소해 다시 명동거리로 찾아온다. 사랑하는 윤정희. 그녀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명동은 주인이 바뀌었다. 윤정희는 소식도 없이 사라진 최무룡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새로운 명동의 패자 윤양하의 지극정성 어린 헌신에 마음을 열고 이미 그의 아내가 되어버렸다. 남의 아내가 된 윤정희 앞에 유령처럼 나타난 최무룡은 그 유명한 최무룡만의 전매특허, 자신을 3인칭 어떤 사람으로 놓는 긴 대사 읊조리기를 감행한다. “먼 옛날 어떤 바보가 있었습니다. 그 바보는 한 여인만을 생각하며 감옥의 벽돌 하나하나에 그녀의 얼굴 새겨 넣고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렸답니다. 운운” 한다. 모두가 안다. 오직 최무룡만 모르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 것.” 윤정희는 이미 윤양하의 여자다. 그녀가 괴로워하며 자신을 따라가겠다는 결심을 못하자 최무룡은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을 들고 윤양하를 찾아간다. 윤양하의 부하들이 서슬 퍼렇게 지켜보는 가운데 최무룡은 윤양하와 담판을 짓는다. “내놔라” “못 내놓는다” “내가 너보다 더 윤정희를 사랑한다”“아니다 내가 더!” 절대 끝날 수 없는 말싸움. “그러면 칼로 해결하자”며 최무룡이 윤양하와 자기 사이의 테이블에 단도를 꽂는다. 이때 윤정희가 달려와 “내가 없어지면” 하면서 자결을 하고 최무룡은 테이블에 꽂힌 칼을 집어 들고 윤양하도 품에서 칼을 꺼내 서로를 찌른다. 최무룡의 칼이 조금 더 깊고 빨랐다. 거목이 쓰러지듯 윤양하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 윤양하의 부하 수십 명이 최무룡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 깊숙이 칼을 꽂아 넣는다. 부하들의 몸이 최무룡에게서 떨어지자 온몸에 구멍이 뚫린 최무룡의 몸이 기우뚱 쓰러지고 화면은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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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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