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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⑦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무주 적성산의 예술가 이익태와 두 여자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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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평소 ‘저산’과 ‘물결’이 주고받던 얘기였다. 그들은 아이들 말로 소위 ‘쿨’한 관계를 지향하는 어른들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빔이 써놓은 글이 있으니 읽어보자.

‘내비道’(내버려 두라는 뜻임)

나는 소유하고 독점하는 불협화음으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관계가 감옥처럼 지겨워져 헤어지는 일을 반복해왔다. 혼자 사는 것은 외롭지만 관계 맺는 것은 괴로웠다. 괴로움보다는 외로움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앞으로 혼자 살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저산은 분교에서 나를 맞았다. 먹물을 들인 면바지와 소매를 찢어버린 낡은 셔츠 차림의 그는 울진에서 봤을 때보다 인상이 더 강렬했다….

그가 앉아 있는 뒷벽에 ‘내비道’ 라고 쓰인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저산이라는 낙관도 찍혀 있었다. 폐교 입구에도 페인트로 ‘Bean Powder Family’ (콩가루 가족)라고 쓰여 있었다. 폐교나 집의 분위기나 저산의 옷차림 같은 것들과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아 이거? 우리가 믿는 교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내비도야. 우리 사회가 혼란한 건 잘못된 종교 때문이거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죽여야 하고, 불자는 부처를 죽여야 해. 요즘 시대의 진정한 종교는 내비도여야 해.”



저산이 내 이름을 생각하기 위한 것인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빔이 어떨까? 비운다는 뜻의 빔도 되고, 영어로 하면 빛이란 뜻이 되기도 하고, 참 기둥의 뜻도 있군.”

“괜찮은데요.”

내가 동의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물결이 갑작스럽게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사는 것이 어떨까?” .

“우리가 공동생활에 성공하면 새로운 가정형태의 모델이 될 수가 있어. 부부 중심의 가정하고는 다른 형태의 삶이기도 하고, 예술을 삶으로 끌어들인, 즉 삶 속에서 예술을 영위하는 가족형태라고도 할 수 있지.”

“겨울에 보일러 기름 값도 만만찮게 들 텐데 같이 살면 경제적이고 좋지 않겠어?”

우리는 혼자 사는 것보다 세 배 이상 풍요롭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일단 그해 겨울을 같이 보내는 데 합의했다. 평소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타인과의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공동체 이름으로 풀포기 가족이 어때?”

저산의 말을 물결이 반대했다.

“쓰던 대로 빈 파우더(콩가루) 패밀리가 좋아.”

“바보야. 풀뿌리의 풀이 아니라 영어의 ‘풀(full)’을 말하는 거야. 풀포기는 전부 포기한다는 뜻이야. 에고를 죽이지 않고는 공동생활을 할 수가 없어.”

“좋아! 풀포기 패밀리 접수한다.”

곧 닥쳐올 겨울을 혼자 산속에서 날 것이 걱정스러웠던 나도 흔쾌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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