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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죽은 문화재 보고 ‘야 미치게 아름답네’ 할 줄 알아야 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교수가 밝히는 베스트셀러 비밀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죽은 문화재 보고 ‘야 미치게 아름답네’ 할 줄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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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발견하지 못한 진주

스승과 제자의 결별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점필재가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조정에 건의하는 일이 없자 김굉필이 이를 비난하는 시를 지어 올렸다. 그러자 점필재가 ‘권세에 구구하게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시로 화답했고, 그 뒤 두 사람이 갈라섰다는 기록이 남효온의 ‘사우명행록’에 나와 있다.

“점필재를 옹호하고 싶다는 말을 쓰고 싶었지만 끝내 쓰지 못했어요. 제가 그런 말을 썼다면 또 후대는 저를 비난하지 않을까요? 후대 사람들은 꼿꼿하고 군소리 없고 딱 부러지는 것을 원하거든요. 그래도 현명한 독자는 이 글을 천천히 읽을 적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되새김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의 주요 소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뒤 그는 글의 시작(프롤로그)과 끝(에필로그)에 사용할 에피소드에 대해 고민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식사할 때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 같은 것이다. 이것이 감칠맛 나면 글을 끝까지 읽게 된다.

“학생들을 데리고 갔을 때 있었던 일화를 쓸까, 아니면 답사회원들과의 일화를 쓸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대구시각장애인협회 회원들에게 답사 안내를 해주겠노라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일화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유산 답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같지만 촉각과 청각을 위주로 한 답사도 특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승전결 가운데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기와 결로 장치해두고, 서원에 대한 설명과 가는 길의 풍광, 서원의 역사, 주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 같은 글의 뼈대가 될 부분들을 선정했습니다. 그 다음 살을 붙이는 작업이 에피소드 처리였습니다. 이것도 남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어야 좋습니다. 마침 도동서원은 돌조각들이 무척 아름다워 그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지요.”



유 교수는 남이 지나친 부분에서 색다른 것을 끄집어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지식욕을 자극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 독자들이 필자의 안목에 신뢰를 갖게 된다고 한다.

“저는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를 아주 많이 고쳐서 시공하는 방식의 글쓰기를 합니다. 이번 답사기도 잡지에 연재하던 글을 묶은 것이지만 한 편의 글을 두 편으로 쪼개는 등 완전히 수리하듯 썼어요. 마지막 교정 때는 100여 장의 글을 한 호흡에 다 읽어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소파에 앉아서 전화도 받지 않고 한번에 끝까지 읽어봐야 해요. 아무튼 핵심은 미리 조사를 다 한 뒤에 기승전결로 글을 재배치하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에필로그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면 글을 아주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습니다. 신문글은 첫 문장이 중요하고요.”

자신이 마무리한 뒤에도 자문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경우 유 교수는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이번 답사기 ‘순천 선암사’ 편에서는 꽃과 나무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는 ‘궁궐의 우리 나무’를 펴낸 박상진 교수에게 비판적 열독을 의뢰했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또 선사시대부터 발해시대까지 다룬 ‘한국미술사강의1’을 출간하기 전 그는 시대별로 후배 전공자들에게 비판적 열독을 의뢰해 상당한 분량을 수정할 수 있었다.

“아놀드 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학’ 원고를 완성한 뒤 하퍼스 출판사에 보냈을 때 이 출판사는 그 원고를 보수적 미술평론가 허버트 리드 경에게 보냈답니다. 반대 논리를 가진 사람에게 의견을 구한 것이지요. 그런데 리드 경이 이 원고를 읽고는 ‘이 사람의 입장은 나와 정반대이지만 원고 자체는 훌륭하다’는 평을 했답니다. 비판적 열독은 글을 개선하는 데 주효합니다.”

은근한 MB 비판

이번 답사기의 첫 장 ‘경복궁’편을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경복궁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고정관념들이 삽시간에 무너진다.

“정말 쓰기 힘든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입니다. 경복궁에 관한 책이 얼마나 많아요. 정색하고 이것을 쓰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평소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내용들을 앞부분에서 다뤘습니다. 일반적으로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먼저 건축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몰라요. 자금성을 벤치마킹해서 경복궁을 지은 것으로 알고, 그 가치를 폄하해온 게 사실이에요. 또 박석의 가치도 무시됐었지요. 서울은 정도전이 설계하고 박자청이라는 분이 시공했는데, 건축가 박자청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조선 초 성균관 문묘,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금천교, 청계천 살꼬지다리 등을 시공했던 사람인데요. 경회루는 설계에서 시공까지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답니다. 경회루는 지금 아무리 좋은 장비를 동원해도 8개월 만에 완공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박자청은 당대에는 노비 출신이라고 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 분을 복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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