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다큐멘터리 알리의 전쟁 ③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상을 관통하는 대서사

  • 안병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명예이사장 ann-bc@daum.net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2/6
클레이가 흑인 종교 조직인 ‘이슬람 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뉴스는 리스튼과 대전을 앞둔 때 불거져 나왔다. 그가 대변인인 말콤 엑스와 어울린 일도 알려졌다. 말콤 엑스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공개적으로 비웃어 물의를 일으킨 급진파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슬람 민족’의 교주인 엘리야 무하마드는 과격한 말콤 엑스에게 자격정지 조치를 내려야 했다. 미국의 백인 주류와 백인 언론은 ‘이슬람 민족’을 혐오단체로 낙인찍었다.

흥행주 빌 패버샴은 캐시어스 클레이와 소니 리스튼의 대전을 주선했는데 이슬람 개종 문제로 클레이와 갈등했다. 결국 클레이가 리스튼 대전을 끝낸 후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실을 발표하기로 절충해 대전이 무산되는 위기를 넘겼다. 이런 사실은 알리가 1975년에 쓴 자서전 ‘나는 최고다: 알리가 쓴 내 이야기’(원제 I am the Greatest: My Owen Story by Ali)에도 나온다.

1964년 2월26일, 소니 리스튼을 케이오(KO)로 이긴 다음날, 캐시어스 클레이는 ‘이슬람 민족’조직에 가입했으며 이름을 캐시어스 엑스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미국 기득권 사회는 일제히 알리를 비난했다. 알리가 권투와 돈벌이를 모두 포기하는 무모한 행동을 했다면서 들끓었다.

1964년 3월6일 ‘이슬람 민족’ 조직의 창시자 엘리야 무하마드는 클레이에게 ‘찬양받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새 이름 ‘무하마드 알리’를 부여했다. 이로써 캐시어스 클레이는 무하마드 알리로 다시 태어났다.

/ ‘유령 펀치’와 황소 리스튼 /



소니 리스튼과의 재대결은 1965년 5월 미국 메인 주 루이스턴에서 열렸다. 공식적으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 이름을 쓴 이후에 가진 첫 챔피언전이다.

알리는 1회전에서 눈에 띄지 않는 번개 같은 펀치로 쉽게 케이오승을 거두었다. 이 결과를 보고 일각에서는 리스튼이 ‘이슬람 민족’의 과격파에게 협박을 받고 일부러 나가떨어져 경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알리의 그 한 방에는 이른바 ‘유령 펀치’(팬텀 펀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니 리스튼의 후일담은 쓸쓸하다. 알리에게 두 번 진 뒤에 일단 재기해 연속 14회 케이오승을 거두지만, 그에게 다시는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헤비급 최고의 하드펀치를 가졌다고 하던 리스튼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영웅의 제물이 됐다(1970년 12월30일 38세의 소니 리스튼은 라스베이거스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1965년 9월 최초로 인공위성 컬러중계방송이 있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카를 밀덴버거와 싸워 12회전에서 이겼다. 이 대전은 인공위성을 통해 컬러로 중계됐다. 밀덴버거는 막스 슈멜링 이래 세계 헤비급에 도전한 첫 독일 선수여서 알리의 이름이 서독에 널리 알려진다.

1965년 10월 전 헤비급 챔피언 프로이드 패터슨이 알리를 비난하고 나섰다. 패터슨은 자신이 가톨릭교도라고 밝히면서 타이틀을 빼앗아 미국에 다시 바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말했다. 흑백통합주의자인 패터슨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지에 이렇게 썼다.

캐시어스 클레이는 자신은 물론 검둥이 혈통에 치욕을 주고 있다. 미국의 헤비급 챔피언이 블랙 무슬림이라니 스포츠와 국가를 모욕하는 짓이다. 누군가 캐시어스 클레이를 때려눕혀야 한다.

패터슨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굳이 옛 이름을 불렀다. 패터슨이 “누가 흑인의 본보기인지 겨뤄보자” 하고 싸움을 걸어오자 알리는 맞받아 패터슨을 조롱하고 비난한다.

패터슨은 제가 타이틀을 미국에 되찾아주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누구한테 세금을 내고 있는지 봐라. 난 미국인이야. 하지만 패터슨은 깜둥이라 불리는 귀머거리 멍청이다. 내가 좀 패줘야겠어. 그 작자 말이 괘씸해서 진탕 패줄 테야….

/ ‘톰 아저씨’를 흠씬 패주다 /

그해 11월에 열린 패터슨과의 대결은 클레이의 두 번째 타이틀 방어전이었다. 알리는 보란 듯이 싸움을 질질 끌며 12회까지 끌고 갔다. 패터슨에게 주먹맛을 보여주다가 곧 물러서서 숨 돌릴 시간을 주고 입으로 연신 “덤벼, 아메리카! 덤벼, 흰둥이 미국놈아!”하고 욕을 퍼부었다.

역부족의 패터슨이 티케이오로 쓰러지자, 백인 언론은 알리가 의도적으로 경기를 질질 끌면서 패터슨을 잔인하게 징벌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미국 주류사회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알리를 비판하고 독실한 기독교도인 패터슨을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흑인 민권운동가 엘드리지 클리버는 이 싸움은 사상적 측면에서 흑인혁명의 정신적 성취를 반영하는 전환점이 된다고 평가했다. “독립적인 흑인이 굴종적인 흑인을 징벌하는 상징적인 승리였다.” 클리버는 급진적 지식인이자 사회평론가로 검은 표범 당(블랙 팬더 파티)의 대변인 겸 정보장관을 지냈고 알제리와 쿠바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2/6
안병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명예이사장 ann-bc@daum.net
목록 닫기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