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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28

‘부드러운 투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지금도 남편 목소리 들으면 가슴 두근거려요”

  • 조성식 기자│mairso2@donga.com

‘부드러운 투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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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투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그녀가 대학생 시절 ‘투사’가 아니었다는 건 시위와 관련해 한 번도 사법처리 된 적이 없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지하도에서 한 남학생이 경찰에 맞는 걸 보고 항의했다가 경찰서로 끌려가 몇 시간 유치장 구경하고 나온 게 고작이다. 이때의 유치장 체험은 뒷날 유치장 화장실 개선 문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할 때 도움이 된다. 변호사가 돼 처음 맡은 인권사건이었다.

“요즘은 좀 나아졌는데, 당시만 해도 유치장 화장실 칸막이가 무릎 높이였어요. 용변을 볼 때 다 보이는 거예요. 감시카메라에는 당연히 잡히고. 2000년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직후 한 여성이 찾아왔어요. 2박3일 동안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는데 수치스러워서 용변을 볼 수 없어 물도 못 마시고 거의 단식을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대학생 때 거기서 용변 볼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인용이 돼서 시설이 약간 개선됐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다. 삶의 진로를 놓고 불면의 나날을 보낸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지금도 후회할 때가 있어요.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여학생회) 활동을 한 건데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스스로 내린 겁니다.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좌절 끝에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해 사법시험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을 계속 가기가 두려웠던 거죠. 그때 조금 더 힘을 내서 감행했다면 인생의 두려움이나 고민, 흔들림이 적지 않았을까, 더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이 들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사법시험 도전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였을까. 그녀는 “기회”라는 표현을 썼다. 계기가 있었다. 여학생회 일을 할 때 동두천 기지촌을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 있는 여성들과 혼혈 아이들을 보면서 주한미군 문제와 성매매 문제를 깊이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푸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1996년 사시에 합격하자마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10여 년간 그 단체에서 일하면서 운영위원과 공동대표를 지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을 하면서 반미(反美) 성향을 갖게 됐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내젓는다. “반미가 아니라 현실적인 접근을 한 것”이라며.

“공정한 룰을 만들어 미국과 협상하자는 거였죠. 작은 회사도 계약 체결할 때 변호사 자문 받아 하나하나 따지잖아요. 미국과도 그렇게 하자는 거였죠.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무부에서 (미국에) 재판권 포기 요청을 했습니다. 제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일할 때인데, 법무부에 (미국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하라는 신청서를 냈어요. 미국만 우리에게 재판권 포기를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려준 거죠. 주한미군 범죄는 무조건 미군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손 못 댄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있는 규정도 무시한 채.”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미 정부 간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 기본적인 법률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걸 보고 놀랐다. 한국과 미국을 대등한 국가로 보지 않는 관행 탓이었다.

“관련 서류들을 보고 나서 법률가로서 갖는 의문점을 말하니, ‘(미국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근본적으로는 협정이 바뀌어야 해요. 지난번에 고엽제 사건이 터졌잖아요. 한국 정부에 단독 조사권이 없어요. 미군이 거부하면 조사할 수도 없어요. (미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배상을 청구하면 배상금의 25%를 한국 정부가 내야 해요. 아무런 책임이 없어도. 주한미군 지위협정에 그렇게 규정돼 있어요. 굉장히 불공정한 조항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죠.”

“스파크가 튀었다”

판사를 포기한 건 사시 성적 때문이었다. 판사 인사는 철저히 성적 순이다. 성적이 우수하면 첫 발령지가 재경지역이고 나쁘면 지방이다. 성적대로라면 지방으로 내려가야 했다. 서울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는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남편 심재환 변호사와는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민변 동료다.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자 “스파크가 튀었다”라는 예기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1996년 말 3차 면접시험을 보러 (사법)연수원에 갔어요. 멀리 한 남자가 서 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내 입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잘생겼느냐”라는 질문이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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