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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리비아사태-포스트 카다피

“리비아의 미래는 밝다. 왜? 카다피가 사라졌기 때문에”

현지르포 - 리비아 내전

  • 유재동│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의 미래는 밝다. 왜? 카다피가 사라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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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28일 새벽 5시 반, 취재진은 트리폴리로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우리와 동행하던 튀니지인 가이드가 그동안 미니밴 위에 싣고 가던 짐짝을 모두 차 안으로 옮겼다. 그는 “짐을 차 위에 싣고 가면 약탈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어제 스나이퍼(저격수)의 공격으로 트리폴리에서 세 명이 죽었다”고도 말했다. 전날 3시간도 채 못 잤지만 잠이 확 달아났다. 트리폴리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현지 소식을 접하고 어느 정도 안심하던 차였다.

트리폴리를 향해

우리 앞 차에는 날루트에서 접선한 리비아 반군 무함마드 자루크(33)씨가 타고 있었다. 그는 트리폴리까지 여정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직 엔지니어인 그도 1980년대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 카다피군에 삼촌 두 명을 잃었다. 지금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뒤 반군에 합류해 날루트와 트리폴리를 매일 ‘출퇴근’한다. 내전이 마무리되면 엔지니어링 공부를 계속해 박사학위를 받을 계획이다. 그는 “카다피 정권하에서 우리는 ‘노(No)’라고 말할 권리가 없었다. 우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했다.

반군들이 세워놓은 체크포인트(검문소)는 평균 10분에 한 번꼴로 만났다. 처음 몇 곳에선 반군들이 취재진을 보면 승리의 ‘V’자를 해 보이고 “어느 나라 기자냐” “코리아, 원더풀”이라며 농담도 곧잘 했다. 하지만 트리폴리로 가까워질수록 검문은 검문대로 까다로워지고 이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출발 2시간 후 도달한 한 검문소에서 우리는 반군들에게 트리폴리 사정을 물었다. 그들은 “일부 지역은 위험하고 시체도 많다. 어린아이들도 죽었다. 정부군이 가리지 않고 쏜다”고 말했다.

다만 트리폴리까지의 도로사정은 6개월의 내전을 거친 것을 감안하면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가끔 부서진 도로가 나오긴 했지만 길목마다 반군이 임시로 우회도로를 만들어놨다. 또 길 저편 벌판에는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탑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뚝 솟아 있었다. 이처럼 리비아를 지탱하던 중추 기반시설은 상대적으로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카다피 이후의 새 리비아가 내전의 상처를 생각보다 빨리 털어낼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끼게 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일부 교전이 치열했던 도시는 파괴의 흔적이 선명했다. 전쟁의 상흔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자위야였다. 트리폴리 입성을 위한 관문도시로 양측 모두에 전략 요충지였던 이곳에선 내전 초반부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건물마다 유리창은 죄다 깨어져나갔고 총알자국도 30여 개씩 남아 있었다. 어떤 3층 건물은 폭격을 맞고 너무나 심하게 훼손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건물이 아니라 마치 거대 공룡의 사체를 연상케 했다. 평일 낮인데도 길거리에서 사람의 모습을 전혀 관찰할 수 없었다. 그저 건물마다 삼색 깃발들만 황량하게 나부낄 뿐이었다.

기능 마비된 유령 도시

트리폴리에선 4박5일을 머물렀다. 렌터카 운전사와 합의한 당초 일정은 3박4일이었지만 계약을 파기하고 이틀을 더 있기로 했다. 비록 트리폴리는 여전히 위험했지만 사흘만 머물기엔 취재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트리폴리에 도착한 첫날은 사람구경을 제대로 못 했다. 이날은 이슬람 세계에서 평일인 일요일이었는데도 상가는 모두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 쓰레기더미만 가득했다. 심지어 도심의 한 블록 전체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가 “시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우리를 안내한 리비아의 지방 공무원 아흐메드 다와씨는 “모두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이미 도시 밖으로 탈출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내전으로 도시 기능도 거의 마비상태였다. 우선 머물 수 있는 호텔이 없었다. 길거리는 텅 비었는데 얼마 되지 않는 호텔에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객실 손님들은 모두 각 지방에서 올라온 반군 병사들, 또 외신기자들이었다.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총이나 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얼마 뒤부턴 수돗물도 끊겼다. 그 탓에 사흘 동안 씻지를 못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카다피군이 퇴각하면서 수도관을 파괴했다고 한다. 전기도 자주 중단됐고 국제전화 등 통신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다. 문을 연 음식점이나 가게도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은행 업무가 마비돼 신용카드가 무용지물이 됐고 현금 인출도 불가능했다. 상황이 이 정도일 줄 예상치 못한 취재진은 얼마 되지 않는 돈과 옷가지, 비상식량으로 그저 버틸 만큼 버틸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트리폴리 도착 3시간여 만에 겨우 찾아낸 호텔은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래 카다피의 측근이 소유했지만 트리폴리가 함락되면서 이젠 반군의 기숙사처럼 쓰이고 있었다. 호텔 종업원이라는 사람들도 알고 보니 모두 반군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실탄이 가득한 총을 들고 다녔다. 룸서비스는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다. 기자가 체크인을 하고 열쇠를 받아 들어간 방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채 전날 머문 반군이 켜놓고 간 듯한 아랍 TV채널이 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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