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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⑦

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악당, 그 뜨거운 매혹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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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능청스럽던 허장강,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던 황해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악당 연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 허장강.

나는 한국 액션영화 속의 악역들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배우는 두 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뻔뻔스럽고 능청스러운 악당 허장강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키에 이를 부드득 갈아대며 상대방을 어둠 속에서 노려보는 히스테리컬한 악당, 황해다. 두 악역 배우가 한 여인을 두고 다투다 파멸하는 영화가 있다.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1963)이다. 김약국의 셋째딸 최지희는 매우 분방한 여자다. 시집가기 전에 이미 머슴인 황해와 섹스를 즐긴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황정순은 머슴 황해를 쫓아내고, 더 이상 소문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 허장강에게 최지희를 시집보낸다. 쫓겨나는 머슴 황해. 그는 말이 없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세상을 노려본다. 그리고 돌아선다. 머슴 신분이라는 열등감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성욕, 그리고 배신감. 그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이를 앙다문다.

허장강 vs 황해

황해는 황정순과 김약국 집안 모두를 증오한다. 그는 반드시 복수하러 돌아올 것이다. 최지희가 시집간 허장강은 아편 중독자에 날건달. 게다가 성불구자다. 최지희의 과거를 알고 그녀의 성욕을 충족해 주지 못하는 허장강은 폭군이 되어버린다. 최지희가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허장강의 분노는 점점 끓어오르고 마침내 터져버린다. 시커먼 도끼를 들고 발광하며 최지희를 죽이려다 그를 막아서는 황정순의 이마에 도끼를 내리치는 허장강. 최지희를 차지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황해. 그는 작은 키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최지희를 찾아내 자기 품에 안는다. 열등감과 배신감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무서운 집념을 황해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김약국의 딸들’은 내가 성인이 돼 허장강과 황해 두 배우를 만난 첫 영화였다. 인상적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황토 먼지가 휘날리는 만주 벌판. 저 멀리서 말을 탄 사나이가 다가온다. 사나이는 호피 무늬 재킷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띠고 어디 좋은 건수가 없나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가 바로 허장강이 연기한 허달건이다. 허장강이 주막에 들어선다. 술집 안에는 요염하게 생긴 여자가 난로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을 비비면서 여자 앞에 앉으며 던지는 허장강의 첫 번째 수작. “한잔 따라” 첫마디가 반말이다. 반응이 없는 여자. 허장강, 실눈을 뜨고 여자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 그녀가 주막집 여자가 아니라 마차를 기다리는 손님이었음을 눈치 채고는 “실례했소”라 사과하고는 자기가 직접 차를 따라 마시며 “쳇, 좀 따라주면 안 되나?”며 구시렁거리자 여자는 미소를 짓는다. 알고 보니 요염한 여자는 예전에 알던 술집 마담이었고, 허장강이 눈웃음 살살 치며 수작을 거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만주 어느 도시의 마담은 싫지 않은 눈치다. 허장강이 “난 여자에게 관심 없어” 하고는 여자의 관심을 사기 위해 2단계 작전에 들어서는데 여자는 “여자보다는 밀정 일에 더 관심 있죠?”라 한다. 자신의 정체를 빤히 다 알고 있는 여자와 뭔가 잘되어 가는데 주막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지프를 몰고 손에 쇠사슬이 감긴 사내가 등장한다. 가죽재킷을 입은 험상궂은 사내는 여자에게 눈길과 관심을 절대 안 주고 쇠사슬 끊는 일과 펑크 난 타이어 고칠 일만 신경 쓰는데, 술집 마담은 허장강보다 그 사내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왜 아니겠는가? 가죽재킷의 사나이는 바로 장동휘인 걸. 허장강은 닭 쫓던 개가 되어버린다. 뭐 세상사 그런 거다. 허장강은 슬그머니 물러나 “난 여자는 관심 없고, 오직 하나 밀정 일만 관심 있다”며 씁쓸함을 지우려 하지만, 이미 그의 폼은 다 망가져버렸다. 여자에게 다가가 먼저 수작을 걸지만 장동휘에게 번번이 여자를 빼앗기고, 그토록 찾아 헤매는 황금불상도 결국 일본군 장교 황해와 남궁원에게 빼앗기니, 악당이긴 하지만 측은하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한, 미워할 수 없는 그리운 악당이 바로 이만희 감독의 만주 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의 허장강이다.

언젠가 허장강을 기억하는 인터뷰에서 돈을 요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허장강의 연기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보통 연기자들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얼굴 가까이 대고 “돈”이라고 한다. 허장강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허리에 갖다 대고 배를 불쑥 내밀고 “돈”이란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허장강의 악역 연기가 다른 수많은 악역 배우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유머다. 그는 어떤 악역을 하더라도 뻔뻔함과 능청스러움을 기본 캐릭터로 깔고 그 위에 작품에 따라 강약을 조절했다. 배우 허장강에게 매혹된 감독 이만희는 필름 원본과 프린트가 모두 사라져 이제는 볼 수 없는 영화지만 허장강을 위한 영화 ‘사기한 미스터 허’(1967)까지 만들었다니 그에게 매혹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시 ‘쇠사슬을 끊어라’로 돌아가자. 허장강은 독립군 남궁원을 속여 일본군사령부로 붙잡아 간다. 밧줄에 꽁꽁 묶여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남궁원이 허장강 앞을 지나다 멈춰서며 “나도 담배 하나 주라” 하자, 허장강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이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남궁원 입에 물려준다. 남궁원이 일본군사령부를 바라보며 “많이 아프겠지?” 한다. 사령부 지하실에서 남궁원을 고문하려 벼르고 있는 황해의 매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허장강은 웃으며 “많이 아플 거야. 난 아직 맞아본 적이 없지만” 한다. 허장강이란 악당이 매력적인 지점은 아무리 날고 기고 속이고 해봐야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황해라는 더 큰 악당 앞에 서면 생쥐 꼴이라는 것이다. 조선인 밀정 허장강을 부려먹고 “조선인들은 멍청해”를 입에 달고 살며 고문이 주특기인 일본군 장교 황해가 고문실에 있다. 남궁원을 쇠사슬에 매달아놓고 황해는 일단 때리기부터 한다. 남궁원이 “보자마자 때리냐? 이름도 안 물어보냐?” 하자 황해는 “다 알고 있어” 하고는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고문을 하는 악당 황해. 그는 군복 상의를 벗어던지고 겨울 내복만 입고 집무를 보는 이상한 일본군 장교다. 황해는 이 영화에서 잔인한 고문 기술자부터 허장강과 장동휘, 남궁원의 흉계에 넘어가 포로가 된 뒤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되기까지 획획 캐릭터를 변신시킨다. 게다가 자신의 계획이 안 맞아떨어지자 작은 키로 방방 뜨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은 유년기로 퇴행한 소년의 모습처럼 보인다. ‘쇠사슬을 끊어라’는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악당들만 등장해 흥청망청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도시의 뒷골목 깡패들이 쓸법한 뻔뻔한 욕과 대사를 쏟아낸 아주 매력적인 영화다. 동시에 대표적인 악역 허장강과 황해의 악역 연기가 왜 특별하고 뛰어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단 한 편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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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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