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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 1920년대 서울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던고?

신문사 편집국의 오후 한 시 반

  • 박윤석│unomonoo@gmail.com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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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만에 편집국장 자리에 다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이광수도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는 출근 전 집에서 아침 6시부터 2시간가량 소설을 쓴다고 한다. 가능한 한 저녁 6시면 귀가해 일찍 잠자리에 들 정도로 시간과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6개월 전에 오른쪽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후로 모임을 최소화하고 있다. 젊어 객지에서 얻은 결핵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고질로 계속되는 가운데 신장결핵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 최초의 여성개업의였던 부인이 결혼 전부터 아이 둘을 키우는 지금까지 그를 간호하고 있다. 이광수는 편집국장으로서 자신의 하루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신문사에 가서는 동료들의 출석상황을 보고 숙직부를 보고 서신 온 것을 보고 주요한 신문을 보고 소설 한 회 쓰고 부득이하면 사설도 쓰고 공장에 몇 번 들락날락하고 사장실에 몇 번 불리어가고 각 면의 주요기사를 읽어 혹시 시비 들을 것이나 없나 혹시 면박당할 것이나 없나를 보고, (…) 간혹 동료의 불평을 듣고 간혹 경무국에 불리고, 그리고 윤전기가 돌아 신문이 제시간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면 내 하루의 작업이 끝이 난다. 그러고는 곧 타기 싫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고(…)



내일 신년호부터 나갈 그의 새 연재소설이 미리 인쇄되어있다. ‘군상(群像)’이라 제목한 그 첫 회의 도입부는 이렇다.

혁명가- 그의 이름은 공산(孔産)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것은 가명이다. 그의 본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나는 절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이것이 이야기꾼이 지키는 유일한 비밀이요 또 신의이다. (…) 공산이 병으로 누운 지는 벌써 일 년이 넘었다. 그의 병은 폐결핵이다. (…) 여러 해 동안 불규칙하고도 심신 과로한 생활을 한 결과로 처음에 감기 같은 병이 마침내 폐병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부인은 지긋지긋하다며 발길에 채는 약병을 걷어찬다. 벽에 부딪히고 방바닥에 뒹구는 약병은 약물을 방바닥에 쏟아놓는다. 몇 방울이 돌아누운 공산의 얼굴에 튄다. 신년호치고는 다소 우울한 시작이다.

조선인보다 조선말 잘하는 검열관

검열에 걸린 사설은 제목이 ‘세모(歲暮)’다. 세모를 맞아 세모의 감정을 전하는 송년사설의 한 구절도 검열관은 이 세모에 그냥 넘기지 않는다. 조선말을 조선인보다 더 잘한다는 일본인 검열관은 아직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송년사설은 1929년 한 해의 주요 사건을 몇 가지 언급하고 있다.

원산 노동대쟁의(元山 勞動大爭議)는 실로 조선 미증유의 대쟁의 사건으로 참가인원 2000여 명, 쟁의일수 약 3개월에 이르렀다. 불행히도 노동자 측의 준비부족과 당국의 몰이해한 태도에 의하여 결국은 노동자 측의 패배로 끝났지만 노동자 자신의 조직이 강고하여야 할 것과 한 노동자단체의 쟁의만으로는 노동자의 승리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에 있어서는 더 큰 교훈을 받았다고 할까.

2년 연속 논바닥을 달구고 뱃가죽을 등에 붙게 한 충청 전라 경상도의 대가뭄도 언급되었다.

봄부터 여름에 걸친 삼남 일대의 대흉재는 작년부터 가뭄 기근으로 신음하던 가련한 동포들의 이중의 재액이었으며 우리 생활기록사상 빼지 못할 대불상사였다. 요행히 국내외 열렬한 동포의 의연이 있어 냇물에 물 한 방울의 감이 없지 않았으나 동포애의 발로로 보아 만금의 가치가 남았다고 할 만한 의의가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원대의 대금을 소비하며 조선통치 20년의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음은 조선인을 위하여 무슨 소득을 갖게 하였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불행히 금년은 긴축경기로서 해를 보낸다.

가을 박람회 때는 상경객들을 겨냥해 한몫을 노리고 여관시설로 허가받으려는 신청이 쇄도했다. “보따리 주머니 맛을 보려고 코만 반반히 붙은 여자면 으레 기생으로 나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시 경기가 후끈했다. 박람회 개최 석 달 전 기사가 전하는 풍경이다.

박람회를 앞둔 경성시가는 차차 세월이 좋아간다. 돈 1원 쓰려면 부들부들 떠는 시골농부들도 관청의 권고에 보따리를 짊어져야 할 모양이니 돈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가던지 간에 세월은 풍성풍성할 것이다. 열댓간 넘는 집이면 으레 여관집이 되는 판에 집세가 올라가고 따라서 전화값이 올라가고 자동차가 늘어가고.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 기생의 전형인 서도기생은 벌써 제2차 결사대를 조직하고 30명이 이미 경성에 침입하였다던가.

경제와 정치라고 할 것이 없는 조선이긴 하지만 후반기에 심각해진 경제 불황과 정치 불안은 해를 넘겨 지속될 조짐이다. 사설은 이어진다.

11월 광주고보학생과 광주중학생 충돌사건을 발단으로 전국적 학생 및 사회의 대운동을 본 것은 금년의 대사건이다. 학생의 충돌이 전조선의 문제로 변한 것은 당국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부 공산주의자의 책동이 아니라 축적된 평소의 민족적 불평불만이 이 기회에 폭발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니 조선인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 일단을 볼 수 있겠다.

압수는 12월 들어 6번째다. 광주학생운동 이후 이어진 학생들의 동맹휴교와 사회단체들의 움직임과 관련해 신문과 검열의 부딪침이 늘어났다. 압수조치가 절정에 달했던 1924년의 56건, 1925년의 57건보다 월평균 횟수로 보자면 이번 달이 더 많다. 19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압수 건수는 매년 줄어왔다.

1929년 한 해의 압수는 이로써 28회가 되었다. 계산해보면 압수율 8%. 평균 13일에 한 번꼴로 압수된 셈이다. 압수된 신문부수는 33만부가 넘는다. 매번 윤전기가 세워질 때마다 이미 인쇄돼 있던 1만부 이상씩이 몰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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