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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대중교통 사각지대에 갇힌 택시 24시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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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승객이 가장 불편한가요.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택시기사는 승객을 찾아다녀야 한다.

“술 취해서 주무시는 손님이죠. 목적지까지 갔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특히 여자 손님이 그러면 정말 난처해요. 남자 같으면 흔들어보기도 하는데 여자 손님은 조심스럽잖아요. 선배들의 조언대로 가까운 맥도날드 가게 앞에 차를 대놓고 112에 신고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더라고요. 경찰서까지 가면 경찰이 귀찮아하는데 112를 통하면 사고접수를 처리해야 하니까 경찰이 5분이면 와요.”

그는 아직 승객에게 험한 꼴을 당해본 적은 없다고 했지만 다른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언은 물론 폭행을 하는 승객도 간간이 만난다고 했다. 또 택시라는 은밀한 공간을 이용해 기사가 승객을 추행하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기사에게 먼저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꽃뱀’도 있다고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택시 내부의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한다. 황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개인택시기사는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다녀요. 분쟁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이 자주 발생하니까요.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무시하고 욕하고 괴롭히는 손님, 차비 안 내는 손님을 만나면 저도 CCTV의 필요성을 느끼죠. 그런 손님이 한 달에 한두 번은 타거든요. 성깔 있는 기사는 경찰 불러 해결하지만 전 그냥 넘어가는 편이에요. 야간에 많이 벌어야 하니 빨리 잊어버려야죠. 속이 상하지만 열심히 뛰어서 새로운 손님을 받는 게 속이 편하니까요.”

▼ 승객들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대부분이 박원순 시장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손님들은 정치나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체감경기가 안 좋으니까요. 예전에는 새벽 2시까지도 손님이 꽤 많았는데 요즘은 1시가 넘으면 손님이 거의 없어요. 경제가 어려워서 술 드시는 분도 줄어든 거죠.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대통령이 욕을 많이 먹어요. 자기 고집이 너무 세고 서민 생각 안 한다고요.”

▼ 민망한 행동을 하는 승객이 있나요.

“많죠. 젊은 커플은 키스는 보통이에요. 빨리 모텔로 가자고 난리를 치죠. 중년남자들은 젊은 아가씨에게 ‘자기야’라고 하면서도 애정행각을 벌이진 않아요. 점잖게 앉아서 호텔로 가자고 하죠(웃음).”

▼ 택시 안은 금연구역인데 흡연하는 승객이 있나요.

“술 드신 손님이 간혹 피우기도 하는데 그럴 땐 차문을 다 열어놓고 환기시켜요. 택시 안에서 금연하는 건 바람직한데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게 문제예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면 고급 교통수단이라 안 된다고 하면서 금연에 대해선 공공장소라는 이유를 적용하거든요.”

서울에만 6만5000대, 택시의 희망

택시가 법이 인정하는 대중교통이 아니라는 건 다소 의외다. 택시는 지하철이나 버스가 미치지 못하는 교통 소외지역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발이 돼주고 있지 않은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에 갇혀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택시기사들은 택시가 하루빨리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되면 택시기사도 월급여로 300만원을 받는 버스기사처럼 주 5일 근무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서다.

“예전에는 버스기사들이 택시회사에 줄을 섰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됐어요. 버스기사가 월급도 훨씬 많이 받고 덜 힘드니까요. 택시는 26일을 근무하고 근속기간이 1년이 안 되면 휴가도 안 줘요. 저희 회사만 해도 1년차 기사 중에 60대 이상이 70%가 넘어요. 이분들은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니 회사 말을 잘 듣거든요. 1년 지나면 연 15일을 쉴 수 있지만 병가 내면 근무로 인정을 안 해요. 사납금을 입금 안 하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도 생돈 입금하고 가요. 무단결근 세 번 하면 바로 잘리니까요.”

자정 무렵,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에 승객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대리기사들을 태우는 택시를 봤다. 황씨는 “서울까지 택시가 빈 차로 가야 하니 대리기사에게 한 사람당 3000원씩 받고 같이 나오는 것”이라며 “대리기사가 많아져 택시 영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을 벗어나면 대리기사가 모이는 집합 장소가 있어요. 대리기사가 워낙 많다보니 대리기사를 태우러 다니는 셔틀버스도 생겼어요. 셔틀버스보다는 택시가 편하니까 저런 식으로 짝을 이뤄 잡아타는 일이 흔하죠.”

그는 밤 9시가 되면 주차장이 넓은 기사식당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 전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들른다. 주행 도중 볼일이 급할 땐 가까운 주유소를 이용한다. 언제 탈지 모르는 승객이 먼 거리를 가자고 할 때를 대비해서다. 전국 각지에는 그처럼 사납금을 채우려고 불철주야 달리는 택시기사가 무수히 많다. 서울에는 매일 5만대의 택시가 돌아다닌다. 개인택시 4만5000대는 사흘에 하루를 쉰다. 그러나 회사택시 2만대는 쉴 새가 없다. ‘사납금’의 덫에 걸린 기사들은 ‘가불’ 신세를 면하려고 때로 승차거부나 불친절을 범하기도 하고 도박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전액관리제 정착이 절실한 이유다.

이들은 내년부터 전액관리제의 전면 시행을 강력히 추진하기로 한 서울시의 방침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사납금제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사측과 노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전액관리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처벌규정 강화 등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황씨는 “전액관리제를 도입하면 노사상생의 길이 열리고 승객들도 한결 친절하고 안전한 택시를 타게 될 것”이라며 “전액관리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누구보다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었다. 황씨와 헤어질 시간이다. 그는 싸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세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히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폐차 직전의 택시를 끌고서.

신동아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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