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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 릴레이 강연 |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다’ ⑥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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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고시와 의약분업

대학입시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정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고등고시예요. 행정·사법·외무고시입니다. 이게 변하면 한국 사회의 정의는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어요. 왜냐 하면 과거시험 전통 때문에 그래요.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가 500년 동안 시행됐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조선만큼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았던 나라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관리가 세계적으로 유능해요. 우리는 관리자 욕을 하지만, 전 세계 관료의 수준을 보면 한국의 관료가 아마 으뜸이거나 두 번째 될 겁니다. 미국에서는 관료를 세컨드 클래스라고 해요. 퍼스트 클래스는 뭐냐? 그건 CEO, 고용주예요. 비즈니스맨.

의약분업 배경에도 사회정의 개념이 도사리고 있었죠. 약을 약사가 팔아야 될까, 아니면 병원에서 팔아야 될까. 너무 골치 아픈 내용이에요. 우리나라는 그냥 칼로 자르듯이 이쪽으로 떼줬는데 그것 때문에 전국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홍역을 치렀어요. 이후 약은 약사가 팔고 의사는 진료만 하라는 게 정의 개념으로 정착돼 있습니다.

기여입학? 우리나라는 기여입학 허용하면 정권이 뒤집힐 거예요.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란이 일어날 거예요. 그런데 미국 대학에서는 보편적인 일이에요. 그들은 학생들의 가문을 파악하고 있어요. 제가 하버드대학교 1학년들 지원서를 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고요. 쭉 적어놓고 나서 당신은 다음에 열거하는 라스트네임-패밀리죠-중에 속합니까? 그래서 무슨 이름인가 봤더니 1번이 케네디 가문이에요. 케네디 가문이 하버드대에 줄곧 기부를 해왔거든요. 그러니까 그 기부에 대한 공으로 케네디 가문 학생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반대할 수 없어요. 다 그렇게 생각해요.

미국은 무상의료? 천만의 말씀! 아직도 돈 무지무지 많이 내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 학교에 이상묵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분이지요. 그분이 40대 중반에 제자와 함께 미국에 연구하러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차가 완전히 뒤집혔어요. 제자는 죽었어요, 그 자리에서. 이 양반은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살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목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전부 마비가 됐어요. 병원에서 석 달 있었어요. 학교에서 이분을 모시고 오려고 하자 병원비를 내라고 했어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죠. 10억이에요, 10억. 그걸 어떻게 내요? 결국 변호사가 가서 병원비 깎아서 모셔왔지요. 그래서 지금 강의하고 있거든요. 이게 미국이에요. 영국은 완전히 다르죠. 영국은 완전히 무상의료니까요. 무상의료에다가 무상교육, 부자 증세.



마음의 습관

그러니까 정치체제에 따라서 사회정의 개념이 다른 겁니다. 게다가 습속에 따라 달라요. 습속은 우리 관습으로 마음의 습관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정치체제는 복잡하니까 다 접어두고 주로 습속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한국인의 마음습관이 뭐냐? 이거를 잘 들여다봐야 사회정의, 또는 우리가 다 공유할 수 있는 공공철학을 가질 수 있겠죠. MB 정부에서 공공사회를 이렇게 정의해놨어요. 책임지는 사람, 행동 기회, 약자 배려, 차별 없는 사회. 누가 반대를 하겠어요? 5가지 정책과 8개의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중요한 개혁사항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사회정의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5개 의제와 8개 과제가 실현됐더라도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거든요. 앞으로 불평등을 생산해낼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마음의 습관에 이게 가득 있어요. 상도(常道), 통의(通義), 관습, 도덕, 상식. 저걸 감싸 안는 너와 나의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참 어려운 얘기죠. 이게 바로 공공철학이에요. 많은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그 가치, 바로 이게 마음의 습관입니다.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걸 해결했을 때 그 기준이 좋다, 그 정도면 나도 가겠다, 라고 하는 바로 그것!

쟁점이 되는 문제를 간단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로 공정성에는 경계지대가 있어요. 그 말은 국민소득이 증대함에 따라, 예컨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해결돼야 될 문제가 우리나라는 2만달러 시대에 불거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대처나 미국의 레이건, 프랑스의 미테랑, 독일의 콜이 재임할 때가 대체로 1만달러 시절이에요. 그 시절에 이런 문제를 해결했어요.

분배투쟁이나 제도의 정비가 일어난 시점이 대개 6000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입니다. 1만달러 수준에서 대개 제도를 만들어놓고 2만달러, 3만달러로 줄달음쳐 올라갔던 게 선진국의 경험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게 2만달러 근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1만5000~2만달러에서 터져나오고 있어요.

무상급식이라든지 반값 등록금 문제도 그래요. 경제적인 파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분배가 쟁점이 될 때가 됐다는 거죠. 선진국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넘어왔어요. 우리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3만달러, 4만달러까지 가는 건 참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1만달러나 1만5000달러까지 올라왔을 때는 경제동력만으로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경제동력이 생겨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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