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거슨 감독(왼쪽)이 경기 전날 공개훈련에서 박지성을 따로 불러 뭔가를 주문하고 있다.
2) 리더는 조직원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
퍼거슨 감독은 다혈질 성격과 독설로 유명하다. 화가 나면 세계적인 스타였던 베컴에게도 축구화를 던질 만큼 불같은 성질로 유명하지만 리더 퍼거슨에게 이런 무서운 면모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단점을 존중하고 한 번 믿은 선수는 끝까지 믿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따뜻한 면도 있다는 것이 그가 감독으로서 가지는 두 번째 장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맨유에서 뛰었던 프랑스 출신의 스트라이커 에릭 칸토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칸토나는 퍼거슨만큼이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길들지 않은 야생마 같은 선수였다. 퍼거슨은 칸토나의 재능을 간파하고 다른 이들이 실패한 칸토나 길들이기에 성공해 그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칸토나는 걸핏하면 훈련시간에 늦었고 복장 또한 불량할 때가 많았다. 퍼거슨은 다른 선수들이 같은 행위를 했을 때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날리고 혼을 냈지만 칸토나에게는 채찍 대신 당근을 썼다. 당근을 쓸 때 더 유용한 선수라는 점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퍼거슨의 칸토나에 대한 인간적 배려는 1995년 1월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벌어진 ‘쿵푸 킥’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이 경기에서 칸토나는 크리스털 팰리스의 수비수 리처드 쇼를 발로 차 심판으로부터 퇴장명령을 받았다. 칸토나가 경기장을 나오는 순간 크리스털 팰리스의 팬 한 명이 칸토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칸토나는 그 팬에게 달려들어 이단 옆차기를 날렸다. 안전요원에게 끌려 나갈 때까지 칸토나는 몇 차례 더 주먹질을 했다.
퍼거슨은 이 사건으로 칸토나가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징계를 받을까 우려했다. 이에 퍼거슨은 프리미어리그 축구협회가 칸토나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전에 자체적으로 4개월 출장정지를 결정했다. 축구협회(FA)의 중징계를 완화하고자 한 조치였다. 결국 칸토나는 영국 FA로부터 8개월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칸토나에게도 큰 손실이었지만 당시 블랙번과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던 맨유 역시 상당한 전력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맨유는 블랙번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퍼거슨에게는 우승을 내준 슬픔보다 선수생활에 대한 의욕을 잃은 칸토나를 보듬어 안는 일이 더 시급했다. 칸토나의 경기감각을 위해 지역 하위리그 팀과의 경기를 주선했던 퍼거슨은 FA로부터 어떤 형태의 경기에도 칸토나를 출전시킬 수 없다는 경고를 받는다. 칸토나는 영국에서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생각에 짐을 싸 프랑스로 돌아가버렸다. 퍼거슨은 칸토나를 설득하려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는 밤을 새우며 “너에게는 아직 미래가 있다. 너의 재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칸토나를 달랬다. 퍼거슨의 노력 덕분에 칸토나는 다시 마음을 추슬러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징계가 풀린 후 첫 경기였던 리버풀 전에서 골을 넣으며 퍼거슨의 신뢰에 보답했다.
퍼거슨이 칸토나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다른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7년 5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칸토나는 은퇴 전 퍼거슨에게 자신의 은퇴 계획을 말하고 당분간 비밀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퍼거슨이 당시 맨유 최고의 공격수로 잘나가고 있던 칸토나의 갑작스러운 은퇴를 끝까지 비밀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퍼거슨은 자신과 절친한 친구 사이인 몇몇 기자의 집요한 취재에도 공식발표 때까지 이 사실을 함구하며 칸토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3) 리더는 심리전의 고수여야 한다
퍼거슨은 또한 심리전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는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주제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 등 여타 스타 감독들과 고단수 심리전을 벌인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퍼거슨은 백전노장의 노회함을 유감없이 발휘해 때로는 자극적으로, 때로는 유순하게 행동하며 맨유 선수단과 상대편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요리한 바 있다.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힘들지만 퍼거슨의 노련함은 팀의 성과 향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그 자신의 스타성과 맨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5~96년 시즌을 퍼거슨은 맨유 청소년팀 출신인 베컴,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 당시 신인으로 대거 물갈이를 하고 시즌을 맞이했다. 애스턴 빌라와의 개막전에서 맨유는 1대 3으로 패했지만 이후 케빈 키건 감독이 이끄는 리그 1위팀 뉴캐슬을 맹렬히 뒤쫓기 시작했다. 선두 뉴캐슬을 따라잡기 위해 퍼거슨은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여기에는 고도의 심리전도 포함됐다.
퍼거슨은 뉴캐슬과 경기를 앞둔 팀에 공개적으로 “우리와 할 때 열심히 싸운 것처럼 뉴캐슬과 할 때도 열심히 싸워달라”고 말했다. 뉴캐슬이 어쩌다 지기라도 하면 “오 신이시여. 나는 키건을 동정합니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퍼거슨은 키건 감독이 상처를 잘 받고 감정적으로 유약한 인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심리전만으로 맨유가 우승을 차지하진 않았겠지만 키건 감독은 퍼거슨과의 경기에서 유난히 서툰 모습을 많이 보였다. 결국 시즌 마지막 맨유는 대역전극을 벌이며 뉴캐슬을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맨유는 1995~96년 시즌에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더블 크라운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