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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 장제국│동서대 총장·국제정치학 jchang@dongseo.ac.kr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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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불량이 발생했다며 생산라인을 모두 세우고 모든 인력을 원인규명에 투입시켰다. 그 불량이라는 것이 제품 표피에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되지 않는 조그마한 점이 찍혀 나왔다는 것이었다. 기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공장은 이미 납품한 제품까지 스스로 회수하고 새것으로 대체해주며 부산을 떨었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을 실감했지만 너무 자존심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제조업 대국’ 일본은 품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생산 공정을 함부로 변경하지 않는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품질 안정에 대한 보장이 없는 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기업의 유연성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품질 제일주의는 리스크(risk·위험)를 동반한 ‘혁신’보다는 ‘카이젠(개선)’을 더 중시한다. 일본 공장에선 사방에 ‘카이젠’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는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반면 ‘혁신’이라는 문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세계는 ‘유목민이 되라’고 말하는 지식기반산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유목민은 정착과 정확성보다는 이동과 신속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 기업은 아직 농경사회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 삼성전자가 부랴부랴 ‘갤럭시S’를 만들어 맞대응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본에서 나오기 힘든 이유다.

일본이 지금 겪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제 설정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전쟁 가해자라는 ‘원죄’로 인해 ‘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이 만든 평화헌법을 받아들였다. 국가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발전에만 매진하겠다는 국가경영 철학을 내걸었다.

일본은 1991년 걸프전에 130억 달러라는 막대한 지원금을 내며 미국을 도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은 일본에 자위대를 파병해 치안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일본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자 미국은 “군화로 땅을 밟아야(Boots on the ground)”라고 쓴소리를 했다.

일본은 경제 문제에서도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 미야자와 총리는 아시아판 통화기구인 AMF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가 미국이 난색을 표하자 바로 접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적으로 원폭 피해를 경험한 국민의 대다수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정서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보니 ‘애국심’이라는 개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와는 상반되게 일본은 독일만큼 과거사를 깔끔하게 청산하지도 못했다. 이는 일본의 도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국가는 국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춰야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은 여전히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도 일본의 국제 리더십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이 국방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발전에 매진한 것은 고도성장기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열망

대표적 우익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욕심에 얽매여 정치도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다. 일본인의 마음의 땟물을 한번에 흘려보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파장이 커지자 그는 발언을 취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 도지사선거에서 이시하라는 4선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당선에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열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선 ‘체제 유신’을 내건 하시모토 도오루 씨가 오사카시장으로 선출됐다. 오사카에서부터 개혁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산시키자는 호소가 시민들에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최근 이시하라 도지사와 하시모토 시장이 연합해 신당을 창당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변화 욕구에 부응한다는 것이 창당 이유라고 한다. 과연 두 사람이 변혁의 태풍을 몰고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변혁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강력하고 일방적인 관료 리더십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강력한 리더십에서 찾는다는 것은 문제일 수도 있다. 즉 일본 국민성에 복종의 DNA가 내재해 있다면 이것이 ‘창의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근원적인 이유일 수 있다.

일본의 침체는 과거의 장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관주도형 성장, 정-관-업의 결탁, 제조업 마인드, 배타성, 미국 일변도, 국제무대 저자세는 고도성장기에만 유효했다. 이제는 이러한 것들로부터의 결별을 요구받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의 추락 날개가 없다
장제국

1964년생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학사, 석사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

미국 시라큐스대 로스쿨 법률전문박사(JD)

前 일본 이토추(伊藤忠) 종합상사 도쿄본사 정치경제연구소 특별연구원

前 미국 몰렉스 인터내셔널사 동북아시아 총괄감사

現 동서대 총장

現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만약 일본이 과거 메이지 유신 때처럼 이러한 개혁 빗장을 열게 된다면 이로 인한 국내적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모델에 너무 고착돼 있는 경향이다. 스스로 이런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낼지 의문이다. 이와 동시에 ‘체제 전환’은 ‘보통국가화’를 수반하는 사안일 것이다. 이웃나라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일본이 다시 변신을 꾀한다면 이는 ‘체제 전환’과 ‘보통국가화’라는 이중 명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한류와 전자제품 이후 대비해야

일본의 현재 모습은 우리의 장래 모습이 될 수 있다. 정경유착, 재벌 중심 경제구조, 양극화, 다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잠재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체제 전환’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한류의 세계적 열풍과 한국 전자제품의 세계 석권은 사실 일본이 이미 1980년대에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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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동서대 총장·국제정치학 jchang@dongse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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