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수신제가? 우스운 소리”
▼ 작가 김훈은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문학은 맨 하위에 있는 거라고 했는데요.
“좀 거칠지만 그 말이 함의하는 속뜻을 생각하면, 이런 점이 있어요. 문학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한다는 건 우스운 소리지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중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분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아요. 저 또한 문학은 모든 예술장르의 최하층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문학은 쌀농사 같은 거예요. 쌀이 생산돼야 떡도 빚고 술도 담그죠. 그렇다고 해도 문학이 최종적으로 인간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요. 인간을 구원하는 것까지야 너무 앞서나간 거지만, 문학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소상히 기록함으로써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마침내 ‘내 삶이 이래도 좋은가’ 하는 반성을 불러일으킨다고 봐요. 물론 어떤 쾌락적 감동이 목표가 되는 수도 있고요. 결국은 같은 말이 되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문학이, 사회 안에서, 독자에게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 독자 스스로 반성한다? 결국은 인간중심주의군요.
“그런가요? 인간 중심 하니까 북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저는 햇볕정책 지지자입니다. 정파주의적 발언은 아니고요, 문학은 근원적으로 결핍된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어요. 북한 정권과 상관없이, 북한 주민들은 현 단계 한반도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자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 이웃, 우리 민족이 고통 받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만 잘 먹고 잘산다고 행복해집니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일부터 과감히 해야 된다고 봐요. 사랑과 분노가 없으면 작가라 할 수 없겠지요. 언뜻 제가 ‘좌파적’으로 보일 수 있을 거예요. 소외된 자, 가난하고 상처 받은 자 편에만 서도 좌파라고 하는 이상한 세상이니까요. 저는 어떤 정파주의나 집단주의를 싫어합니다. 거기에 소속될 생각도 없어요. 작가는 결국 ‘독고다이’죠. 작가는 단독자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저는 문학이 한국식의 편협한 좌우를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고 여겨요. 좌우 너머에 인간 중심주의가 있다고 믿고요.”
德治하는 사람이 정치 이끌어야
▼ 정파주의를 싫어하는 국민으로서 올해 총선과 대선에도 관심이 없나요?
“그건 아니고요. 우리 시대는 애써 이룩한 선진화와 민주화, 잘 먹고 잘살게 된 부의 가치와 혜택을 알뜰히 분배해야 할 시기예요. 민주화, 경제 선진화를 우리가 성취했는데, 소수 일부 자본가에게 그 밥상을 다 바친 꼴이 됐어요. 농사는 함께 지었는데 일부가 그 과실을 독점한다면 되겠습니까. ‘보편적 복지’라는 말도 웃겨요. 치사하고요. 누가 누구에게 은혜롭게 베풀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요. 복지는 시혜가 아니잖아요? 복지는 함께 일한 만큼 그 과실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의 환경을 만들어가자는 거지 시혜가 아닙니다.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는 그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이들을 뽑아낼지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밥만 먹는다고 이 경쟁사회가 주는 불안이 다 해소되겠어요? 이제 ‘덕성’이 있는 정치, 곧 ‘덕치(德治)’를 하는 분들이 우리 정치를 이끌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너무 센 싸움닭들만 뽑은 거 같아요. ‘덕(德)’은 부동심이고, 그러니 어떤 면에선 타고나는 것입니다. (정치)‘꾼들’은 저희들끼리 딴 데 가서 놀라고, 좀 내보냅시다.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 수면으로 불쑥 떠오른 것도, 싸움닭들이 판치는 상황에서 그 닭쌈 같은 정파주의, 또는 독식주의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논리로만 풀고자 하면 곤란해요. 안철수 현상은 문화적으로 봐야 해요.”
▼ 자살 기도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박범신은 고등학생 때 2회, 대학생 때 1회, 작가 활동 당시 1회 등 모두 네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자살 시도 그거,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막내이자 외아들이었는데, 세상과의 불화가 너무 많아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던 때 그런 일을 저질렀어요. 세상은 미쳐 있는데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미쳤는데 세상은 정상이라거나, 그런 생각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예술가적 감수성에 다치고 있었던 거죠. ‘자기 죽음’이 유일한 ‘자유의지’라는 식의 섣부른 말에 치우쳐서요. 1980년 마지막 자살 기도를 할 때는 그 시대상황이 저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어요. 이를테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작가로서 나는 겨우 연재소설 써서 밥 먹고 사는구나’하는, 그런 자괴감이 날 너무 괴롭혔어요. 그때는 인기작가로 불리며 살 때였고,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그 짓을 벌였어요. 경기 안양시에 살 때였는데, 더러운 안양천변에서 팔 동맥을 긋고 누웠는데 낌새를 느꼈던지 아내가 아파트 경비원을 총동원해서 피 흘리면서 실신해 있는 나를 찾아내 병원으로 옮겼어요. 아내가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 한 자살 기도 이야기는 자전소설 ‘더러운 책상’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자식들에게는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자살 기도 이야기는 조만간 속편으로 쓸 생각입니다.”
▼ 작가 박범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 있나요?
“생텍쥐페리가 쓴 ‘인간의 대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쓴 ‘촐라체’도 가만히 생각하면 생텍쥐페리 작품을 반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 들어갈 무렵 습작기에는 정음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과 민중서관에서 펴낸 ‘한국문학전집’, 동아출판공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 등을 열심히 읽었어요. 특히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전후문학전집’은 나를 작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그때는 다들 클래식한 고전문학작품을 통해 문학공부를 했지요. 좋아하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탕달, 최인훈, 김승옥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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