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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인권위의 국제적 리더십 모색과 좌절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④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인권위의 국제적 리더십 모색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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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소임

“집권 당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인권위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입법하는 과정에서는 참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단체가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타협에 타협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권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소회를 밝힌 김 전 대통령은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길게 언급했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태가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시민적 인권도, 생존적 인권도 최하의 상태에 있습니다. …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대량의 식량과 비료, 의약품과 의류 등을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생존적 인권의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지원에 대해서 감사하고, 우리를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민심이 크게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인권에 대해서는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공산국가의 인권은 외부의 간섭과 억압에 의해서 해결된 예가 없습니다. … 그러나 개혁, 개방으로 유도했을 때는 독재적 통제가 크게 완화되고 심지어 민주화까지 되었습니다. … 저는 햇볕정책이야말로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적 공존과 평화적 교류 협력, 평화적 통일을 통해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장차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사를 마감했다.



“저는 인권위 출범 5주년을 계기로 이제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가능한 노력을 다해줄 것을 바라고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인권위가 발표한 내용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의 축사의 수준을 반영했다.

현직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 천명이 없었다. 인권위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스치듯이 “개성 이북으로는 좀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한 정도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 10일, 인권위가 주관한 세계인권선언 제55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강력한 언어를 사용해 인권위의 독립성을 옹호했다. 인권위의 권고나 요구사항을 정부가 십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도 했다.

“여러분 중에서 인권위가 하자는 대로 정부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지 않으냐고 말씀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가지 충돌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부 안에도 서로 충돌되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이 모순들을 되도록이면 모순 없이 조화롭게 가져가는 것이 성숙한 사회입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정부에 맞서는 인권위의 자세를 바람직한 업무 자세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인권위가 정부와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 인권위의 주장과 정부의 주장이 부딪치는 것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당연한 현상이고, 그것이 서로 존중되고 수용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인권위와 정부가 서로 신뢰를 공유하는 동반자가 되자고 제안했다.

“인권위도 대통령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비판하지만 때로는 많은 정책적 대안도 건의하고 있습니다. 저도 인권위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권위뿐만 아니라 인권위가 대변하고자 하는 많은 분의 처지와 생각과 이해관계를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말보다 실천이 모자라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저의 생각이나 실천보다 우리 정부는 훨씬 더 모자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고 함께 가십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을 침해받는 많은 사람이 의지할 수 있고, 그들에게 믿음과 기대를 심어주는 기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권위를 설립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함께 설립 당시의 자신의 인권의식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겸양을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인권위를 만드실 때 저도 ‘어지간히 됐는데 인권위 만들어서 뭘 할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에야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나는 이 연설문을 읽고 적잖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 대통령이었기에 더욱 존중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도 사석에서는 때때로 인권위의 과도한 행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2004년 자신이 공들여 만들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담길 내용을 인권위가 비판하고 나서자 격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이렇게 인권위 독립성의 철학과 원칙을 천명했기에 인권위는 소신껏 일할 수 있었다. 창립 이후 6년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아래서 인권위는 순항한 셈이다. 개별 사안에서는 정부와 충돌했지만 큰 틀에서 인권위의 기능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와 양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친(親)인권적 여건 아래 신생 대한민국 인권위는 국제사회의 찬사와 부러움을 사면서 모범적인 인권위로 성장할 기대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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