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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사회의 한계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매뉴얼 사회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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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망자는 단 두 명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올 수 있는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5.7m라는 2002년의 일본공학협회(JSCE) 분석을 수용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앞의 방파제 높이를 5.7m로 높여놓았기에 1차 쓰나미는 방파제에 부딪혀 물러났다. 쓰나미를 본 직원들은 근무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1차 쓰나미가 있고 8분 뒤 훨씬 큰 2차 쓰나미가 몰려왔다. 2차 쓰나미의 높이는 무려 15m였다. 따라서 간단히 방파제를 넘어 해발 10m와 13m인 후쿠시마 제1발전소 부지 위로 몰려왔다.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 것이다. 원전은 워낙 단단하게 짓는 건물이기에 지진이 났다고 모두가 대피하지 않는다. 원전 안전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호기 조종실에 있던 직원들은 두 번째 쓰나미가 덮치고 2분 뒤인 오후 3시 37분, 1호기에서 비상발전기 전원이 나갔다는 신호가 켜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4분 뒤 2호기에서도 비상발전기 전원이 나갔다는 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조종실에 있던 사람들은 현장 요원이 아니었기에 어디에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 이러한 일에는 지진에 놀라 언덕으로 대피한 현장 요원들이 능숙하다.

지진에 놀라 언덕으로 피신했던 현장 요원들은 쓰나미가 잠잠해진 3시 52분부터 다시 근무지로 돌아왔다. 그때 그들은 몰랐지만 1·2호기의 터빈건물에 직원 두 명이 숨져 있었다. 이들은 쓰나미가 몰려올 때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떨어지거나 쓰러진 무엇인가에 맞아 숨졌거나 정신을 잃고 있다가, 쓰나미를 맞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였다.



이 두 사람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숨진 유이(唯二)한 사람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폭발을 일으켰지만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 시각에 숨진 것이 확인된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곤 추가 사망자가 없었다. 이는 방사선에 과대 피폭돼 숨진 사람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당시 방사선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를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근무처로 돌아온 도쿄전력 직원들은 곧 비상발전기들이 멈춰 선 이유 파악에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전에서 사용하는 비상발전기는 20피트 컨테이너만큼이나 크다. 도쿄전력은 이러한 비상발전기를 터빈건물 지하에 설치해놓았다.

물에 잠긴 비상발전기

비상발전기가 나갔으니 전기가 없어 창이 적은 터빈건물 안은 암흑천지였다. 그러한 어둠을 뚫고 비상발전기를 찾아간 도쿄전력 직원들은 비상발전기가 있는 지하실이 원전 부지를 덮친 바닷물에 완전 침수돼 있음을 발견했다. 넓은 지하실은 쓰나미의 기운이 남아서인지 아직도 물이 출렁대고 있었다.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려면 바닷물부터 뽑아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양수기(揚水機)를 돌려야 한다. 양수기를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하는데, 전기를 생산할 비상발전기가 물에 잠겨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원전 운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완전 전원 상실(SBO·Station Black Out)’에 직면한 것이다. 아뿔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비상발전기 14대를 모두 지하에 설치해놓았다. 쓰나미는 육지를 무섭게 습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나 움푹 파인 곳의 물은 그대로 고여있다.

도쿄전력이 비상발전기를 터빈건물 1층에 설치해놓았다면, 비상발전기는 쓰나미에 잠겼다가 물이 빠진 뒤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지하실에 설치해놓았으니 모든 전원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 대국이다. 따라서 물에 잠긴 비상발전기를 복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1층에 비상발전기가 있었더라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엄청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물에 잠긴 비상발전기는 물을 빼내지 않는 한 복구할 방법이 없다. 모두가 SBO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해발 15m의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천재(天災)다. 과학적인 관측의 한계 때문에 피해를 보았으니 천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5m의 쓰나미가 덮치는 것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발전소가 물바다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설계한 것은 인재(人災)다.

1호기 건설 때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설치했기에 나머지도 모두 지하에 설치했다. 누구도 왜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해보지 않았다. 앞에서 한 것을 매뉴얼로 보고 따라하는 매뉴얼 사회의 비극이다.

매뉴얼 사회의 한계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쓰나미가 밀려오는 모습과 바닷물에 침수된 터빈건물의 지하실(CCTV에 찍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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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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