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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사회의 한계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매뉴얼 사회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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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아직 한국은 일본처럼 큰 쓰나미 피해를 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동해안은 평균 수심이 2000m가 넘는 ‘큰 물통’이기에 해저 지진이나 해저 화산 폭발 등이 일어나면 쓰나미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천만다행으로 한국에 있는 21기의 원전은 모두 비상발전기를 1층에 설치해놓았다. 따라서 쓰나미가 덮쳐도 물이 빠져나간 다음 수리해서 대처할 수가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이후 세계의 원자력발전회사들은 대지진과 쓰나미가 겹쳤을 때 원전이 SBO 상황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 결과 많이 채택한 것 중의 하나가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것이다. 트레일러는 큰 컨테이너를 끌고 다니거나 블도저나 전차 같은 중장비를 싣고 가는 바퀴가 아주 많은 트럭이다.

디젤엔진을 토대로 만드는 비상발전기의 크기는 20피트 컨테이너만하니 트레일러에 달아 끌고 다닐 수 있다. 원전에는 사고 시에 대비한 긴급 차량을 배치한 곳이 있다. 그곳에는 소방차 등이 있는데, 그러한 곳에 비상발전기를 달아놓은 트레일러도 배치해놓는다. 그러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 트레일러를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보지 않는 높은 개활지로 이동한다. 그리고 지진과 쓰나미가 끝난 뒤 원전으로 돌아와 전기를 생산해 대처하는 것이다.

테러와 전쟁,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상상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하라는 ‘Imagine the Unimaginable. Think the Unthinkable’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현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해 대비책을 세워놓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이다.

Thik the unthinkable



창의력이 없는 사회와 조직은 죽은 사회, 죽은 조직이다. 창의력은 사고 피해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창의력을 가진 몇몇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상상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하는 사회와 조직이 발전한다.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고 시킨 것만 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고 죽은 사회다. 관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한 지인은 러시아 군대를 소재로 이러한 일화를 말해준 적이 있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 휘황찬란한 길거리의 모퉁이에 벤치가 하나 있는데, 늘 병사 한 명이 교대로 나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 있는 러시아 병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관광객을 위한 배려로 병사를 내보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왜 번화한 거리에 러시아 병사를 내보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추적에 들어갔다. 그 결과 그는 제정 러시아 시절 그곳에 벤치를 설치하고 새로 페인트를 칠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됐다. 크렘린궁에서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행사가 벌어지니 신사숙녀들이 그곳을 지난다. 성장을 한 그들이 무심코 벤치에 앉으면 낭패를 볼 것이기에 러시아 왕실은 페인트가 마를 때까지 사람들이 벤치에 앉지 못하게 하려고 그곳으로 병사를 파견했다.

그런데 잦은 인사이동으로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떠나고 새 사람이 연속해서 왔다. 그들은 시키는 것에 충실한 시종(侍從)업무 전문가들이었으니 전임자가 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품지 않고 이어나갔다. 그 결과 러시아 병사 한 명이 아무 할 일도 없이 벤치로 나가 한 시간 서 있으면서 명물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이야기를 해준 지인은 전례(前例)라는 이유로 도처에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과 테러, 범죄를 도모하는 이들은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일의 허점을 이용한다. 자연재해 역시 인간이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일어나 허를 찌른다. 그런데도 관료주의에 눌려 전례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피해가 커진 데는 이러한 관료주의가 한몫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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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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