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도 글로벌 나눔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연예인이나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각지로 날아가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을 돕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에 관한 관심과 논의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다만 문제는 그런 논의와 행동이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들에 일관된 방향성을 부여하는 가치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일은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이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간 전문가의 역량이 함께 모아져야 하지만 이조차 정부가 앞장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외교부 등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봤을 때 정부가 스스로 각성해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차기 대권을 쥐게 될 사람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는 나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유력 대선주자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12월 19일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제정세에 어두운 대권주자,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는 대권주자는 여론의 힘으로 레이스에서 조기 탈락시켜야 할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각자의 글로벌 전략을 공약으로 내걸어 평가받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글로벌 전략과 관련해 한국은 우선 국수주의에 가까운 ‘한반도 남단 민족주의’를 버려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지만 이런 식의 민족주의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한반도 남단 민족주의는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를 차별하는 민족주의, 중국동포를 차별하는 민족주의, 혼혈 국민을 차별하는 민족주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계 국민을 차별하는 민족주의다.
‘착한 나라 한국’
조금 더 나아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 중 하나는 ‘착한 나라 한국’일 것이다. 이는 구체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방향성이다. 졸부 이미지, 몸집만 큰 아이 이미지와 같은 현재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착한 나라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단지 이미지 차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그런 사회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몇몇 국가는 이미 착한 나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스위스가 그렇고 캐나다나 북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선진국이지만 패권 지향적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자연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한다. 이들 국가의 내부에는 관용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착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착한 나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착한 경제, 착한 정치, 착한 교육, 착한 문화, 착한 과학으로 이룰 수 있다.
선행 국가를 따라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 사회의 여건은 아직 여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선행 국가를 능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차피 글로벌 전략을 논하기로 하고 새로운 가치, 나아가서 새로운 문명을 지향한다면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과학계의 탈(脫)추격(Post Catch-up) 논의다.
단군의 건국이념 되새겨볼 때
기술 모방에서 벗어나 어떤 나라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정책과 시장을 창출해보자는 것이 탈추격 논의의 핵심이다. 선진국의 선진은 ‘앞서 간다’는 의미인데 이는 현재의 한계를 넘어 아무도 가지 못한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은 구미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글로벌 전략에서도 모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인 탈추격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 전략은 좌우 이념 프레임을 뛰어넘어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훨씬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 서양의 고전은 대개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당치도 않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자신이 살던 고통스러운 시대, 절망적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책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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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이들의 상상력은 재평가된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상상력의 끝인 ‘최선’을 말하고자 했다. 그러면 현실은 최선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최선에 접근하게 된다. 이로 인한 편익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점 때문에 고전 속 아이디어는 황당하지만 인류의 자산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한국의 글로벌 전략도 이러한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시조 단군이 나라를 처음 세울 때 ‘홍익인간’이라는 글로벌 전략을 만들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