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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도시, 하늘의 도시, 잃어버린 도시

  • 김홍락│한국가스공사 고문·전 주(駐)볼리비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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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한 우루밤바의 모나스테리오 리콜레타의 전경.

잉카제국은 1100년께 쿠스코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이곳의 가옥에는 아직까지 잉카시대의 유물 흔적이 남아 있다. 자세히 보니 지붕 위 용마루에 각종 형상을 토기로 만들어 올려놓았는데 황소, 퓨마, 닭, 십자가, 사다리 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잉카인은 집을 지을 때 우리가 하는 상량식과 비슷한 의식을 치르는데 앞서 언급한 형상을 용마루에 올리면서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에게 축복을 내려줄 것을 빌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로 힘의 상징인 황소와 퓨마 그리고 행운의 상징인 닭의 형상을 올렸는데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십자가 등이 추가됐다.

길가에는 붉은색 헝겊을 감은 장대를 세워놓은 집들이 눈에 띄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치차를 파는 집(chicheria)임을 알리는 표시라고 한다. 치차는 잉카인이 신성시하는 음료로서 옥수수를 15일간 발효시켜 숙성(maceracion)시킨 것으로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바치던 음료다. 그중 딸기주스와 혼합한 로사다(rosada)가 특히 맛이 달고 풍미가 좋다고 한다. 잉카시대 때 신에게 바치는 치차를 관리하는 소녀들을 ‘처녀(virgen del sol) ’또는 ‘뉴스타(nusta)’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러한 어린 처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최근 페루의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발견된 후아니타(Juanita)라는 이름의 미라는 13세의 어린 처녀로서 제물로 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인디언 부락에서는 미인대회 성격의 뉴스타 선발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오얀타이탐보는 잉카시대의 성곽도시다. 거대한 돌을 다듬은 안덴(anden)이라고 하는 축대를 계단식으로 쌓아놓은 게 보인다. 현장에 있는 돌을 바로 사용한 곳도 있으나 대부분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채석해 운반했다니 당시 얼마의 노력이 기울여졌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마소도 없고 바퀴도 없던 시절에 통나무를 바퀴 대용으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육중한 바위를 얹은 뒤 수많은 사람이 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운반했다는 것이다. 최근 쿠스코의 한 축제 때 이러한 방법을 재현해보았는데 하루에 옮길 수 있는 거리가 몇m에 불과했다고 한다. 스페인군이 이곳에 왔을 때도 오얀타이탐보는 공사를 계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요새 맞은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콜카(Colca)라고 하는 음식 저장소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잉카인은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냉장고 구실을 하는 저장고를 설치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고기는 말린 상태인 차르키(charqui), 즉 오늘날의 육포 형식으로 저장했고 주식인 감자는 발로 밟아 물기를 제거한 후 말리고 얼리기를 반복한 추뇨(chuno)라는 형태로 7~8년간 저장했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추뇨는 과학적인 음식저장 방법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안데스의 주요한 음식으로 남아 있다. 오얀타이탐보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모라이(Moray)를 향해 떠났다.

모라이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오얀타이탐보에 얽힌 슬픈 전설을 들었다. 원래 오얀타이는 역찰을 지키던 성주였다고 한다. 태양의 축제 기간에 오얀타이는 쿠스코에서 잉카의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둘은 잉카법에 의하면 결혼할 수 없는 사이였다. 당시 잉카제국은 엄격한 신분주의 사회여서 왕족은 왕족끼리만 결혼했다. 오얀타이는 귀족 신분이었지만 왕족은 아니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알려지자 공주는 쿠스코의 감옥으로 보내지고 오얀타이는 지금의 오얀타이탐보로 피신했다. 오얀타이는 쿠스코에서 온 군인들에게 체포된다. 잉카 왕은 이들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둘을 사면해 마추픽추에서 여생을 함께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모라이는 잉카시대의 농업연구소로 원 모양으로 이뤄진 계단식 밭이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닮은 12층의 계단식 경작지. 층과 층 사이는 4개의 돌출된 돌 받침을 세워놓아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눈 녹은 물을 지하로 끌어들인 뒤 작은 홈통 모양의 수로로 연결해 경작지에 물을 댈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문명이 스페인에 의해 망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기분이 든다.



산속 소금밭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마라스(Maras) 소금밭으로 향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저 아래 계곡에 번쩍이며 하얗게 빛나는 산속의 염전이 보였다. 이곳은 산기슭에서 솟아나오는 소금물을 받아서 태양열로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곳이다. 잉카 시절부터 소규모로 소금을 만들어왔는데 스페인 식민지 시절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소금 산지로 유명해졌다. 하얀 소금은 사람이 먹고, 흙이 묻어 누런 소금은 동물에게 먹인다고 한다. 거름으로 사용하는 소금도 있다. 마라스의 소금은 너무나 유명해 “마라스에서 왔다(Seras de Maras)”는 말은 “음식이 짜다”는 것을 뜻하는 관용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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