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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⑩

고가(古家) 기왓장에 쌓인 세월

안동 편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고가(古家) 기왓장에 쌓인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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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보듯, 부득이 서울에 머무는 때에도 퇴계한테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퇴계를 앞뒤 꽉 막힌 골샌님이거나 근엄하기 짝이 없는 도학자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퇴계 또한 큰 그릇에 걸맞게 때에 따라서는 한없이 다정다감할 뿐 아니라 유머 감각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퇴계의 둘째 며느님이 청상에 과부가 됐다. 홀로 된 젊은 며느리를 보는 시아버지의 심정이야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양반의 법도가 엄중한 시대인 만큼 달리 도울 길이 없었다. 그 며느님이 어느 봄날 친족 여인네들과 꽃놀이를 다녀왔다. 저녁 때, 화초에 물을 주던 퇴계가 야유에서 돌아오는 며느리의 행색을 눈여겨봤다. 그러곤 저고리 고름에 꽂힌 진달래꽃 한 송이를 눈에서 떨치지 못했다. 그날 밤, 퇴계의 엄명을 받은 큰아드님이 100리 밖 홀아비를 불러들여 여자를 보쌈해 가도록 했다. 꽃 한 송이에도 애틋한 정분을 갖는 여인네가 한평생 독수공방에서 쌓을 고통을 퇴계가 헤아리고 있었다.

제자 하나가 퇴계의 병문안을 왔다. 벌써 퇴계는 여러 날 몸져누워 있는 형편이었다. 막상 선생을 뵈었지만 제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누워 있는 이에게는 절을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계가 누운 채로 제자에게 말했다.

“뭘 그리 우물쭈물하는가. 자네도 나처럼 누워서 인사를 하면 되지.”

별세계, 지례예술촌.



안동대학교를 지나 영덕으로 가는 임하댐 호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애당 및 지례예술촌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댐을 건너서 처음 마주하는 고가가 수애당이요, 그 길을 계속 가서 높은 산 하나를 넘으면 지례예술촌이다. 이 두 곳 다 고래의 안동 명문가 집이다. 고요한 데서 고유의 안동 양반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도 두 집안이 같다.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이 댐의 물속에 잠길 처지가 되자 조상의 얼이 담겨 있는 종갓집과 서당, 제실 등을 마을 뒷산 허리로 옮기고 그 관리와 보존의 이로움을 생각해 예술촌으로 사용 형질을 변경한 지례예술촌의 경우, 근래에 이르러 청소년에서부터 외국인에게 이르기까지 독특한 한국문화 체험학습장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 자신 휴대전화조차 통하지 않는 이곳 별채에서 한 주일을 머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때가 있고 어린 학생들 앞에서 문학수업 같은 것을 한 적도 있는데 바라보이는 것은 산과 물뿐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듯한 별세계에서 가지는 이러한 한때의 적막은 그 후로도 오래 기억이 남아 그리운 것이 됐다. 의성 김씨 종부가 만들어내는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추억도 마찬가지다.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 동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고려대문인회 회장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등


최근 이곳 촌장인 김원길 시인은 대단히 의욕적인 사업 하나를 꾸미고 있다. 안동지역은 물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명문 종가들을 하나의 문화관광 벨트로 묶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리 내력이 깊은 고가라 해도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그치면 머잖아 폐가가 되게 마련. 그 아까운 유산들을 오래 보존하며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옛 사대부 집안이 가졌던 전통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목적을 가진 이 일에는 벌써 100여 집안이 동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퇴계 태실이며 학봉 종가 등이 뜻있는 신혼부부들의 신혼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음도 이들 명가 후손들의 바뀐 의식과 수요자들의 개성적인 문화의식이 결합된 데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것이 없다.

신동아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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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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