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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⑬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과감한 트레이드 유망주 육성으로 혁신 주도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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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시즌이 끝난 2005년 10월 말 엡스타인은 쉬고 싶다는 말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구단이 3년간 총 450만 달러(약 60억 원)를 지급한다는 비교적 좋은 연봉 조건을 제시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야인으로 돌아가 야구와는 다른 일을 찾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하지만 보스턴 구단이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하며 연봉 상향 의사를 내비치고 사임의 원인이 됐던 구단 사장 래리 루치노와의 관계도 나아질 조짐을 보이자 2006년 1월 엡스타인은 3개월 만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2006년의 성적도 좋지 않았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6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페이롤을 지급하면서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란 오명을 남겼다. 이유는 2005년과 같았다. 7000만 달러(약 840억 원)를 들인 J. D. 드루, 5200만 달러(약 600억 원)를 들인 일본 출신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거금을 지불하고 영입한 선수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액의 FA 영입에 대한 실패는 지금까지도 엡스타인의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J.D. 드루와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에도 보스턴 레드삭스는 투수 존 래키, 외야수 칼 크로포드, 1루수 애드리언 곤살레스 등에게 수억 달러의 돈을 퍼부었지만 이들의 성적은 모두 죽을 쒔다.



두 번째 우승으로 보스턴을 최고 구단으로 만들다



엡스타인은 이 난관을 강력한 팜(farm) 육성으로 돌파했다. 즉 레드삭스 휘하에 있는 마이너리그나 트리플에이리그 팀 선수들을 적극 육성하고 이들을 1군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속속 데뷔시키기로 한 것.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팜 랭킹 순위 중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받는 지표인 BA 팜랭킹에서 매번 25위 밖이었던 레드삭스의 팜은 엡스타인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해 한때 전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엡스타인이 만들어낸 강력한 팜은 2007년의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어졌다. 2004년 우승은 매니 라미레즈,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스타와 엡스타인이 세이버 메트릭스의 이론을 살려 영입한 저비용 고효율 선수 즉 외부 인사가 주도한 우승이었다. 당시에는 레드삭스 팜 출신 주전 선수가 우익수 트로트 닉슨밖에 없었다.

반면 2007년 우승은 레드삭스 팜 출신들이 주도한 내부 인사 위주의 우승이었다. 팜 출신 선수인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 3루수 케빈 유킬리스, 마무리 투수 조너선 파펠본은 시즌 내내 전력에 큰 힘을 보탰다. 중견수 제이코비 엘스베리와 투수 클레이 벅홀츠 등은 시즌 후반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엘스베리는 홈런왕 매니 라미레즈가 부상으로 빠진 9월에 그를 대신해 라미레즈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플레이오프 때는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며 눈부신 활약을 했다.

결국 레드삭스는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1세기가 된 후 월드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한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가 유일하다. 특히 이제는 페디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더스틴 페드로이아야말로 테오 엡스타인이 만들어낸 스타 선수라고 하겠다.

페드로이아는 메이저리거치고 체구가 작아 많은 스카우터가 그의 능력을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그의 가능성을 보고 신인 드래프트 때 상위 순번에 그를 지명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 후에도 그의 성적에 관계없이 꾸준히 페드로이아를 기용하라고 감독에게 종용했다. 페드로이아는 2007년 주전 2루수로 우승에 기여했고 200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전체 최우수선수(MVP)가 되어 엡스타인의 발탁에 보답했다.

젊은 단장의 전성시대를 열다

엡스타인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은 메이저리그 내에 아이비리그 출신 젊은 단장의 전성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메이저리그 프런트에 아이비리그 출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엡스타인의 성공 이후 하버드대 출신의 폴 디포데스타 전 LA 다저스 단장, 코넬대 출신의 존 다니엘스 텍사스 레인저스 단장, 하버드대 출신의 피터 우드포크 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부단장 등 야구계 경험이 많지 않은 학구파 영건들이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젊은 단장, 즉 1995년 33세의 나이로 부임한 케빈 타워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단장, 1997년 35세로 부임한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등은 모두 선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영건들은 선수 경험이 없어 현장과 괴리돼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명석한 두뇌, 뛰어난 수학 및 경제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분석적이고 냉철한 운용을 거듭해 메이저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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