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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루게릭병 치료비까지 모아 저개발국 어린이 후원”

탤런트 차인표의 멘토 ‘구두닦이’ 김정하 목사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루게릭병 치료비까지 모아 저개발국 어린이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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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치료비까지 모아 저개발국 어린이 후원”

김정하 목사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기 전까지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저개발국 어린이들을 도왔다.

▼ 막상 닦아보니 힘들지는 않으시던가요?

“군대 있을 때 제가 고참 워커를 진짜 잘 닦았거든요. 아프기 전에는 제 구두도 늘 직접 닦아 신어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손님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 교회 앞길이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보니 구두 신은 사람이 드물어요. 행인들이 다 등산화를 신고 있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홍보전단지를 돌린 겁니다. 그러면서 고마운 분을 많이 만났습니다. 1만 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후원금으로 쓰라며 안 받는 분도 계셨고, 후원금을 보태주기 위해 일부러 구두 닦으러 오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 수익은 좀 남았습니까.

“초기 투자비용이 2만 원밖에 안 들었거든요. 구두 닦는 동안 손님이 신을 슬리퍼와 제가 쓸 팔토시, 구두솔과 약을 산 비용이지요. 그 투자가 밑천이 돼서 지금 8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으니 엄청난 열매를 맺은 거 아닙니까. 지금도 먼 나라에서 그 열매들이 커가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 목사님 또한 어려운 형편인데,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이유는 뭡니까?



“어릴 때 홀로 외롭게 자라서 결혼하면 아이를 많이 갖고 싶었어요. 우리 부부에게 두 아이가 있지만 입양을 통해 아이 세 명을 더 키우고 싶었지요. 입양 기관에 전화해서 입양 의사를 밝혔더니 집 규모, 월 고정수입, 자산 같은 경제적인 부분과 양육 환경을 꼼꼼히 따지더군요. 결국 우리 형편이 안 돼 입양 자격을 얻을 수 없었고요. 그냥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기르면 될 줄 알았는데 실망이 컸습니다. 그때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NGO를 알게 된 거죠. 우리가 보내는 후원금으로 아이가 학교도 다니게 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되니 우리가 양육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이를 입양해 직접 키우는 것과 달리 곁에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는데 아쉽지는 않은가요.

“아이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며 그 나라의 환경과 문화에 맞게 성장하는 게 좋으니까 아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8명의 아이를 교회 이름으로 후원하고 있는데 모두 사는 나라가 달라요. 가까운 곳은 1년에 서너 차례, 먼 곳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편지로 왕래하지요.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받아보기도 합니다. 그걸 보면 뿌듯하고 대견한 느낌이 들고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아이들은 염소가 새끼를 낳았다, 엄마가 동생을 낳았다 같은 소소한 얘기를 편지에 적어 보냅니다. 저는 답장에 ‘너는 뭐가 됐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항상 아이의 미래 모습을 그리며 기도하는 내용을 담지요. 또 지금 한국의 계절은 어떻고, 추석 명절에는 뭘 한다는 식으로 한국 문화를 알려주려고 애를 써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

“하나하나 다 소중해요. 콜롬비아의 사리크는 아주 예쁘게 생겨서 나중에 ‘미스 콜롬비아’가 되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케냐의 에릭은 지도자로 성장하길, 조엘은 장군, 제나보우는 법관이 되기를 바라지요. 사진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느낌이 있는데 거기에 제 희망을 담아서 항상 ‘너는 뭐가 될 거야’라고 말해주지요.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나름의 기도입니다.”

김 목사는 아이들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아내 최 씨를 재촉해 사진을 가져오게 했다. 최 씨가 아이들 사진 8장을 탁자에 펼쳐놓자 김 목사의 눈빛이 반짝하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사진 하나하나를 일일이 눈짓으로 가리키며 자랑에 열을 올리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중 사리크와 에릭은 차인표 씨가 김 목사를 위해 현지에 직접 가서 동영상을 찍어오기도 했다. 김 목사는 “차 집사가 동영상을 들고 우리 교회로 와서 함께 봤다. 화면에 비친 아이들 모습이 반갑고, 우리 부부를 위해 고생을 마다않고 먼 곳까지 다녀와준 차 집사 마음이 고마워서 동영상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는 동영상을 본 뒤 흙벽 위에 함석지붕을 얹어놓은 에릭의 낡은 학교가 눈에 밟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보수공사비로 보냈다고 했다. 차 씨와 주위 사람들이 약값에 보태라며 내놓은 돈을 쓰지 않고 모아뒀던 것이다.

8번째 삶의 고비

▼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은 언제 받았습니까?

“2010년 10월에 받았어요. 처음엔 어깨가 아파서 오십견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추 채우기와 젓가락질이 힘들어지고, 걸을 때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약간 끌리는 느낌이 들었지요. 병원에 갔더니 경추가 파열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후로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았을 때, 의사가 차트에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라고 쓰는 걸 봤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라고 나오더군요. 일명 루게릭병이요. 의사는 뇌 MRI 검사 결과 종양이 있으면 그것 때문일 수 있으니 좀 기다려보자고 합디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 부부는 제발 뇌에 종양이 있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검사 결과 뇌는 깨끗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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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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