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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대통령의 리더십

권불 5년 시대, 새로운 지도자의 자세

스마트 파워, 나력裸力, 잔향殘香 갖춘 ‘아름다운 리더’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명지전문대 총장 kwkim@snu.ac.kr

권불 5년 시대, 새로운 지도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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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스마트 파워를 적절히 활용한 인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루스벨트는 파나마 운하 건설을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생각했다. 자서전을 통해 “나는 내각과 상의하지 않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의회에서 인준한 ‘스푸너 법(Spooner Act)’은 정부로 하여금 파나마 운하 건설을 콜롬비아와 협상해 처리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콜롬비아가 파나마 지역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루스벨트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자, 그는 파나마 주민들을 고무시켜 콜롬비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다. 그리고 곧 파나마를 ‘새로운 국가’로 인정하는 한편 미국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 전투함을 파견했다. 파나마 정부는 즉각 미국과의 협상에 조인했고, 운하 건설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루스벨트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때 내각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란을 독려하고 전투함을 파견했다는 점에서 그는 하드 파워를 이용한 리더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 파워의 측면 또한 존재한다. 소프트 파워는 단순히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무대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 국가행위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기반을 두는 권력이며 하드 파워의 정당한 행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스벨트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단순히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만 동원한 것이 아니다. 파나마를 새로운 국가로 인정하고 그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지켰다는 점에서 소프트 파워도 함께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여러 협상에서 하드 파워를 사용하면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인 소프트 파워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리더가 스마트 파워를 행사할 줄 안다고 해도 권력을 혼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승자의 논리가 레토릭(rhetoric)이다. 그러나 패자의 논리가 더 옳은 경우도 많다. 이를 헤레스세틱스(Heresthetics)라고 한다. 선거에서 2등은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보듯, 경쟁에서 항상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져도 의연할 수 있고, 더 큰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대통령선거 때 상대를 비방만 하지 말고 존중하면서 이기거나 또는 질 수도 있는 게임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모두가 다 경쟁에서 이기고 모두가 스마트하면 세상은 멋지고 편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무미건조해지거나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정상에 올라갈 수는 없다.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밝히고, 스스로 고뇌하고 회개하며 성찰할 수 있으면 그게 내가 설 땅이다. ‘타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나’를 위해서라도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등만큼 꼴찌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권력자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려면 권력을 지키고 있을 때뿐 아니라, 권력을 내려놓을 때를 늘 생각해야 한다. 두고두고 리더를 기리게 하는 것은 나력(裸力)이다. 보통 리더들은 자리를 탐하고 하드 파워를 거머쥐려 한다. 그러나 권력의 본질과 본 모습을 제대로 안다면 자리를 맡지 않아도, 아니면 자리에서 물러나도 사람들이 숭상하게 된다. 물론 비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빈자의 미학’ 같은 것이다. 중국 베이징대 명예교수를 지낸 지셴린(季羨林)의 말대로 세상은 어차피 “다 지나간다”고 생각해야 현명하다. 한때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을 통틀어 한 축과 한 선에서 내 좌표를 항상 가려야 하는 것이다. 잔향(殘香)은 그래야 나온다.

나력과 잔향

잔향은 나력과 같은 의미에서 은은한 기품을 말한다. 권좌에 있다가 내려와야 제대로 평가받는다. 진정 훌륭한 지도자였는지는 자리에 없을 때 알 수 있는 법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도 남이 떠받들고 우러러보게 되는 힘이 드러나는 것이다. 거기에 잔향이 은은히 풍기면 더할 나위 없다. 훌륭한 리더들은 나력의 힘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잔향도 풍긴다. 대표적인 인물이 체코의 하벨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만델라는 민권운동가, 종신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변호사,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총선거에서 당선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가 아직도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나력이다. 잔향 또한 그윽하다. 하벨이 퇴임 때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 연설은 오래도록 회자된다.

우리나라의 인물 중 나력이 있는 분은 송인상, 김준엽, 강영훈, 신현확, 김재순, 이만섭 같은 분들이다. 김준엽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국무총리직 제의를 받았을 때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제자들을 생각하면 자리를 맡을 수 없고, 또 지식인이 벼슬이라면 굽실거리는 풍토를 고쳐야겠기에 국무총리직을 수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나력과 잔향의 대표적인 인물을 하나 더 소개한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다. “권위와 힘은 자리나 직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존경심에서 나온다”고 믿은 그는 중국 곳곳을 다니며 인민의 삶을 살폈기 때문에 숭앙받는다. 1950년대 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시 그는 해질 대로 해진 잠옷, 기울 대로 기운 인민복을 입고, 식사는 두 가지 이내의 반찬과 탕으로 간소하게 먹는 등 검소한 삶을 살면서 인민의 애환을 나눴다. 영양보충에 소홀한 총리를 위해 어느 날 소시지를 잘게 썰어 된장에 절인 채소와 버무려 상에 올렸더니, 그가 대번에 알아내고 “모든 국민이 숨죽이며 고통과 싸우고 있는데, 나에게만 좋은 음식을 준다 한들 어찌 그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앞으로는 아내인 덩잉차오가 주방에 내려가 사 온 재료가 규정에 맞는지 또 고기가 들어 있는지 살펴볼 것이네”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떤 경우라도 국가의 돈을 개인적으로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봉급이 모자라 매주 두 끼는 거친 잡곡을 먹고, 3년 동안의 경제 불황기에는 몇 달이고 육류를 먹지 않았다. 지도자나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예로부터 권불십년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권불오년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그러므로 권좌에 앉은 사람은 앉는 순간부터 떠날 때를 준비해야 한다.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직위나 직책에서 내려올 때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때 빨리 달려 높은 자리에 올라 다른 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인간은 그가 산 세월을 통틀어 어떻게 살았는지를 평가받는다. 세상 떠날 때 받는 평가가 제일 중하다.

권불 5년 시대, 새로운 지도자의 자세
김광웅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한국행정학회장,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역임

저서 : ‘국가의 미래’ ‘통의동 일기’ ‘서울대 리더십 강의’ ‘융합 학문, 어디로 가나’ 등


연말 대선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인물에게 나라의 5년을 맡길 수 있을까? 나력과 잔향 이야기를 하면 정신없는 소리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에 난삽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무슨 태평성대의 말이냐고 할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같은 리더라면 스마트 파워를 갖고, 나력을 드러내며, 잔향을 풍길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어야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만 해결하기를 기대하면 더는 얻을 것이 없어 국민은 실망의 늪에 빠질 것이다. 눈앞만 보지 말고 먼 내일로 눈을 돌려보자. 이제 민주학습도 여물어가니 이러한 흐름에 걸맞게 멋지고 아름다운 리더를 찾자.

신동아 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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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명지전문대 총장 kw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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