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는 법이 없었던 순임금
그러나 부처님 수준에 있는 사람은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굳이 자기가 나서야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니면 이 불쌍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고귀한 자녀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곰 어머니’는 귀가 커서 언제나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다. 인자한 어머니는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만큼 자녀들이 사랑스럽고 자녀들의 말이 귀하기 때문이다. 인자한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자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자당(慈堂)’이라 한다. 자(慈)는 ‘이’ 또는 ‘그’라는 뜻의 자(玆)와 ‘마음’이란 뜻의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자녀와 한마음이 되는 어머니는 자녀가 힘들 때 함께 힘들어하고 자녀가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곰 어머니’의 정치도 그러한 정치다. 맹자는 순임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위대한 순은 위대한 것이 있었으니, 잘도 남과 하나가 되셔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시며 남에게서 취해서 선을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以爲善).”
순임금은 자기가 나서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남과 하나가 되어 남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언제나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어머니 같은 임금이었다. 그래서 순임금의 백성들은 부모를 그리워하는 자녀들처럼 순임금을 그리워하며 따랐다. 그래서 순임금 시대는 온 나라가 안락한 가정이었다. 그런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남을 신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특히 공주병, 왕자병 소유자인 한국인은 더욱 그러하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어떤 단체의 장이 되면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활기가 넘치고 신바람이 난다. 한국인은 신바람이 나면 못해내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단체의 리더가 되면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가 죽고 김이 샌다. 한국인은 기가 죽고 김이 새면 심하게 분열하고 자멸한다. 생각해보라. 한국이 망하는 패턴은 특이하다. 망하는 나라는 외국이 쳐들어오기 전에 스스로 무너졌다. 고구려도 신라도 그렇게 망했고, 고려도 조선도 그렇게 망했다. 한국 사회는 리더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영향을 받는다.
넷째, ‘곰 어머니’는 언제나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의 화신이다. 곰의 이미지를 가진 인자한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자기가 희생하는 사랑의 화신이다. 인자한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권리를 자녀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휘두르는 적이 없다. 어머니가 가진 모든 권리는 자녀에게 헌신하고 봉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면 대통령의 권리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뿐, 그것을 국민에게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언제나 자녀에게 헌신하는 고달픈 어머니처럼, 언제나 국민에게 헌신하는 고달픈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권력을 쟁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대통령 자격이 없다. 대통령은 참으로 고달픈 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국민을 자녀처럼 대하는 고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똑똑한 사람은 남을 포용하기 어려워
다섯째, ‘곰 어머니’는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의 단점을 잘 짚어낸다. 똑똑한 사람은 남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기 쉽다. 그러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기 쉽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남을 포용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람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작금 대통령선거에 임하는 우리의 방식에서 보면, 마치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경연장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통령후보들을 앞에 세워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난해한 문제들을 질문한다. 경제학 박사가 패널로 나와 어려운 경제 문제를 질문하고, 또 교육학 박사가 패널로 나와서 어려운 교육 문제를 질문한다. 그리고 국방 문제 전문가가 나와서 국방정책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쏟아낸다. 이외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총출동해 첨예하고 복잡한 질문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그러면 각 후보는 거기에 맞는 답을 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똑똑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곰 어머니’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서구 방식을 모방하는 데서 나온,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잘못된 관행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대통령후보라면 이러한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만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라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그 분야 최고 실력자를 찾아내어 그에게 전담시키겠다’고 답하면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똑똑한 사람을 뽑을 것이 아니라 덕을 가지고 국민을 자녀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뽑는 바른 방법 중 하나는 그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방법에는 ①부모에게 효도해온 사람인가 ②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사람인가 ③친구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인가 ④이웃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인가 등등을 따져보는 것이 바른 방법이다. 패널들이 질문을 할 때도 이러한 점을 중점 질문하는 게 옳다.
‘곰 어머니’는 자녀들의 마음과 언제나 한마음이 되는 사람이다. 자녀와 한마음이 되는 어머니는 언제나 자녀의 아픔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곰 어머니’는 언제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한 존재이고 아픈 데를 감싸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한 ‘곰 어머니’를 자녀들은 늘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곰 어머니’는 언제나 새롭다. 지겹지가 않다. ‘곰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자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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