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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⑥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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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악몽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28회 기념식에 참석한 후 자리를 뜨며 정당 대표들과 인사하고 있다.

나 또한 시위자들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불필요한 과격성 때문에 정당한 주장의 설득력이 약화되는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강하게 주장해 경찰을 상대로 한 진정사건의 결정문에 시위자에게 평화적 시위의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법리적으로는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인권위가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된다고 믿었다.

청와대와의 소통 채널은 오래전에 끊어져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나는 청와대와 사적인 소통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을 통하지 않은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다소 편협하지만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유지해야 할 원칙으로 믿었다. 전임 위원장도 그랬을 것이다. 청와대 직제로 볼 때 인권위는 민정수석실 관장이다. 사정(司正)을 담당하는 부서인 만큼 대체로 검사 출신이 민정수석에 기용됐다. 검사는 태생적으로 인권위에 대해 비우호적이다. 인권위의 설립부터 강하게 반대한 법무부였다. 다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해도 인권위의 정체성 자체를 인용하느냐 아니냐는 대통령의 인권철학과 민정수석의 개인적인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소통이 단절된 청와대

이명박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 이종찬 변호사는 취임을 축하하는 내 전화에 답신을 보내왔다. 자신의 업무가 안정되면 만나서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를 포함한 제반 사항을 논의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자는 답례를 해오지 않았다. 한두 차례 접촉해보다 포기했다. 그와는 과거에 약간의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어쩌다 정부 기념식이나 연회장에서 마주치면 멋쩍어하면서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어색한 표정을 짓곤 했다. 복잡한 심사가 교차했다. 2011년 1월, 그는 감사원장에 지명되었으나 낙마했다.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검사 시절 쓴 박사학위 논문이 성의 있고 실무가로서는 수준도 높았다는 형사법 교수들의 칭찬을 들은 바 있다.

촛불집회 진정사건 등에 대한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은밀하게 만나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교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초임교수 시절부터 알 만한 거리에 있던 사람이다. 자신의 업무는 아니지만 내 사정이 너무 안타까워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밀명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고 순수한 동기를 믿었다. 둘의 은밀한 만남을 이제라도 공개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에게 불편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인권위는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곳이 아니다. 오로지 정부의 잘못만 지적하는 곳임을 잘 알지 않느냐?” 나는 거듭 강조했다. 지극히 예의 바른 그는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떠났다.



집회 초기에는 일부 인권위 직원들이 구경에 나섰다. 주말에 가족 나들이 하듯 문화제를 참관한 셈이다. 더러는 군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를 지목했다. 그리고 이들 단체 출신으로 인권위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도표로 그려내기도 했다. 참여연대 설립 초기에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지낸 나도 물론 지목 대상이었다. 민변 출신 위원과 사무총장도 언급됐다. 이런 관점에 서면 인권위가 진보 세력의 정치적 보루로 여겨질 수도 있다. 실로 안타까운 편견이다.

신중한 심사

시위의 강도가 더해가면서 반정부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강한 경고와 당부를 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시위 현장에 ‘참여’하지 말라고. 인권위 고위 간부가 직접 시위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며 내게 귀띔해준 경찰간부가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경위를 파악해 엄중 조치할 테니 증거를 달라고 했다. 그는 나의 입지를 생각해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했노라고 했다. 처음부터 증거물이 없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그가 나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평소 경찰의 애로에 대해 동정적인 편이었다. 특히 전경들의 힘든 사정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었다. 기회 닿을 때마다 그들이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걸 강조하곤 했다. 진압과정에서 부상당한 전경을 위문하기 위해 경찰병원도 방문했다. 대체로 냉랭한 반응이었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경찰도 적지 않았다. 후일 내게 사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 경찰도 많았다.

어느 주말,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비서울대 출신으로 텃세가 센 서울대에서 교수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면서 많은 후배의 신망을 얻은 분이다. 한 총리는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정치적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정서는 이해한다면 위로했다. 그는 다른 위원들도 나처럼 균형 있는 판단을 하도록 위원장이 유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외무부 장관과 유엔총회 의장을 역임한 그다. 누구보다도 국제적 기준에 정통해 있는 그분이 인권위 고유 업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총리가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 내 강경기류를 전해주면서 내게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 총리는 그해 11월, 인권위가 주최한 국제회의의 개회사를 맡아주었다.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인권위가 촛불집회 사건의 결정문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개회에 앞서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인권위는 인권위대로의 기준이 있는 것이니까” 하면서 대범하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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