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산중에 핀 산작약.
그러나 원예종으로 심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산야에도 자생하는 작약이 있었다. 그동안 마구잡이로 채취한 탓에 요새는 깊은 산중에서나 귀하게 만날 수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돼 함부로 채취하면 큰일 난다. 잎사귀나 뿌리의 생김새가 재배 작약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꽃도 홑꽃으로 다르다. 적색과 백색의 2종이 있는데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백색이 흔히 보이고 적색의 꽃이 귀하다.
작약에 관련된 아름답고 애틋한 전설이 하나 있다. 중국 쓰촨성에 한 선비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만나는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지내니 적적하기 그지없었다. 매일같이 대하는 것이 책이고 가끔 뜰에 나가 작약 꽃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미모의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선비의 시중들기를 간청했다. 처녀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현숙한데다 교양도 있고 글재주도 있어 어느 사이 선비의 말동무가 됐다. 그렇게 이 처녀와 밀월같이 달콤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유명한 도인이 선비를 찾아왔다. 그래서 처녀를 찾아 인사를 시키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기척이 없었다. 선비는 처녀를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담벼락에 몸이 스며든 채 얼굴만 내민 그녀를 만났다. 처녀의 말이 자신은 작약의 화정(花精)인데 선비를 흠모해 오래 모시려 했으나 도인이 와서 정체를 간파당해 숨게 되었노라고 했다. 더 이상 인간세상에서 선비와의 인연을 지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면서 서서히 얼굴이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더니 종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선비는 망연자실하니 있다가 그 후 수년을 넋을 잃은 이처럼 지냈다.
한방에선 작약의 뿌리를 약용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성질이 평하고 약간 차며 맛은 시고 쓰다. 조금 독이 있다” 했다. 주된 효능은 “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픈 것(血痺)을 낫게 하고 혈맥을 잘 통하게 하며, 굳어지고 뭉친 내장근과 골격근을 정상화하고(緩中), 악혈(惡血)을 흩어지게 하고, 종기를 가라앉힌다. 또 극심한 복통을 멎게 한다. 일체의 여성 병과 산전 산후 제병에 쓴다. 생리가 잘 나오게 하며 치루와 등창 등에도 쓴다” 등이다.
작약, 세상 모든 약초의 절반
작약을 잘 쓸 수 있다면 한의학의 절반을 정복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사실 한의학의 절반이라기보다는 광대무변한 약초의 세계에서 그 절반이 아닐까도 싶다. 그 정도로 작약은 온갖 질환에 쓰여서 중요하고도 큰일을 해내는 약물이다. 감기에서부터 중풍이나 각종 내상질환의 치료까지 작약을 빼놓고는 한의학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작약이 펼치는 치유의 세계를 간신히 곁눈질하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작약은 적작약과 백작약으로 나눠서 그 약성을 따지지만 솔직히 적백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우선 작약의 가장 큰 효능은 보혈(補血)이다. 혈허(血虛)로 인한 모든 병증에 쓰인다. 그러나 단독으로 써서는 큰 효과가 없다. 당귀나 숙지황 등 다른 보혈제와 가미해 쓸 때 효과가 있다.
또 하나의 효능은 통증과 경련을 그치게 하는 지통지경(止痛止痙)의 효능이다. 그렇다고 작약이 진통제이거나 항경련제인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여러 가지 급만성의 통증질환 및 경련증상에 대단히 효과가 좋다. 이를테면 위경련 등에 작약을 위주로 다른 약재를 적절히 가미하면 금방 효과를 본다. 다리에 쥐가 나는 증상에도 작약이 즉효를 보인다. 복부의 경련성 통증에도 다량의 작약을 쓰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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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적작약의 효능으로 분류되지만, 작약은 열로 인한 출혈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우수한 효과가 있다. 또 어혈을 흩뜨리므로 뇌졸중에 의한 편마비나 폐색성혈전혈관염 등에 작약이 효과가 있다. 또 여성의 월경기나 산후병들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