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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인생 핸디캡은 절망 아니라 자극제”

휠체어 타는 정신과 의사 류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인생 핸디캡은 절망 아니라 자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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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보다 외팔이가 낫다”

“주 원장님 병원을 찾아갔더니 휠체어를 타고 진료하고 계셨어요. 분만 등은 못하지만 대부분 치료를 하시고, 단골 환자들도 주 원장님의 장애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어요. ‘의사도 휠체어를 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그때 생각이 바뀐 거예요.”

처음부터 묻고 싶었다. 왜 몸이 성치 않으면서 처음부터 목발이나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은 걸까? 그는 “내가 아프고 장애가 있다는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저는 아무리 아파도 휠체어 생각은 못했어요. 오히려 ‘나는 걸어 다닐 수 있는데 왜 휠체어를 타?’ 하고 생각했죠. 자존심이 상한 것도 있었고, 스스로 저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진짜 의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애를 알리고 휠체어를 받아들여야 했어요. 결심했죠. 그랬더니 편해지더라고요.”

그는 휠체어에 이내 익숙해졌다. 아프지 않은 척하는 대신 휠체어를 타고 더 빨리 환자에게 가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다. 환자들은 처음 류 씨의 모습에 놀랐고, 혹자는 아픈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는 것을 껄끄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었다. 오히려 “저 사람도 아픔이 있으니 내 아픔을 더 잘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엿보였다. 18명 중 18등이라는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그는 끝내 인턴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몇 차례 도전 끝에 정신과 레지던트가 됐다.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며 회사를 박치고 나온 후, 그 꿈을 이루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대구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국립부곡병원. 그는 그곳에서 머물며 총 스무명 남짓한 입원환자를 돌본다. 동선이 뻔한 병원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다. 최대한 무리가 안 되게 병실까지 걸어가 환자 침대에 걸터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환자들은 그에게 선뜻 제 공간을 내어줬다. 식사는 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이처럼 일상적인 질문을 주고받으며 그와 환자는 ‘한편’이 된다.

“2년 전인가요, 한 젊은 여 환자가 자살 시도를 하고 입원했어요. 심한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었어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치료한 끝에 지난해 퇴원했고, 지금은 한 장애인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본인도 정신장애인이면서 다른 신체장애인들을 돕는대요. 얼마 전 만났더니 ‘환자들이 은행 갈 때 더 잘 도와주려면 운전면허를 따야겠어요’ 하는데 참 예쁘더라고요. 저는 보행의 자유는 잃었지만 이곳에서 사람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과에서 사람 여행

고3 때 막연한 꿈이 실현되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왜 그는 그토록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

“물론 몸이 불편하니까 타협점을 찾은 거기도 하지만, 본래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요. 신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다른 ‘사이드 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토록 먼 길을 돌아왔으면서 또다시 새로운 일이라니. 그가 말을 이었다.

“정신과 레지던트 2년차를 마치니까, 또 이 일에 대한 회의가 들어요. 저는 한 방에 승부내는 걸 좋아하는데 정신병은 치료하는 데 참 오래 걸리거든요.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는 결심 대신 ‘또 어디 재밌는 일 없나’ 기웃거리게 돼요.”

구체적인 계획을 묻자 그가 설레는 얼굴로 대답한다.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야구선수의 ‘멘탈 코치’가 되는 건 어떨까 고민 중이란다. 또한 요즘 중고교생 상담에도 관심이 간다고 한다. 인터뷰 직전에도 파주 한 중학교에서 중학생들을 만나고 왔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전하며 그 역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정신병을 앓으시는 분들은 참 오래 아프시거든요. 나아지기보다는 병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게 더 현실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아직 어린 중학생의 경우 제 말 한마디, 처방 하나에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제 승부사 기질에 맞는 것 같아요.”

“철이 없어 미처 결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그는 늘‘발목’에 발목 잡혔으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장애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 강조한다.

“제 장애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힘드시겠어요’ ‘이것도, 저것도 못하시겠어요’ 하고 물어요. 그런데 웬만한 건 다 하거든요. 전 술도 잘 먹고 놀러 잘 다니고 휠체어 타고 해외여행도 다녀요. 그거 아세요? 미국에서는 장애를 뜻하는 단어로 ‘불가능한(disabled)’을 쓰면 미개인 취급해요. 대신 ‘도전받은(challenged)’이라는 말을 쓰죠. 제게 장애는 평생 안고 갈 도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신동아 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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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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