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선관위가 선거공약 재정 추계 발표토록 입법 추진’

취임 1주년 맞이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2-06-19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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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관위가 선거공약 재정 추계 발표토록 입법 추진’
    ‘함께한 지 어느덧 1년입니다. 되돌아보니 글로벌 재정위기, 물가, 일자리, 가계부채, 신용등급, 금융안전망, 재정건전성, FTA 대책, 공생발전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었습니다. 살얼음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물샐 틈 없는 수비 덕분에 대량 실점 않고, 공수 교대를 기다리며 승리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6월 2일자로 취임 1년을 맞이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글이다. 박 장관은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부처를 이끌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유로존 위기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 마주 섰다. 유로존은 유로화를 국가통화로 사용하는 유럽권 17개국을 말하는데, 역내 몇몇 국가의 부채가 심각하고 상환능력이 없어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6월 4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리먼 사태와 이번 유럽 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라는 발언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이어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5일 “우리 경제, 상저하고(上低下高)가 아닌 점저(漸低)의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에도 저성장이고 하반기에도 더 저성장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그러자 박 장관은 7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2008년에 비해 위기대응능력이 크게 강화돼 대외 충격을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9일 이처럼 금융 당국자들이 시장에 서로 다른 시그널을 준 것을 꼬집고,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시차와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재총선 결과와 함께 22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28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로존 위기뿐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기획재정부의 현안은 물가 일자리 가계부채 재정건전성 등 어느 하나 일거에 해결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유로존 위기도 그저 지나가는 비가 아닐 수 있다. 프랑스 석학 자크 사피르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지난해 말 ‘신동아’ 기고에서 이 위기가 2015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만큼 박 장관은 복잡하고 무거운 이슈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강만수, 윤증현 등 이명박 정부의 전직 기획재정부 장관들도 과도한 업무 때문에 모두 몸을 상하게 할 정도의 피로를 느낀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6월 11일 오후 명동 은행회관 에서 박 장관을 만났을 때 그의 목은 꽉 잠겨 있었다. 이날 원래 인터뷰는 4시 30분에 잡혀 있었다. 그런데 박 장관의 청와대 보고가 두어 시간 길어져 인터뷰 예정 시간이 그만큼 뒤로 밀렸다. 유로존 위기 등 현안뿐 아니라 18, 19일 개최되는 멕시코 G20 회의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할 게 많았다고 한다.

    유로존 역내 불균형이 문제

    인터뷰에서 박 장관은 강만수 회장이 지적했던 것과 달리 국내 경제가 ‘상저중저하고(上低中低下高)’형태로 진행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박 장관은 또 정치권에서 선거공약에 대한 재정 추계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공보 형태로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나설 경우 중립성 훼손 등 반대 논리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내용은 모두 ‘신동아’에 처음 밝히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 등 대외발(發) 경제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유로존 위기에 대해선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요?

    “유로존에 위기가 찾아온 이유는 우선 경쟁력이 서로 다른 나라끼리 한 그룹에 묶여서 통화만 단일화해 불균형이 심화됐기 때문입니다. 이를 역내불균형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독일 같은 나라는 산업 경쟁력이 점점 강해지고, 약한 그리스 같은 나라는 점점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측면을 보면 북유럽 사람들이 근면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반면 남쪽 국가 사람들은 미래보다 현재, 저축보다는 소비를 즐기며, 세금 탈루도 많은 그런 성향이 있습니다.

    또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채권 발행으로 연명했던 정부가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중앙정부 사정은 괜찮은 편인데도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들에 유동성 위기가 생겼어요. 그리스는 산업 기반이 약해서 상환능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것이 유로존 위기의 핵심입니다.”

    유로존 국가들은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현재 통화뿐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과 규율을 강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정부의 구조적 재정적자는 GDP의 0.5% 이내로 줄이며, 국가부채는 60% 이내로 통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유로존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에 맞먹는 정도의 충격을 한국 경제에 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로존 위기로 인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 특히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에 직접 노출된 자산은 많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유럽 전반의 경제가 뒷걸음질치면 우리의 수출 전선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대(對)유럽 수출 비중이 전체의 10% 정도 되니까요. 국내 은행의 대외 자산 가운데 3분의 1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계 은행에서 빌린 겁니다. 그런데 그 은행들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부터 타격을 입는다면 우리 은행에서 돈을 환수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청산)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금융경색을 맞이할 수 있고, 환율상승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저성장 1분기 더 갈 듯

    ▼ 대비책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이미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체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방어벽을 많이 쌓았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일본과 잇따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올해 5월에는 아세안+3(한국·중국·일본) 의장국으로서 역내 자금지원제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 규모를 12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확대하면서 금융시장 안전망을 2중, 3중으로 마련했습니다. 과거에는 1년 안에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외채가 절반이었는데 지금은 33% 정도로 줄었고, 외환보유고도 3100억 달러 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로존 전체가 경착륙해서 파국이 오지 않는 한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외환위기 등과 같은 위기는 오지 않을 겁니다. 다만 유로존의 상황에 따라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줄어드는 것은 감내해야 할 겁니다.”

    ▼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회장 등이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같은 발언을 했는데요. 누구 말이 맞는 겁니까.

    “저 역시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충격을 흡수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과 강 회장도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서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 아닐까 합니다.”

    ▼ 기획재정부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상반기에는 낮아도 하반기에는 회복된다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전망했지만, 여기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6, 7월에 (경제와 관련한) 중요한 이벤트가 많아서 좀 지켜보긴 해야 합니다. 지난 주말 중국인민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췄고, 스페인도 제한적 구제금융을 받아들였습니다. 6월에만 해도 그리스 총선, 이란 핵협상과 제재, G20 정상회의,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거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3차 양적완화(유동성 공급)를 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이처럼 각국의 정책대응도 종합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당초 전망이 약간 지연되는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밝히는 내용인데, 국내 경기의 상저하고가 약간 지연돼 ‘상저중저하고(上低中低下高)’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기 회복시점이 1분기 정도 늦춰질 뿐 당초 전망대로 하반기에는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하반기에 회복될 거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그때가 되면 유가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많이 가시고 정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 경제도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입니다. 중국이 정권교체를 앞두고 경기부양책을 쓰게 되면 그것이 국내 경제에도 활력을 줄 것으로 봅니다. 유럽이 지금의 유로 위기를 이겨내면 우리도 나아질 거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올림픽 특수니 스마트폰3 출시 등은 작은 일일 겁니다.”

    신용등급 A1 자부심 가져야

    ▼ 상저하고와 상저중저하고의 차이를 국민이 크게 느낄까요?

    ‘선관위가 선거공약 재정 추계 발표토록 입법 추진’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박재완 장관 (오른쪽)이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그런 전망의 차이를 당장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감한 산업 분야가 있습니다. 두 가지 전망은 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 지난해 11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올해 4월에는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재정과 대외건전성이 양호하다며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올렸는데요. 임기 안에 등급이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긴 했습니다만.

    “지난 1년 동안 A레벨 이상 등급 국가들의 신용등급 변동 내역을 보면, 등급 강등은 40여 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드물게 상향 전망이 나왔습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2곳이 상향조정한 것에 대해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피치는 일본을 우리와 같은 A+ 등급이면서도 전망은 더 낮게 평가했습니다.”

    ▼ 신용평가사들이 그런 평가를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부의 경우 재정건전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느 나라보다 빨리 회복세를 보인 데다 2011년 광복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균형재정을 맞추겠다고 발표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대개 정치인들이 임기 내 빚을 많이 내서 많이 쓰고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데, 한국이 지난해부터 긴축기조로 간다고 하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요.

    둘째는 대외건전성 지표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석유 철강 곡물류 등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므로 대외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느 정도 체질 개선을 했고, 완충장치도 갖췄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실제 능력보다 과소평가되는 것은 북한과 붙어있는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입니다. 아마도 북한만 없었다면 우리도 ‘더블에이’(AA) 등급이라는 메이저리그에 진입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역풍을 맞고 있으면서 지금 같은 평가를 받는 것만 해도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물론 순풍이 불 때보다 기록이 못하니 서민들이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고요.”

    공약 비용 발표 여론 지지

    ▼ 경제수장으로서 지난 1년간 업무를 수행할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초강대국이 꼬꾸라지는데 우리는 어떻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국내 증시가 많이 출렁거렸지요. 자칫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대외 건전성 쪽 체질 강화와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내 증시가 문을 닫으면, 몇 시간 뒤에 유럽과 미국이 차례로 문을 닫습니다. 한국에서는 밤새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환율도 챙겨야 했습니다. 그때 정말 머리 아프고 힘들었어요. 또 6월부터 8월 사이에 60일 정도 비가 왔습니다. 고추니 배추 같은 채소들이 다 녹아버렸어요. 채소류 값이 너무 많이 뛰어 하늘 보고 원망도 많이 했지요. 연말에는 예산안 문제가 가장 골칫거리였습니다. 지난해는 여야가 모두 복지 지출을 확대하기를 바랐지만 균형재정을 위해 그것을 수용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예산안 통과가 쉽지 않았지요. 결국 양당이 예결위에서 합의해서 통과시켰으니 결과는 좋았습니다.”

    ▼ 지난 4·11총선 전 복지공약에 드는 비용 발표로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복지 예산을 따져본 이유는 무엇인지요?

    “과도한 복지공약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을 촉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부로서는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특정 정당의 안이 옳고 그르다고 말한다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공약을 전부 분석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 부담액이 5년간 최소 268조 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잘 협조해줬어요. 그 때문인지 총선 기간에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가 더 생겼다고 봅니다.”

    현행법상 각 정당의 개별 복지공약에 대한 정부의 분석결과를 공개하기는 어렵다. 제도가 보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박 장관은 5월 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나 호주 등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도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 재정 당국이 선거공약의 재정 추계 결과를 담은 ‘선거 전 재정보고서’를 발간토록 정부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재정당국이 직접 발표할 경우 부처의 중립성 훼손 등의 문제가 파생한다. 따라서 박 장관은 이번 인터뷰에서 좀 더 진전된 방법론을 제시했다. “조만간 정부 입법을 추진할 겁니다. 정부가 당파성 없이 투명하게 추진할 수 있지만, 당파성이 문제가 된다면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각 당의 정책 공약을 검토해 공식 발표하는 방식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 내용을 선거공보에 수록해서 유권자에게 알려준다면 정치적 중립성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고, 유권자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았어요. 국회예산정책처도 가능할 텐데 그곳은 또 국회의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어요. 정부는 대통령의 입김을 우려할 수 있고요. 그러니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서 입법이 되도록 하고, 실제 역할은 선관위가 맡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앞으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통령후보들이 또 복지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까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들이고, 실제 후보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공약이 발표된 뒤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약들에 대해선 가서 말씀드리고 다듬어야 하겠지요.”

    ▼ 대선후보가 정해질 경우 재정을 추계하고, 그 내용을 공개할 작정인지요?

    “우선 내부 분석은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지, 세법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준비해야 하겠지만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이번에 권고가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지 않을 겁니다. 그럴 경우 중앙선관위 같은 데서 분석해서 발표하는 게 좋겠지요.”

    ▼ 올해 대통령선거에 앞서 공약의 재정보고서를 의무화하는 게 가능할까요? 정부 입법으로 제도화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이번 대선에 맞춰 국회에서 이 사안을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여론이 지지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각 당의 정책공약에 대해 재원이 얼마나 드는지 객관적 선거관리기구가 분석해서 국민에게 알려드리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론에서 지지를 해준다면 빨리 입법화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19대 국회와 잘 협의해야 하겠죠.”

    ▼ 현재 예산실에서 내년도 예산 정책의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기조는 무엇인지요?

    “역시 균형재정이 첫째 화두입니다. 복지지출 수요가 폭주하고 있으므로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일하는 복지 쪽으로 가야 합니다. 복지제도가 근로유인이나 저축동기를 저해하면 안 됩니다.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 복지 수혜자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일하는 사람이 더 잘살아야 하는데, 그 반대로 된다면 제가 보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일을 하겠어요? 다 복지혜택을 받으려고만 하지.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나라 살림도 거덜 날 것이고, 상당수가 일하지 않는 사회로 갈 것입니다. 정부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일해도 살림이 잘 나아지지 않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잘해야 해요. 그들이 땀 흘려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둘째 화두는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혜택을 주는 맞춤형 복지입니다. 셋째 직접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예산이 마중물이 돼 민간투자나 민간 연구개발을 촉발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하루 두 번 도시락

    인터뷰가 길어져 저녁 먹을 시간을 훌쩍 넘기자 박 장관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비서들이 미리 준비했던 도시락을 가져오자 박 장관은 지나가는 말로 “나는 도시락이 제일 좋더라. 간편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느라 이날 점심도 도시락으로 때웠다고 했다.

    박 장관은 MB 정부에서 인수위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일해왔다. 수많은 측근이 순장조에 이름을 올렸다가 사라졌지만 박 장관은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 곁에 있다. 그에게 정치적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지금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장관이지만 한때 정치인이었고, 지금까지 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현직 장관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발언에 지극히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 같이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 다수가 비리에 연루돼 있습니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요.”

    ▼ 인사 실패가 원인일까요?

    “노코멘트입니다.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사실 제가 잘 모르고.”

    ▼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해 거는 기대는 무엇인지요? 이번 대선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제가 이번 대선의 시대적 과제, 다음 대통령의 덕목에 대해서 발언하게 되면 가장 근접한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연상되고, 특정 정당이 제시하는 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면 국무위원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일탈해서 주제 넘은 발언을 했다고 비난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해임 건의안이 제출되지 않을까요? 하하.”

    2008년 ‘신동아’와 한 인터뷰 때 그는 당시 상황을 골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당시 쇠고기파동 등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있었는데 그는 “첫 홀은 졌다. 그러나 17홀이 남았다”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지금은 그에게 몇 번째 홀이고, 상황은 어떠할까? 엉뚱한 질문에 박 장관은 야구광답게 야구 어법으로 답변했다.

    “공격보다는 수비를 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게임에서 실책을 두 개 이상 하면 이기기 어려워요. 그런데 실책이 없으면 지기 어려워요. 의외로 사람들이 수비를 우습게 아는데 요즘 공격보다 수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풍이 계속 불어닥치는 상황이고 우리 경제가 파고를 견뎌내는 것이 중요한 상황입니다. 유럽이나 대외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대선 같은 정치 일정이 있으니 안정된 경제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타자를 내세워 홈런을 칠 수도 있지만 병살타를 때리거나 삼진아웃 당하는 것보다 짧게 잡고 치면서 최소한 선행주자는 진루시키는 팀플레이를 하는 사람, 스윙 궤적이 짧은 사람이 정책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 많은 돈이 들어가는 추경예산을 짜는 등 강타자에 의존하는 빅볼(big ball)보다는 미세조정 등 스몰볼(small ball) 전략이 필요한 때입니다.”

    스몰볼 전략 필요

    박 장관은 평소 SNS를 잘 활용한다. 페이스북 친구(페친)가 4992명이다. 상한선인 5000명일 때도 있었다. 현재도 친구 신청을 해온 이가 1000여 명이나 된다. 일주일에 4시간 정도 ‘페친’에게 일일이 답장한다. 5월에는 페이스북에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중소기업제품 판매를 홍보하기도 했다.

    ▼ 돈, 명예, 권력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셋 다 좋은 거네요, 하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어요. 한 손에 떡을 쥐고 그 손에 다시 칼을 쥐면 떡도 먹지 못하고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합니다. 권력은 칼 끝에 꿀 같다 하고, 명예도 부질없다고 하고. 돈은….”

    지난 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그는 최하위에서 두 번째인 7억5562만 원으로 등록했다.

    ▼ 아직도 아반떼 하이브리드 타고 다니는지요?

    “모닝 타다 아반떼 타니 비행기 타는 것 같습니다, 하하. 훨씬 큰집으로 이사 갔으니 좋지요.”

    ▼ 장관직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 정치를 할 것인지요?

    “전혀요.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학교를 너무 오랫동안 휴직했으니 빚을 갚아야죠. 돌아갈 곳이 있으니 소신을 갖고 장관직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심하게 할 텐데….”

    ▼ 정치적 경험이 많은데요.

    “저는 정말 정치적 감각이 없어요. 교수 하다 기재부 장관까지 했으니 과분하게 무거운, 어려운 자리에 오래 있어 자책감도 듭니다.”

    ▼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언제 갖습니까?

    “그동안 저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세 번씩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는데, 잘 안되더군요. 사실 바쁘게 살았죠. 이제 저를 돌아보기 위해서도 학교로 가려고 합니다.”

    박 장관이 직원에게 보낸 편지글은 이상국 시인의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로 마무리됐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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