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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치욕의 날, 是日也 放聲大哭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⑦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치욕의 날, 是日也 放聲大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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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인권위 주관으로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인권위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인권선언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각종 캠페인을 벌었다. 인권위 건물에 대형 휘장도 내걸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스위스 제네바의 인권최고대표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2008년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0돌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인권위는 세계인권선언과 대한민국 헌법, 두 문서의 의미를 결합하는 지적활동도 지원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감안해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할지 여부를 타진했으나 즉시 거부됐다. 국무총리도 11월에 국제회의에서 축사를 했다며 참석을 거부했다. 다행스럽게 김형오 국회의장이 참석했다. 사전에 다른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마지막 단계에 조정한 것이다. 그는 축사만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한 잡지는 ‘초라한 환갑잔치’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정황을 보도했다.

10월 30일, 감사원으로부터 조직 관리, 인사관리에 관한 처분요구서를 받았다. ‘대국대과(大局大科·행정관청의 국과 과를 통폐합해 규모가 큰 하나의 국과 과로 만드는 체제)’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조직을 축소하라는 내용은 없었다. 요구에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인권위 스스로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조직진단을 실시한 상태였다.

원세훈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통상의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전형적인 갑과 을의 관계로 대했다. 인권위원장을 무슨 업자 대하듯 하는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의 홀대를 오래 기억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아직도 그때 받았던 모멸감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로부터 며칠 후, 행안부의 조직개편안이 도착했다. 인권위의 규모를 절반(49%)으로 줄이는 내용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은 이듬해 3월 20일 국회 법사위에서 감사원이 인권위의 인원 감축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행안부가 2008년 7월 감사원에 보낸 의견서에는 “각 지역에 걸친 업무 수행과 신규 업무 증가를 고려할 때 인권위의 조직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담은 사실이 후일 드러났다.

직원 21% 축소



전면전이 불가피했다. 내부결속을 강화했다. 각종 시민단체의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여러 차례 문서가 오가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듬해 2월 12일 박선영 당시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인권위가 여러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사실이나 인권향상에 기여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력 축소는 공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유일하게 나경원 의원이 비슷한 취지로 인권위 축소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것이 신문에 보도됐다.

행안부가 통보한 최종안은 정원을 30% 축소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원세훈 장관은 국가정보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월 19일, 후임자로 지명된 이달곤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는 인권위 직원 30% 감축안을 원안대로 집행하겠다고 답했다.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이회창 당시 자유선진당 대표를 어렵사리 만났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상황 설명으로 그쳤다.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매달리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절박한 심경은 이해가 되지만 일소에 부쳤다.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도 조정할 입장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가 부임한 시점에는 이미 인권위에 대한 청와대의 방침이 확고하게 결정돼 있었다. 힘들게 연결된 전화에 대고 그는 이달곤 장관과 둘이서 잘 이야기해보라는 식의 추상적인 덕담밖에 건네지 못했다. 주말에 이 장관을 만났다. 그도 속사정을 털어놓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 결정된 일이라는 말밖에는. 3월 20일, 행안부의 최종안이 통보됐다. 5본부, 22팀의 조직을 1관 2국 11과로 개편하고 정원 208명을 164명으로 축소하는 것이었다. 당초 폐지하기로 한 3개 지역사무소는 존치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이 장관은 강행처리 의사를 통보했다. 그는 자신의 책임 아래 축소규모를 21%로 하향조정한 뒤 청와대의 강한 질책을 받았노라고 했다. 자신이 지방행정 전문가인 점이 간신히 양해사유가 됐다는 것이다. 은근히 대학의 선배 교수인 나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제적 망신

나는 이 장관에게 바로 그 시기에 제네바에서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연례총회가 예정돼 있으니 내가 귀국한 뒤로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나는 3월 22일 출국 예정이었다. 당시 부의장이던 내가 회의에 불참하면 나라의 망신스러운 일이 국제사회 의제로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니퍼 린치 당시 의장과 부의장인 나 사이에 업무분장이 이뤄져 있어, 나는 집행이사회와 몇몇 회의의 사회를 보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차기 ICC 회장으로 내정되다시피 한 나에 대한 린치 의장의 예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3월 31일 대통령의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어 그전에 이 일을 매듭지어야 한다며 강행의사를 꺾지 않았다. 부득이 출장을 취소했다. 3월 23일, 긴급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대국민성명을 발표했다. 법제처장에게 공문을 발송했다. 직제령의 절차상의 하자를 다투는 내용이었다. 국무총리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3월 26일, 차관회의에 안건이 상정됐다. 문경란 당시 인권위 상임위원이 참석했다. 마녀사냥의 분위기를 전해왔다. 서면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역시 답이 없었다. 외교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 앞으로 유엔인권최고대표, ICC의장, APF의장의 서한이 속속 도착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4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인권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인권단체연합회와 국가인권기구가 설립된 국가들이 합동성명을 발표했다. 어떻게 손써볼 겨를도 없이 이명박 정부는 ‘국제인권의 적’으로 낙인찍혀버렸다. 일부 호사가는 어쩌면 남북한이 그렇게 비슷하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모멸감에 낯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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