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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리더십 ②

과학적 지식, 상상력, 통찰력을 갖춘 창조적 ‘비전 메이커’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kwkim@snu.ac.kr

과학적 지식, 상상력, 통찰력을 갖춘 창조적 ‘비전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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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비전

당시 미국은 표면적으로 경제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만성적인 공급 과잉과 실업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29년 10월 월스트리트 주가가 폭락했다. 이 여파가 사회 각 부문에 급속도로 퍼져 물가 폭락, 생산 축소, 경제 활동의 마비 등을 야기했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뉴딜 정책 이후 미국은 대공황의 시급한 위기를 넘기고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고 소외계층의 지위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루스벨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이름 없고, 비합리적이며, 근거 없는 공포는 후퇴를 전진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킵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미래, 경제, 건강보호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첫째, ‘미래’는 투표를 통해 ‘변화냐 현상유지냐’를 선택하라는 의미로, 변화를 위해 자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둘째, ‘경제’는 국가 채무 해결에 자신이 적역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국민을 우선하고 국민이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하는 데 투자하라, 책임과 함께 기회를 부여하라, 중산층을 보호하라, 정부를 재창조하라’를 기치로 내걸고 중산층 조세감면, 전 국민 건강보험, 직업 훈련에 대한 공공 투자, 교육 개혁을 주창했다. 셋째, ‘건강보호’는 빌 클린턴이 가장 중시한 비전이었다.

CNN의 미국 역대 대통령 평가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링컨 전 대통령도 비전과 의제 설정 면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지도자였다. 취임연설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백악관을 개방했다. 개방과 포용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아시아인이든, 우리는 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변화, 이것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라는 연설로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희망을 파는 상인”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나는 현재 우리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프랑스 젊은이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나는 대통령직에 대해 다른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고, 부자증세, 은행규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정책을 제시했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는 2014년까지 극빈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 ‘빈곤 없는 브라질’을 모토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현재 시행 중인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의 수혜 대상 가운데 6세 이하 자녀를 둔 극빈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영양 부족이나 각종 질병을 앓는 어린이를 위해 전국에 설치된 ‘서민약국’에서 의약품을 무료로 공급하도록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온 국민이 단결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푸틴은 각종 제도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경제 현대화를 위해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신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민간 부문 활성화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17년까지 석유·가스, 통신, 금융 부문 등의 국유기업 20개를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국으로 우뚝 일어서겠다는 ‘대국굴기(大國·#54366;起)’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대국굴기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줄곧 표방한 발전 노선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 이후 일고 있는 중국위협론, 빈부격차와 지역 간 갈등 등의 내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중국이 결국은 망할 것이라는 일각의 ‘중국 붕괴론’에 맞서는 개념이다.

역사 속에도 위대한 비전을 제시한 리더는 있다.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는 말로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 평등, 박애로 대표되는 프랑스혁명의 가치를 보전하면서 새롭고 밝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이여! 평등, 자유, 대의정치에 기반을 둔 통합된 공화국에 충성할 것을 우리와 함께 맹세하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비전의 제시 이후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강력한 통치 원칙을 제시하는 새 헌법을 공포했다.

나폴레옹은 근대 세계에서 가장 과학에 관심을 가졌던 국가원수 중 하나다. 1785년 5월 19일 그가 이끄는 이집트 원정함대는 지상군 3만 명과 해군 1만6000명을 400여 척의 전함과 수송선에 싣고 프랑스를 떠나 이집트로 향했다. 이 함대에는 2000문의 대포와 더불어 언뜻 보기에는 전쟁과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색다른 집단이 승선하고 있었다. 천문학자, 수학자, 생물학자, 기하학자, 광물학자, 화학자 등 175명의 전문가였다. 온갖 실험 도구, 기계 그리고 책을 담은 상자 수백 개도 실려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정복이 유럽과 동방 그리고 아프리카 내륙과의 관계는 물론 지중해의 해사와 아시아의 장래와도 관련된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칭기즈 칸은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유목민의 생활습관인 기마전술과 전법을 활용해 역참제를 만들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12월 특집기사에서 “인터넷이 발명되기 7세기 전 몽골인은 글로벌 통신망을 개척했다”며 역참제를 ‘중세의 인터넷’으로 평가했다. 칭기즈 칸은 ‘정보’와 ‘속도’의 중요성을 알고 그에 맞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과학과 미래

리더는 항상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내일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러려면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MIT 대의 선임 교수이자 조직학습협회(SOL·Society for Organizational Learning Council) 창립 회장인 피터 센게는 “현재 세계에는 복잡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기후 변화의 진행 방향을 알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고 했다. 대기 중 온실가스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낮추려면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0% 이상 줄여야 한다. 이는 교토협정과 같은 기존의 다자간 협정에서 설정한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기업과 정부 부문의 리더 가운데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피터 센게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노력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카이스트 총장을 지낸 바 있는 199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은 논문에서 “지구의 기후는 인간이 정책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든다고 일산화탄소가 덜 발생하고 지구온난화가 늦추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핵에너지 분야의 전문가인 리처드 뮬러 UC버클리대 교수의 책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원제 Physics for the Future Presidents)’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과학 분야 이슈 11개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 내용을 모르면 대통령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물론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단편적인 지식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학적인 마인드를 갖고 국정을 운영해야 하며, 과학기술로 인해 달라지는 사회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의 지도자 중에는 과학 전공자가 꽤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도쿄대 공학부, 스탠퍼드대 공과대학원).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칭화대 수리공정학부),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베이징지질대 광산학),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칭화대 공정화학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이프치히대 물리학, 구동독 아카데미 양자화학 박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옥스퍼드대 화학),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국립과학기술대 교통공학),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MIT대 건축학),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케임브리지대 수학) 등이 그렇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금속노조 활동을 했고, 타바레 바스케스 전 우루과이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의학을 전공했다. 이들은 아무래도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비과학도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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