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유학 생활 성패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회 만드느냐에 달렸죠”

하버드대 수석 졸업한 진권용의 공부비법

  • 조건희│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입력2012-06-20 1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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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 생활 성패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회 만드느냐에 달렸죠”
    6월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반가운 이를 만났다.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대 학부를 수석 졸업한 진권용(21) 씨. 그와의 만남은 5월 말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올해 9월 예일대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5월 27일 한국을 찾은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도 인터뷰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진 부모와 학생이 꼭 알아야 할 점들과 공부 비법을 듣고 싶다는 제안에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그는 5월 24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졸업생 1552명 가운데 2명인 전체 수석(the highest ranking undergraduate)을 했다. 하버드대 학부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것은 진 씨가 처음이다. 남들은 4년 걸려 수료하는 학부 과정을 3년 만에 마쳤는데도 졸업 학점이 만점(평균평점 4.0)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진 씨는 하버드대에서 최우등 졸업생(summa cum laude·모든 학업 분야에서 상위 5%에 든 졸업생)에 선정됐고 경제학과 수석상(존 윌리엄스상)과 최우수 졸업논문상(토머스 후프스상)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메이저리그로 곧장 진출한 박찬호 선수가 아닌,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추신수 선수에 가깝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여행 중 당한 ‘굴욕’이 유학으로 이끌어

    진 씨가 유학의 꿈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서 당한 ‘굴욕’ 때문이었다. 진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방학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동서부 주요 도시를 여행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도 둘러봤다. 여행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싶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영어라고는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이 학교 수업에서 배운 게 전부였지만 진 씨는 두 번째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했다. 호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 주인공의 말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화 예시를 외우기도 했다.

    진 씨는 첫 기회를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에서 맞이했다.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한 진 씨는 점원이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다른 건 필요 없느냐(Anything else)?”고 물어봐주길 기다렸다. “괜찮습니다(No, thanks)”가 진 씨가 준비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점원은 진 씨의 예상을 깨고 “포장해드릴까요, 아니면 드시고 갈 거예요(To go or for here)?”라고 물어왔다. 간단한 영어였지만 진 씨는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때의 창피함이 진 씨를 유학의 길로 이끌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라”고 캐나다 유학을 권유했을 때 선뜻 나선 이유도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답답함을 극복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여행 중 잠깐 들렀던 하버드대와 예일대 두 대학에 입학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현지 적응기

    대치초등학교를 6학년 1학기만 마치고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진 씨가 맞닥뜨린 것은 높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유학 전 영어학원에 한두 달밖에 다니지 않아 회화실력은 더듬더듬 한두 문장을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동양인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졌던 현지 친구들은 진 씨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점차 멀어졌다. 진 씨의 부모는 진 씨가 유학 초기에 한국으로 전화만 걸면 ‘친구 사귀는 게 어렵다’고 하소연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진 씨는 뭐든 한 가지 자신 있는 일을 하다보면 파란 눈의 친구들도 자신을 인정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가 택한 분야는 운동이었다. 진 씨는 초등학교 시절 교감선생님을 설득해 없던 야구부를 새로 만들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캐나다에서도 소프트볼과 축구 서클 활동을 빼먹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친구들과 연습을 하며 함께 땀을 흘리자 언어와 마음의 장벽은 조금씩 낮아졌다. 진 씨는 “매일 함께 운동을 하다보면 서로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끈끈한 사이가 된다”고 말했다.

    유학 이듬째 해에 학교 대표로 지역 축구리그에 참가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팀원들이 ‘진(Jin) 덕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인정해주는 것을 보며 마음의 벽이 없어진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진 씨는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 낯선 환경에 떨어지면 자신을 과소평가해 위축되기 쉽지만 운동이든 공부든 자신 있는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적응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겸손이 미덕이 아니니 잘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초 영어를 익히기 위해 3년 정도만 계획하고 시작한 유학이었지만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앤도버의 명문고인 필립스아카데미를 눈으로 보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진 씨는 캐나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필립스아카데미를 방문할 기회를 잡았다. 그곳 학생들의 생활은 집과 학원을 오가는 한국 고교생과 달랐다. 오후 2시 40분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대신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을 실컷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교재에 파묻히기보다는 기숙사 휴게실에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며 지식을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진 씨의 머릿속에는 세계 최고 명문 학교에서 최고의 교수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단기 유학을 장기 유학으로 돌린 것은 이때였다.

    필립스아카데미에 진학하고 나서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암기를 강조하는 한국 수업에 익숙한 나머지 분석과 새로운 시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다.

    공부 비법 - 새로운 시각, 당당한 의견, 충실한 수업 태도

    “유학 생활 성패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회 만드느냐에 달렸죠”

    진권용 씨가 하버드대 졸업장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진 씨가 필립스아카데미에서 처음 제출한 에세이 과제는 소설 독후감이었다. 진 씨는 책을 성실히 읽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에세이 절반 이상을 소설의 줄거리로 채웠다. 실망스러운 점수가 나왔다. 당시 교사는 “내가 줄거리를 알고 싶으면 직접 책을 읽지 왜 에세이를 요구했겠느냐”며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진 씨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다가 미국 방식에 적응해나갔다. 포인트는 평가자인 교수도 에세이를 읽고 나서 ‘배웠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진 씨의 국제통상 논문을 지도한 마크 멜리츠 경제학과 교수는 진 씨의 논문을 “다양한 자료를 조화롭게 인용한 뛰어난 논문”이라고 극찬했다.

    토론 중심 수업도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미국 대학에서는 사실을 외우는 것보다 그 사실에 근거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설득한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진 씨가 만난 미국 학생들은 교수와 생각이 달라도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진 씨는 특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질문하라고 조언했다. 한국 학생 중에는 질문을 해 수업 흐름을 깨는 것이 폐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자신뿐 아니라 열심히 가르친 교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진 씨가 하버드대를 만점으로 졸업한 또 하나의 비결은 강의에 충실했던 점이다. 진 씨가 수강한 경제학과 수업 중에는 한 학기 동안 2000쪽이 넘는 교재를 소화해야 하는 과목도 있었다. 교과과정이 빠르고 압축적이라 벼락치기가 불가능하다. 진 씨가 하버드대 3년 중 수업을 빼먹은 적은 수술을 받아 이틀 쉰 때를 빼고는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궁금한 점은 그 자리에서 교수에게 묻고 수업 앞뒤 시간을 쪼개 예습과 복습도 마쳐 시험기간에 따로 벼락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진 씨는 ‘사당오락(4시간 자면 원하는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을 철칙 삼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한국 학생들의 공부 방식을 ‘효율성을 버리는 공부’라고 비판하고 “장기적으로는 휴식을 충분히 취하며 밀도 있게 공부하는 편이 능률이 좋다”고 조언했다.

    진 씨는 하버드대의 특이한 교육 방식으로 ‘학생 스스로 기회를 찾아오도록 유도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기르는 것’을 꼽았다. 진 씨가 하버드대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으로 내세운 것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 나서는 태도’였다.

    하버드대 학풍 - “떠먹여주는 밥은 밥이 아니다”

    “하버드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를 지지하지만 직접 떠먹여주지는 않아요. 학생이 직접 적극적으로 찾아내 이룬 성과가 아니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는 학부 시절 하버드 로스쿨과 케네디 행정대학원 수업도 신청해 4과목 모두 만점을 받았다. 학부생이 찾아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함께 수업을 들은 다른 대학원생들은 의아해했지만 그는 “세계 최고의 대학원에서 수업 들을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고 했다.

    연방준비위원회(FRB) 챌린지에 하버드대 대표로 참가할 때도 교수들이 활동에 깊게 관여했던 다른 대학과 달리 하버드대 교수들은 ‘직접 결정하고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화폐 정책 관련 강의가 없어 관련 보고서와 논문을 직접 찾아 분석하고 방향도 스스로 잡았다. 하지만 직접 찾아와 도움을 청하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하버드대 교수들의 특징이다. FRB 이사에까지 오른 제레미 스타인 경제학과 교수는 연구실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오며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진 씨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고 이후 진로 상담도 마다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자세에 각종 상금은 부상으로 따라왔다. 하버드대 유학 비용은 학비와 기숙사비 등을 포함해 1년 기준으로 5만5000달러(약 6500만 원)지만 상금을 학비에 보탰다. 지난해에는 재미한인장학기금으로 1000달러를 받았고 졸업 당시에는 최우수 졸업논문상(토머스 후프스상) 4000달러, 경제학과 수석상(존 윌리엄스상) 3000달러를 받았다. 2009년 고교 ‘화제의 졸업생’ 장학금으로 받은 3000달러는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경제학도가 광우병을 연구한 이유

    진 씨는 한 가지에 꽂히면 미친 듯 몰두하는 성격이다. 하버드대 1학년 때 들었던 교양생물학 수업에서는 ‘수혈에 의한 변형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인간광우병)의 감염위험과 정책대응’을 주제로 에세이를 썼다. 학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분야라 준비하기가 까다로웠다. 관련 연구가 빈약해 참고할만한 논문도 적었다. 1개월 내내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살고 생물학과 교수를 찾아다녀야 했다.

    진 씨가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과 무관한 수업에서 에세이를 쓰면서도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재미’ 때문이다. 진 씨는 “이미 결론이 난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썼다면 호기심도 갖지 못했을 테고 문제를 파헤치려는 원동력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답의 영역이라는 사실 자체가 진 씨를 흥분시킨 것이다. 이 에세이는 다른 생물학 전공자가 쓴 수많은 에세이를 제치고 교양학부 최고 에세이로 선정돼 코넌트상을 받았고, 다음해 학부 1학년 학생들이 듣는 필수과목의 교재로 채택됐다.

    헬리콥터 부모 vs 독립심 기르는 부모

    진 씨의 부모는 유학 생활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묵묵히 지지하는 편이었다. 유학 초기에는 어머니가 캐나다를 오가며 진 씨를 보살폈지만 고교 진학 뒤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전화로 상담하는 정도였다. 졸업식을 빼고는 가족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방문한 적도 없다.

    진 씨는 “자율을 강조한 부모님 덕에 독립심을 길렀다”고 말했다. 자녀가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책임 있게 누릴 정도가 되면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믿고 맡겼다는 설명이다. 진 씨는 평소 어른스러운 태도 때문에 미국 친구 사이에서 ‘정신적 아버지(spiritual father)’로 불리기도 했다.

    진 씨는 ‘헬리콥터 부모(아이가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해도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참견하는 부모)’를 강하게 비판했다. “부모가 자녀 인생을 평생 책임져줄 수는 없지 않나요? 오히려 혼자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 무책임한 훈육 방식입니다.” 자녀에게 유학을 시키겠느냐는 질문에도 진 씨는 “자신에게 맞는 환경이 무엇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전적으로 아이의 뜻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목표 - 국익을 대변하는 변호사

    진 씨는 지난해 12월 하버드대와 예일대 로스쿨로부터 나란히 합격 통보를 받아 예일대를 선택했다. 3년간 정든 보스턴을 떠나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으로 옮겨야 하지만 새로운 학풍을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

    하버드대 학부 과정을 조기에 마치면서도 방학을 활용해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미국 로스쿨 입학시험)를 준비해 180점 만점에 179점을 받았다. 지원 에세이에서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로 들며 금융 관련법에 대한 관심을 밝혔다. 그는 로스쿨에서 금융 관련법 강의를 집중적으로 들은 뒤 금융정책 및 국제통상 분야에서 활동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가 금융정책을 구체적인 목표로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의 눈물이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방학에 한국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인턴을 하며 저축은행에 평생 모은 재산을 넣어뒀다가 한번에 날리게 된 피해자들을 만났다. 1년 만에 조국을 방문했다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진 씨는 ‘적시에 조치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금융체계의 문제를 미리 찾아내 고치고 한국 금융의 거시건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통상 변호사도 염두에 두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가 늘어나면서 국가 간 통상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 씨는 경제학과 법학을 배운 전문성을 살려 한국의 국익을 지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 씨는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중국어와 프랑스어도 익히고 있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G2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어는 국제기구에서 영어와 비슷한 비중으로 쓰이는 공용어이기 때문에 배워두고 있다. 짬이 날 때면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를 가방에서 꺼내 읽거나 중국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에 들어가 기사를 찾아 읽는다.

    “나는 이제 막 2이닝을 마친 투수”

    최종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전문성 있는 국제기구를 거쳐 국제연합(UN)과 같은 ‘넓은 분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공익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는 전제는 있지만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두지 않았다.

    진 씨는 9월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국에 머물며 징병신체검사를 받는 등 미뤄왔던 일을 처리하고 나면 실컷 여행하고 재충전할 계획이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나면 3년 동안 다시 숨 가쁘게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행지는 북극과 사막이다. 번잡하지 않고 탁 트인 곳에 가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20년 동안 혼자만의 시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일까?

    진 씨는 야구로 치면 자신은 이제 막 2회를 마친 투수라고 했다. 현재까지 방어율은 2안타 1볼넷 무실점. 하버드대를 수석 졸업하며 승승장구한 인물치고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그는 “유학 초기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헤맸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아직까지 실점 없이 마운드를 지켰다”며 웃었다. 그에게 남은 ‘경기’를 앞둔 소감을 물었다.

    “이제 막 워밍업이 끝났을 뿐 아직 경기가 끝나기는커녕 승리 투수 요건 갖추기에도 한참 남았어요. 앞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되 남은 경기를 원 없이 즐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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