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섹스는 성욕, 물욕, 권력욕이 알몸 그대로 드러나는 몸짓”

장편소설 ‘유혹’ 완간한 소설가 권지예

  • 이소리│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입력2012-06-21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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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는 성욕, 물욕, 권력욕이 알몸 그대로 드러나는 몸짓”
    섹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섹슈얼리티(sexuality) 작가 권지예(53). 그가 5월 중순 ‘문화일보’에 2년 넘게 연재한 장편소설 ‘유혹’을 모두 펴냈다. 지난해 7월에 1~3권, 이번에 4·5권이 나왔다. 이 소설은 원고지 5000매를 훌쩍 넘긴 5권짜리 장편소설이다. 중견 여성작가로서 이런 분량의 작품을 펴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유혹’은 빼어난 미모의 이혼녀로,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예술경영 석사학위를 받은 대학 강사 오유미가 주인공이다. 성을 맘껏 즐기는 독립적인 여성 오유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욕망지형도를 파헤친 독특한 성애소설로 평가받는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와 매끄럽게 흘러내린 몸매를 지닌 오유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유혹하지 않으면 유혹당하는 21세기 경쟁사회 속 현대인의 성과 욕망을 7인 7색으로 그려냈다.

    작가 권지예는 이 소설을 쓰면서 남편보다 고3 아들 눈치를 더 많이 살폈다. 예술평론을 하는 남편은 소설 쓰는 아내를 예술가로 여기고 ‘쓰고 싶은 대로 쓰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만큼은 엄마가 쓴 성애소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6월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소설 속에 나오는 오유미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이 꼭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했다.

    “유미는 욕망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생에 대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디로든 달리고 싶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해.’ 동진이 속삭였다. 그 말이 마치 당근이라도 되듯이, 아니 휘발유라도 되듯이 유미의 온몸이 다시 충전되었다. 동진이 다시 시동을 켜고 밀고 들어왔다. 그래, 달리는 거야. 온몸의 세포가 생생히 아우성치는 이 살아 있는 삶의 순간을 느끼는 거야. 사랑은, 생은,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의 질주일 뿐이다.” ‘유혹’ 2권 83~84쪽



    물욕을 채우기 위해 몸으로 유혹하는 오유미

    “제1부인 1~3권에서는 섹스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어요. 신문 연재소설이라 독자들 호응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지만…. 제2부인 4~5권에서는 섹스보다 섹슈얼리티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고요. 주인공 오유미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성이 지닌 깊은 뜻은 무엇인가 깊숙이 파고들었죠. 저는 성욕, 물욕, 권력욕의 한 형태가 섹스라고 봐요. 오유미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여성으로 물욕을 채우기 위해 몸(섹스)을 무기로 유혹하는 전략을 펼치죠. 그렇다고 남자만 만족시키기 위한 섹스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섹스를 즐기는 여성이에요.”

    장편소설 ‘유혹’은 주인공 오유미를 통해 ‘여자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가 자본으로 풀칠되어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드러낸 작품이다. 작가 권지예는 “오유미의 태생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얽힌 맥락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욕망을 드러낸 소설이 ‘유혹’”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곧 가난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유혹뿐이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 섹스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많은 사람의 입에 올랐는데요.

    “소설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유혹’은 처음 쓸 때부터 섹스를 생동감 있고 다양하게 그리자 생각했어요. 사실, 순수문학에서는 섹스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따질 필요도 없지만요. 저는 이 소설에서 이왕이면 섹스를 정공법으로 다루자, 소설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제대로 묘사해보자고 마음을 꼭꼭 다졌어요. 사실, 현실사회에서는 섹스를 하는 행위가 더 적나라하잖아요.”

    흔히 ‘섹스’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대다수 여성은 얼굴을 살짝 붉히거나 말꼬리를 슬며시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쓴다. 그러나 권지예는 “여성작가라고 해서 섹스를 은근슬쩍 넘어가지 말고 용기 있게 묘사하되 문학적 비유나 상징을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왕이면 섹스를 정공법으로 다루자”

    ▼ 섹스의 문학적 비유나 상징이라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비유법을 많이 쓴다는 거죠. 말하자면 문학적 연상작용 같은 거죠. 저는 섹스 장면을 묘사할 때 한 번도 중복되지 않게끔 등장인물에 따라 여러 각도로 자세하게 묘사했어요. 아마 그 때문에 남성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을 때 섹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제 소설이 섹스를 다루었다고 해서 ‘포르노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저는 섹스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간이 지닌 모든 욕망을 섹스를 통해 드러내려 했어요. 그동안은 욕망의 문제를 내면적으로 그렸지만 ‘유혹’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었어요.”

    이 말은 권 작가의 장편소설 ‘4월의 물고기’ ‘붉은 비단보’ ‘아름다운 지옥’과 소설집 ‘퍼즐’ ‘꿈꾸는 마리오네트’ 등에서는 성을 은근슬쩍 가볍게 다루었다는 말이 된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작가들은 소설에서 섹스를 다루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는다. 남성독자들이 여성작가인 권지예가 쓴 성애소설 ‘유혹’에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 ‘유혹’에도 남성 4명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들인가요?

    “‘유혹’에는 스스로 섹스를 즐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오유미 외에도 유지완과 강애리라는 여성이 등장해요. 제 소설이 7인 7색을 그린 성애소설이라 평가받는 것도 남성 4명 때문이죠. 모두 오유미와 관계를 한 사람들로,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로 돌아갑니다. 윤동진은 재벌 2세이고, 황인규는 유지완의 남편이자 오유미와 오래된 연인입니다. 박용준은 오유미를 짝사랑하는 연하의 남자로 오유미의 ‘꼬붕’이자 보디가드죠. 고수익은 미지의 인물로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의 열쇠를 쥐고 이들을 쫓는 역할을 하죠.”

    ‘유혹’에서 오유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난 여자로 나온다. 어릴 때 자살한 오유미 엄마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했다. 심지어 오유미를 잉태했을 때에도 그랬다. 이 소설에서 ‘욕망덩어리’ 오유미가 여러 남자와 섹스를 즐기는 것은 어쩌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찾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신문 연재소설이다 보니 순발력 있게 매일 써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꽤 힘들었어요. 울면서 쓴 때도 있죠.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병원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글을 썼어요. 깡다구로 버티긴 했지만, 사실 2년여 동안 ‘글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오죽했으면 ‘천일야화’에 나오는 ‘세헤라자데’가 부러웠겠어요? 천일 동안 밤마다 샤푸리 야르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그 여자를 존경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천일야화’는 6세기 페르시아에서 전해오는 천일 동안의 이야기를 아랍어로 기술한 설화로 흔히 ‘아라비안나이트’라고 한다. 주요 이야기 180편과 짧은 이야기 108편이 들어 있는데, 페르시아의 샤푸리 야르왕은 왕비에게 배신을 당하자 매일 새 신부를 맞이하고 그 다음 날 죽였다. 세헤라자데라는 영리한 여인은 죄 없는 처녀들을 구하기 위해 왕과 결혼하고 첫날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마음에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가 천 하루 동안 이어졌다고 해서 ‘천일야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쩌면 작가 권지예는 세헤라자데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 5000매가 넘는 장편소설은 여성작가로는 드문 게 아닌가요?

    “그런 거 같아요. 그동안 남성작가들은 대하소설 같은 장편소설을 많이 썼는데, 중견 여성작가 중에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 소설을 다 쓰고 두 달 동안 아팠어요. 알게 모르게 몸이 많이 지쳤던 거죠. 그런데 작가로서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느꼈어요. 이제 글쓰기에 겁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천일야화’ 세헤라자데가 부러워

    ▼ 가족들은 ‘유혹’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네요.

    “집에 신문이 배달되면 남편이 제 소설을 읽었어요. 얼마 지나자 남편조차 저의 노골적인 섹스 묘사가 민망한지 꽤 불편한 표정을 짓곤 했어요.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나자 남편도 이젠 익숙해져서 ‘저 세계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더군요. 제 남편은 예술평론을 하는 분이니 아내인 저를 여자로도 보지만 한 사람의 예술가로 생각해요. ‘앞으로 내가 그 소설을 안 읽을 테니까 쓰고 싶은 대로 써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어요. 문제는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고3 아들이었죠.”

    그는 “고3 아들이 소설을 읽을까 걱정됐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작가는 그 때문에 신문을 집어 얼른 스크랩을 하곤 했다. 섹스를 거침없이 말하고 쓰는 작가지만, 아들이 그 소설을 읽으며 얼굴을 붉히는 것은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작가다. 그런데 여기에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면 나는 ‘영원한 처녀작가’이고 싶다. 나는 무엇이든 쓰겠지만, 내가 내는 책은 늘 ‘처녀작’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험으로 내게도, 독자들에게도 낯선 작품을 쓰고 싶다. 내 안의 ‘처녀’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해주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작가의 말’ 몇 토막

    ▼ 작가의 말에 ‘영원한 처녀작가’라고 했는데?

    “저와 친하게 지내는 작가 박범신은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지만, 여성작가에게는 그런 닉네임이 없어요. 제 스스로 ‘영원한 처녀작가’라는 닉네임을 붙인 거죠.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처녀작을 내겠다는 작가의 자세가 담긴 말이죠. 처녀는 호기심이 많잖아요? 저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에요. 제 소설도 그렇지만 다른 분이 쓴 책도 한 번 읽고 나면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아요. 처녀성을 상실한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사라지기 마련이잖아요.”(웃음)

    청량한 목소리로 한참을 웃던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비판은 작가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그 상처가 작가를 키우죠. 저는 ‘적당’과 타협하기 싫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 안에 무당이 한 사람 있어 살아 꿈틀대는 것 같아요. 마치 섹스를 즐기며 욕망을 거머쥐려는 오유미 같은 무당이죠. 저는 그 무당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쓰는 임자이기는 하지만 자기 의지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 성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나요?

    “어릴 때 불면증을 앓았어요. 제 방이 따로 없어 가족들이 함께 잠을 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열살 무렵부터 밤에 불을 꺼버리면 잠이 통 오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마다 머리를 굴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곤 했죠. TV에 나오는 주인공 얼굴을 떠올려 이리저리 연관시키기도 하고, 성에 대한 조숙한 상상도 많이 했어요. 섹슈얼리티를 즐겨 주제로 삼는 제 소설 뿌리가 거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작가는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녔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가리지 않고 읽었지만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진 적은 별로 없었다. 그냥 ‘이런 건 다 인간이 지어내는 이야기’라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 죽은 여동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숙명여고에 다닐 때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그때 세살 어린 초등 6학년인 여동생이 저도 모르게 자기 문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문집에는 콩트도 있고, 만화도 그려져 있었죠. 저는 그때 제 여동생이 글을 너무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려 열등감을 느꼈어요. 그 여동생은 제가 대학 1학년 때 악성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여동생이 고교 1학년 때였는데, 그 죽음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했어요. 똑똑한 여동생이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 여동생이 남긴 문집을 복사해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어요.”

    1960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작가 권지예는 다시 ‘동생은 이름도 없이 갔는데, 글만 남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가까운 친구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써라”고 권했다. 글로 남기는 게 동생에게 ‘영원한 삶’을 주는 것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때부터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 열매가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이다.

    “‘아름다운 지옥’을 펴냄으로써 죽은 동생에게서 풀려나 자유롭게 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어요.”

    “죽은 여동생에게 영원한 삶을 줘라”

    권 작가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지만, 프랑스 파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 근대문학에 나타난 여주인공들의 섹슈얼리티를 통한 여성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권 작가가 생각하는 ‘섹슈얼리티’는 뭔가요?

    “섹슈얼리티는 섹스와는 달라요. 섹슈얼리티는 사회, 문화 양식 등과 연관되어 있지요. 저는 논문에서 1930년대 우리 사회와 빈부격차, 가족 등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김유정과 김동인 작품에 주목했죠. 작가 김유정에게선 병에 술을 넣어 들고 다니며 몸을 파는 여자 ‘들병이’를 통해 그 시대 사회상을 추적했어요. 작가 김동인에게선 신여성들의 남녀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지닌 이중적인 모습을 파헤칠 수 있었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섹스는 단순히 가족을 꾸리는 범위를 벗어났어요. 제가 말하는 섹슈얼리티는 곧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것을 포함한 섹스’라는 뜻이에요. 동물이 하는 섹스는 오로지 종족본능일 뿐이잖아요?”

    ▼ 섹슈얼리티…. 계속 쓰실 건가요?

    “사실, 요즘 두 가지 갈등이 있어요.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삼은 이런 소설은 그만 끝내고 좀 쉬었다가 새로운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있고요, 반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지금까지 써온 섹슈얼리티이기 때문에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갈등’이라고 말했지만, 섹슈얼리티 소설을 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 문학에 멋진 성애문학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 동성애와 독신, 황혼별거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199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그 자체가 엄청난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동성애나 독신, 황혼별거 등의 말은 생소했어요. 프랑스에서는 이미 동성애자나 독신 등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죠.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거 같아요. 그들이 행복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인생은 ‘좋은 단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동성애, 독신은 ‘좋은 단계’로 가는 과정

    권 작가는 프랑스 유학 시절인 1997년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트’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프랑스를 밑그림으로 삼은 이 소설은 부부관계에서 빚어진 균열과 위기를 통해 격정적인 삶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을 촘촘하게 그린 작품이다.

    ▼ 작가가 되었을 때 우리 문단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요?

    “저는 문학소녀로 혼자 글을 썼어요. 문예창작과 출신도 아니었고, 새파란 청춘을 프랑스에서 보냈어요. 소설가가 되긴 했지만 아무도 원고청탁을 해오지 않았고요. 끈 떨어진 뒤웅박 같은 팔자였지요. 그래서 문단에 대한 선입관이나 피해의식 같은 것은 없어요. 무인도에 사는 작가였으니까요. 그 뒤 상을 타면서 문단에 편입되었죠.”

    권 작가는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2005년 ‘꽃게무덤’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당시에 한국문단을 알게 됐어요. 그땐 아주 국수(國粹)적인 것처럼 보였어요. 문인들은 제게 ‘겉멋만 들어 해외 이야기를 써서 등단하느냐’며 비꼬았죠. 저는 겉멋이 든 게 아니라 프랑스에 가서 이방인으로서 소설을 썼어요. 그 누구처럼 팔자 좋게 여행을 간 게 아니란 얘기죠. 그 유학생활이 젊은 시절 제 인생이었으니까요.”

    ▼ 글 쓰기 전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취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취재를 많이 하다 보면 오히려 그 틀에 얽매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적당히 필요한 부분만 취재해요. 단편 ‘붉은 비단보’를 쓸 때 취재를 많이 했지만, 어떤 때는 그 부분이 오히려 상상력에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사실, 그 어떤 내용을 너무 많이 알아버리면 쓸 게 없잖아요? ‘유혹’을 쓸 때도 누드촌에 취재를 가려 하다가 그만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설은 르포가 아니죠.”

    ▼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작가를 평가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저는 모든 작가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란 서열을 매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제가 부러워하는 작가는 제가 죽었다 깨나도 쓰지 못할 것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 그리고 무르익지 않은 신인이라도 제게 새로운 자극과 인식을 주는 작가예요. 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존경하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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