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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대학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작지만 강한 대학, 기업 맞춤형 교육 시대를 열다

  • 이권효|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철학박사 boriam@donga.com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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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대구 북구 복현동에 자리한 영진전문대 캠퍼스 전경.

따라가면 ‘마이 웨이’는 없다

영진전문대는 1977년 영진공업전문학교로 출발했다. 팔공산 인근 대구 북구 복현동 복숭아밭을 밀어내고 들어섰다. 교명 영진은 ‘오래도록 변함없는 자세로 발전해나간다’는 뜻으로 ‘영(永)’과 ‘진(進)’이라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영원히 진화하면서 큰길(大道)을 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허허벌판에 들어선 후발 전문대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1차도 아닌 2차 모집 대학이어서 1차 떨어진 학생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보잘것없는 대학에 지나지 않았다.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홍성태 전 부학장(현 영진고 교장)은 “그때부터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나 교수 스스로 경쟁력을 확실히 키우지 않으면 무너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981년부터 시행된 대학 졸업정원제(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한 뒤 졸업 때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 제도)는 신생 전문대 학생 모집에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영진전문대는 ‘직업보도과(직업교육을 도와 이끌어주는 부서)’를 본부에 설치해 산학협력에 주력했다. 교수들도 기업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에 눈을 떴다. 주문식 교육은 이때부터 싹튼 셈이다.

1990년대에 들면서 영진전문대는 기업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주는 방식의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나 4년제 대학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는 ‘사즉생’(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살 수 있음) 상황과 마주했다. 교수 채용과 학생 모집, 교육 과정 등 전문대 운영에서 기존의 모든 관행을 완전히 도려내야 하는 절박한 위기의식이었다. 1992년 추진한 ‘학과 발전 5개년 계획’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학과별로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방안을 만들었는데, 그 핵심은 ‘산업체가 바로 활용하는 인력 배출’이었다. 추진 상황을 매해 12월 공개 발표하도록 했고, 필요한 예산은 최대한 지원했다. 교직원들은 안이한 현상유지나 선례를 답습하는 교육방식은 곧 폐교에 이르는 길이라는 벼랑 끝 심정으로 기획에 매달렸다.



백지 상태에서 새 출발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영진전문대 학생들이 교내 반도체 공정센터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주문’이라는 말은 무엇을 만들어달라고, 어떤 일을 해달라고 요구 요청 의뢰 부탁 청구하는 것이다. 미리 주문해 만든다는 뜻에서 ‘맞춤’도 같은 뜻이다. 공급자는 수요자의 주문이 들어와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들어 잔뜩 쌓아놓아도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주문자와 공급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져야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드는 의문은 주문식 교육을 도입한다고 해서 기업이 박수를 치면서 얼씨구나 하겠느냐는 점이다. 전국 처음으로 수요자(기업)를 위한 맞춤형 주문식 교육을 하겠다고 해서 어느 기업이 곧이곧대로 믿어줄 것인가. 더군다나 4년제 대학이 넘치는 현실에서 영진전문대는 이름도 없는 작은 대학에 불과했다. 의욕은 좋지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이 같은 시도를 설령 기업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 대학이 주문식 교육으로 기업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유능한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주문식 교육이라는 이름만 있고 실질은 형편없다면 영진전문대는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산업체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수를 채용합시다.” 1992년 11월 영진전문대는 ‘산업체 현장근무 5년 이상인 분 혹은 산업체에서 정년퇴임한 분으로 전공분야 강의 및 산학 유대 강화에 기여하실 분을 모십니다’는 내용의 교수 채용 공고를 냈다. 지금은 산학협력 차원에서 기업체 출신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학 교육에 참여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업체 경력자를 최우선으로 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993년 공채1기 교수로 채용된 최영태 교수(63·신재생에너지전기계열)는 “꼭 필요한 교육 방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20년 동안 현대그룹 등 여러 기업체에서 일한 최 교수는 “대학교육과 기업실무에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늘 느꼈다”고 말했다.

지금도 전체 교수 200여 명 중 기업체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은 교수 비중이 80%가량이다. 하이닉스반도체 연구소에서 22년 근무한 엄재철 전 상무가 2009년 정보통신계열 교수로 부임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 생산기술 분야에서 21년 근무한 연규현 전 이사,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14년 근무한 한동후 전 실장 등이 영진전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1994년은 영진전문대로서는 가장 의미 깊은 해다. 제2의 개교라고 할 ‘기업 맞춤형 주문식 교육’이 마침내 출발선에 섰다. 그해 6월 전 교직원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새마을연수원에서 합숙을 하면서 ‘주문식 교육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폐교’라는 정신무장을 했다. ‘이젠 정말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하자. 그동안의 교육과정을 모두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자. 산업체 현장을 철저하게 체험하면서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완벽하게 분석하고 대처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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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효|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철학박사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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