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산문, 그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시로 다 쓰지 못한, 어떤 서사 구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산문으로 써야죠. 저는 한국문단이 한 작가에게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스럽게 써야 한다는 이상한 순결주의를 강요하는 점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제가 쓰는 동화나 동시는 제가 시인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어떤 게 좋은 시입니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시가 언제든지 ‘무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의무감 때문에 상상력이 위축되어서는 안 되죠. 문학은 정치도 종교도 철학도 아니고 오로지 문학이어야 하니까요. 리얼리스트로서의 꿈과 낭만주의자로서의 현실 인식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도현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1930년대에 활동했던 백석이다. 그가 백석에 대해 쓴 산문 몇 토막을 들여다보자.
“내가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0년, 대학 1학년 때였다. 우리 학교의 박항식 교수가 쓴 ‘수사학’이라는 책에 시 ‘모닥불’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갓신창’ ‘개니빠디’ ‘너울쪽’ 같은 몇몇 말이 좀 낯설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간명한 시 형식 속에 놀랍게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금세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는 그 은사님을 찾아뵙고 백석의 시에 반해버렸다고 고백했고, 그의 다른 시도 읽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안도현은 그때부터 백석이 쓴 시를 여러 편 읽기 시작했다. 백석의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월북 시인 백석의 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시인은 오히려 그 때문에 “백석 시를 베낄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이곤 했다”고 회상한다.
몰래 옮겨 쓰던 백석의 시
▼ 백석의 시가 그렇게 좋았나요?
“백석의 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소주 몇 병이 저절로 비워졌습니다. 사회과학적인 열정과 기운이 문학을 견인하던 1980년대에 백석의 시는 제가 깃들 거의 완전한 둥지였어요. 지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집회에 참가해서 구호를 외치다가 돌아와 쉴 곳도 그 둥지였고, 잃어버린 시의 나침반을 찾아 헤맬 때 길을 가르쳐준 것도 그 둥지였습니다.”
필자는 이즈음 정치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안도현은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 정치는 어떻게 봅니까.
“우리 현대사는 국민에게 희망을 준 지도자가 거의 없어 불행했다고 봐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할 지도자가 희망을 내동댕이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죠.”
▼ 공천심사위원을 했으면 정치에 간접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거네요.
“나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발을 담글 자리는 아니었어요. 다만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 중에 희망의 생산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일도 시급하고요. 글 잘 쓰는 작가는 글로, 돈이 여유 있는 작가는 돈으로, 말을 잘하는 작가는 입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 당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강철규 우석대 총장이었죠? 강 총장은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신동아 5월호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오만하고 안이했다”고 반성했는데요.
“그 일에 대해서는….”
▼ 강 총장 추천으로 심사위원이 됐나요?
“뭐, 이미 지나간 일이고, 할 말은 없습니다. 사실은 심사위원도 맡고 싶지 않았어요. 여러 분이 도종환 시인과 함께 맡아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강 총장과는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합니다.”
▼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도 시인이 문화·교육 분야 일을 잘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어요. 가장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시인이죠. 추천 당시에 ‘국회의원이 되면 시는 언제 쓰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에 ‘내가 다 쓰겠다’고 했어요. 심성이 착하고 여린 분이라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잘할 거라고 봐요.”
인터뷰 며칠 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 의원의 작품과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출판사에 권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출판사가 도 의원의 작품을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만으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안도현은 7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이주호 장관께’란 글에서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작가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자신은 더욱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과서에 실린 나의 시도 빼라”고 반발했다. 7월 11일 안도현에게 다시 물었다.
▼ 트위터에 글은 왜 올렸나요?
“시인이 정치인이 되었다고 해서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를 빼겠다는 발상 그 자체가 ‘소가 들어도 하품할 일’이오. 저도 도 시인과 함께 공천심사위원을 맡았잖아요? 그들 말대로라면 저도 정치인이잖아요. 만약 그 때문에 도 의원의 시를 국어 교과서에서 뺀다고 하면 형평성 맞게 제 시도 빼라고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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