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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기자의 건강萬事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정부 사전피임약 병의원 처방 추진의 불편한 진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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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혐오증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일부 내과, 소아과에서 남성에게 발급한 긴급피임약 처방전.

사전피임약은 1971년 국내 시판 당시부터 약국에서 팔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는 1960년 미국에서 전문약으로 첫 시판됐지만 최근 미국을 비롯한 각 나라에서 일반약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와는 상황이 정반대다. 정부는 1970년대 산아제한 시기에 콘돔 사용과 사전피임제 복용을 적극 홍보하고, 권장하기도 했다.

식약청은 재분류안 발표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사전피임제는 여성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고, 혈전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투여 금기 및 신중 투여 대상이 많아 복용 이전에 의사와 상담 및 정기적 검진이 권장되는 의약품”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약청의 발표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는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만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의협은 성명을 통해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으로 조제료를 더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약사들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득을 가장 많이 볼 이들은 의사다. 의사들의 초진 수가는 1만2890원인 데 반해, 약사의 조제료는 4020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의사들은 없는 수입이 새로 생기는 것이지만 기존에 약국에서 사전피임약을 팔던 약사들은 전문약 전환으로 판매량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병의원에 들렀다 다시 약국에 가야 하는 불편함과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의 뿌리 깊은 혐오증을 고려하면 판매량이 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대한약사회는 의원의 진료비와 약사의 조제료가 추가됨으로써 연간 환자부담액이 지금의 52억 원에서 230억 원으로 3.4배 늘 것으로 예상한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여성들의 산부인과 혐오증이 어느 정도인지 터놓고 얘기해보자. ‘신동아’가 입수한 병의원 발행 긴급피임약 처방전에 따르면 산부인과도 아닌 일부 내과와 소아과 전문의들이 긴급피임약 N제품을 남성 환자에게 처방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참조). 긴급피임약을 불법적으로 모아 팔려는 게 아니라면 임신을 걱정한 여성이 파트너 남성에게 긴급피임약을 처방받아오라고 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남성에게 여성용 피임약을 처방하는 의사들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이 산부인과 가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의사도 “사전피임약은 일반약”

식약청과 의협이 사전피임제의 전문약 전환을 요구하며 그 세부 근거로 내세운 것은 ‘심각한 부작용과 투여 금기 및 신중 투여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흔한 부작용은 월경불순, 질 출혈, 구역, 구토 등이고 심각한 부작용은 혈전증이었다. 투여 금지 대상자는 유방암, 자궁내막암 환자나 이러한 질환이 의심되거나 병력이 있는 환자, 중증도 이상의 고혈압 및 간 장애 환자이고 신중 투여 대상은 심혈관계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40세 이상의 여성, 비만자, 고혈압 환자, 흡연자 등이었다. 하지만 식약청은 41년간 약국 판매를 통해 드러난 심각한 부작용의 사례와 통계를 공개하라는 각 단체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내놓을 자료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에 이론적 근거를 대고 있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작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피임약을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매우 안전한 약’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에 있는 ‘피임·생리이야기’라는 홍보 코너에 들어가면 식약청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 이어진다. 식약청이 흔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한 증상은 몸의 적응과정이며 오히려 피임약을 장기복용하면 유방암, 자궁내막암의 발생을 줄여준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일부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메스꺼움, 두통, 가슴 땅김, 불규칙한 출혈 등은 대개의 경우 발현 정도가 심하지 않고, 피임약의 복용 초기에 우리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구토나 발진 등 심한 부작용을 겪으면 에스트로겐 함량이 낮은 피임약으로 바꾸면 된다. 2000년 이후 호르몬(에스트로겐)의 함량이 계속 낮아져 부작용이 완화됐다. 현재까지 피임약과 유방암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5개월 이상 복용하면 난소암은 40%, 자궁내막암은 50% 예방 효과가 있다. 5년 이상 먹으면 난소암의 발병률이 60%, 자궁내막암 발병률이 50% 감소하며 복용을 중단해도 최소 15년간 효과가 지속된다.’

피임의 최고 전문가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대한산부인과학회(제 50권 제11호)에 게재된 논문 ‘호르몬 피임약의 사용’에 따르면 식약청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지적한 혈전증도 최근 피임약의 에스트로겐 함량이 줄어들면서 그 발병 가능성이 많이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나온 결과들은 혈전색전증, 뇌졸중, 심혈관질환들에 대해 훨씬 낮은 위험도를 보이고 있다. 혈전증의 과거력, 혈관질환, 심혈관질환, 백혈병, 암, 심각한 외상 등을 앓은 전력이 없는 한 위험도가 높지 않다.’

오히려 이 논문은 ‘고령의 여성, 정맥 혈전색전증의 과거력이 있거나, 임신 혹은 산후의 상태에 있는 여성, 비만, 수술, 비행기 여행 중인 여성, 혈액응고장애의 가족력이 있는 여성은 에스트로겐 호르몬 제제(사전피임약)의 복용이 여성의 정맥 혈전증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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