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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⑤

침, 위생, 그리고 봉건 근대주의 환상을 버려라!

사관(史觀)의 역사성 잊은 현대인에게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침, 위생, 그리고 봉건 근대주의 환상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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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침, 위생, 그리고 봉건 근대주의 환상을 버려라!

강릉 선교장. 마을에는 양반과 평민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사 연구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회와 경제구조, 농민의 운동, 변혁에 대한 연구가 늘어난 것은 바로 이런 역사학 발전의 징표였다. 역사학의 발전은 20세기 후반기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성장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역으로 역사학이 그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사 연구는 곧 역사의 이행(移行) 문제를 제기했다. 더구나 덤덤한 이행도 아니라 식민지로의 전락이라는 ‘아픈 이행’을 설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조선은 식민지로 연결됐고, 그에 따라 우리가 설명해야 할 ‘변명’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또는 필연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든지, 식민지가 아니라 자생적인 근대로 갈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전자가 식민사관이라면 후자는 민족사관 등 이른바 식민사관을 극복하겠다고 생각한 이들을 대변한다.

그 대목에서 역사학은 방심했다. 역사학 본연의 문제, 즉 왜 두 사회가 다른가, 왜 한 사회는 다른 사회로 이행하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는 이행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외면했다. 조선사회 또는 문명에서 근대적 요소를 발굴해내는 데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안타까운 조바심이 가세하면서 사회구성체의 복합성과 역동성은 쉽게 경제주의로 환원되었고, 상부구조와 토대의 조합에 따른 다양한 사회 형태에 대한 탐구는 토대결정론으로 좌초되었으며, 역사 전개의 다양성은 역사적 합법칙성이라는 사이비 보편주의에 휩쓸렸다. 근대를 전제로 해서만 의미를 갖는 조선사 연구가 주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역사학의 근대주의다. 사회구성, 구조, 민중, 농민 등의 키워드로 상징되는 발전된 성과를 담은 역사학은 넓은 평원을 놓아두고 돌아오기도 힘든 골목길을 찾아든 셈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이런 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다시 역사학 원론을 생각하자. 역사는 인간의 경험이다. 경험이란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부정적인 경험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고, 긍정적인 경험은 살려내야 할 것이다. 근대주의는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 첫째, 근대주의는 조선 문명에서 경험을 똑바로 바라볼 가능성을 봉쇄했다. 근대주의자들은 오로지 근대로 귀결될 수 있는 경험만 쳐다봤다. 이런 식의 논리를 결과론이라고 한다.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를 비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조선 문명의 가치가 무시됐다. 흔히 조선 문명의 어떤 측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곧 그에 대해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드라마가 아닌 이상 누가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현재 우리삶에 이러저러한 문제나 불합리가 있는데, 그걸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사회의 경험이 있다면 거울삼아 살펴보자는 것이 아닌가. 그게 역사 공부의 본래 의미 아니었나.

이것이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봉착한 현주소다. 역사학자들이 골목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가운데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다른 학문 분과에서 평원을 누비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할 것이다. 하긴 역사 연구가 어떤 학문분과의 전유물이 된 것은 근대의 현상, 즉 언젠가 사라질 역사적인 현상이니까.

침, 위생, 그리고 봉건 근대주의 환상을 버려라!
인식론적 반성

근대주의자들은 빨리 중세를 해체하고 근대로 와야 했다. 그것을 지체시킨 요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강화, 즉 조선을 유지시킨 힘은 오히려 저해요인으로 매도됐다. 대체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한 계해반정(인조반정·1623년) 이후 시대에 대해선 오직 ‘근대적 요소’를 발견하는 연구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기형적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계해반정 이후 백성의 삶을 더 편안히 해주기 위해 취해진 세금, 부역, 신분제의 개혁은 개량적 조치로 폄하됐고, 실체도 흐릿한 ‘탈주자학’과 ‘반주자학’의 논리가 풍미했다. 결국 근대주의자들의 사이비 보편사관과 조급증 탓에 300년 동안 조선 사람들은 상황의 타개 능력도, 시스템의 혁신 능력도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경직됐던 것은 조선후기 성리학자들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진작부터 사실과 가치의 측면에서 목적론적으로 설정되었던 근대(현대)가 사실과 가치 두 측면에서 목적론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는 사실과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극히 일부만이 근대로의 길을 갔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근대는 노예 또는 식민지라는 폭력적 상황 속에서 다가왔다. 아니, 근대로 이행한 그 일부 지역에서조차 자본을 탄생시킨 농민층 분해는 정말 농민의 신체를 분해하는 강도로 진행되었고, 살인적인 아동노동까지 강요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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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려대 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국가기록원 팀장으로 기록관리도 공부했다.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기록한다는 것’(너머학교),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고대 민연) 등 10여 편의 저·역서가 있으며, 그 외 논문 50여 편이 있다.


가치의 측면에서 근대가 더 이상 가야할 유토피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은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근대주의자들이 그렇게 선전하던 신분해방은 계급대립으로 대체되었음이 드러났고, 자유는 토지와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 즉 박탈이 본질임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근대적 인간은 노동력만 팔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간, 노예나 농노가 누렸던 최소한도의 안전망조차 확보할 수 없는, ‘다른 인간이나 사회의 보호로부터’ 자유로운 분리된 인간을 의미했다. 인류 문명 사상 처음으로 곡식 재배와 물품 생산이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이른바 ‘진보된 근대’임이 밝혀졌다.

더 큰 문제는 근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역사인식에 들어가면 근대주의에 포섭된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럽 계몽주의자들에게 봉건사회는 암흑시대였듯이, 이 땅의 깨어 있는 시민과 지식인들에게도 조선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해체기로 인식되는 것이다. 인생에 그냥 지나갈 시기가 없듯 역사에도 그런 시기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는 특수한 인식체계, 에피스테메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현대인처럼 진보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 문제는 적당한 시기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신동아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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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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