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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⑤

람보르기니 vs 페라리

남성의 로망, 가장 탐나는 슈퍼카

  •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람보르기니 vs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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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vs 페라리

페라리 공장 전경.

미우라가 슈퍼카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최초로 미드십(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배치해 차량의 전후 밸런스를 이상적으로 맞춘 방식)을 채택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이후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미우라로 시작된 미드십 방식은 경쟁사인 페라리를 비롯해 타 브랜드들이 잇따라 따라 하면서 지금까지 정통 슈퍼카의 상징으로 이어져왔다.

미드십 엔진 방식은 1950년 말부터 F1 그랑프리 경주차에 쓰이기 시작했지만 양산형 자동차에 바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람보르기니가 미우라에 처음으로 이 방식을 도입했을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미우라는 보란 듯이 성공해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를 모두 제치고 최고시속 295km라는 경이적인 세계 기록을 세운다.

결국 엔초도 “미드십 엔진 방식은 매우 우수하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했고, 이때부터 페라리도 미드십 방식이 적용된 모델을 생산하게 된다. 페루치오는 당시 “이제 페라리가 우리를 의식할 뿐만 아니라, 흉내까지 내고 있다”며 마음껏 조롱했다. 페라리를 모방하는 브랜드에 불과하다는 비웃음을 듣던 람보르기니로서는 일거에 통쾌한 복수를 한 셈이다.

미우라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73년, 람보르기니는 미드십의 전설 람보르기니 카운타크(Countach)를 양산한다. 람보르기니의 존재를 확고히 알린 이 모델은 몸을 구겨 넣듯 타야 하고 꽉 막힌 후방 시야에 좁은 실내 등 여러 가지 불편함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것은 엄청난 힘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성능, 흉내 내기도 어려운 혁신적인 디자인 덕분이다. 카운타크는 지금도 람보르기니 하면 떠오르는 시저스 도어(Scissors door·가위처럼 일자로 위를 향해 열리는 문)를 최초로 채택한 모델이기도 하다. 특유의 낮은 전고와 넓은 차체로 일반 도어를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차는 5.0L V12 엔진을 얹어 최대출력 446마력, 최고시속 300km라는 경이적인 성능으로 페라리를 위협했다.

하지만 상승일로를 걷던 람보르기니도 1970년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첫 위기는 트랙터 사업에서 시작됐다. 남미에서 대규모 주문이 취소되면서 수요 증가에 대비해 신규 공장을 짓던 람보르기니는 큰 재정 손실을 입었고, 마침 노사분규까지 겹쳐 1974년 트랙터 사업을 피아트에 넘긴다. 여기에 1, 2차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페루치오는 람보르기니의 지분 대부분을 스위스 투자사에 넘기고 남은 지분마저 친구 르네 라이머(Rene Leimer)에게 넘긴 후 은퇴를 선언한다.



페라리 또 한 번의 도약

미우라와 카운타크에 잇달아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은 페라리는 더욱 강력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 몰두한다. 이렇게 탄생한 모델이 슈퍼카 신드롬을 일으켰던 1984년 작품 288GTO다. 페라리 최초로 2.9L V8 엔진에 트윈 터보 차저를 장착해 최대출력 400마력, 최고시속 304km를 달성한 모델이다. 하지만 288GTO의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엄청난 성능과 속도를 자랑했지만, 경기 중 사고로 선수와 관중이 사망하며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페라리는 288GTO 후속모델 개발에 착수해 1987년 페라리 40주년 기념모델 F40을 발표한다. 페라리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이 차는 엔초 페라리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개발한 유작이지만, 람보르기니를 겨냥해 만든 모델은 아니었다.

당시는 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 격인 포르셰 사의 포르셰 959가 주목받던 시기였다. 포르셰 959는 2.8L 수평 대향 V6 엔진에 최대출력 450마력, 최고시속 315㎞h를 자랑하는 4륜구동 슈퍼카로, 당대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며 스포츠카의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이 차는 F40이 공개되기 몇 달 전에 양산되기 시작했다.

결국 페라리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되찾아오기 위해 F40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 후륜구동 2인승인 F40은 무게 1100㎏에 배기량 3.0L의 DOHC V8 엔진을 탑재했다. 배기량은 크지 않으나 트윈 터보에 힘입어 최대출력 478마력에 최고시속은 무려 324㎞를 냈다. 정지 상태에서 100㎞까지 3.8초에 도달하며, 페라리는 이 차 덕분에 1987~1989년까지 세계 최고속 양산 차의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다.

F40은 당초 400대만 한정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주문 물량이 쏟아지며 생산을 마친 1992년까지 모두 1310대가 제작됐다. F40은 특기할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차량을 주문하고 받으려면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출고 당시 약 1억8000만 원이던 차량가격은 ‘가장 빠른 차’‘엔초 페라리의 유작’이라는 별칭이 붙으며 최근엔 5억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엔초 페라리는 F40 탄생 이듬해 사망했다.

전 세계의 슈퍼카 중에서 못생기기로 손가락에 꼽히는 ‘엔초 페라리’는 창업자 엔초 페라리를 기리기 위해 2002년 출시한 차량으로 6.0L V6 엔진에 최대출력 660마력 최고시속 350km의 성능을 뽐낸다. 당대 최고인 페라리 F1팀에서 개발한 이 차는 일반 도로를 달리는 최고의 차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F1 드라이버 역사상 가장 우수하다는 살아 있는 전설 미하엘 슈마허가 개발에 참여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던 이 차는 당시 349대만 한정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구매자들의 요구로 550대를 추가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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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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