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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호에서 T-50까지 그리고 KFX를 향해

한국의 항공산업

  •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부활호에서 T-50까지 그리고 KFX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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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호에서 T-50까지 그리고 KFX를 향해

2004년 복원된 한국산 항공기 부활호

외국회사 로비에 자주국방 실종

항공기를 독자 개발하려면 기체 설계에 필요한 항공역학적 지식과 해석 능력,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실제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부품 생산기술과 조립기술, 시험비행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당시는 이 능력을 갖추는 데 필수적인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었다. 면허생산이나 공동생산이 항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제공호 생산은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가중되던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면허생산은 외국에서 개발을 완료한 항공기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거나 일부 부품만 국내에서 생산해 조립하는 것이라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과는 거리가 있다. 제공호의 면허생산은 1986년 종료됐기에 어렵게 마련한 생산시설과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대두되었다.

그 무렵 항공업계에 ‘우리가 직접 항공기를 개발해보자’는 자주국방 세력이 등장했다. 국방과학연구소 내부에서 ‘미국 전투기로부터 독립하자. 언젠가는 우리 전투기로 영공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강력히 대두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군용 전술통제기와 육군이 쓸 30인승 경수송기를 개발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5공화국 정부는 한국의 독자적 무기체계 개발을 견제하는 미국을 의식한 듯, 검토단계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묵살했다. 미 방위산업체의 집요한 로비에 흔들린 것이다. 전두환 정부는 노스롭 사가 F-5를 이을 전투기로 내놓은 F-20 도입을 검토했다. 그런데 1986년에 경기 성남공항에서 시험비행을 하던 이 전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F-20 도입이 중단됐다.



5공 세력은 당시 미국이 새로 내놓은 F-15 도입을 추진하다 거절당했다. 전두환 정부는 미국 전투기를 도입해 전력을 강화하고 동맹을 강화하자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제공호 생산으로 이미 항공산업 기반이 마련됐으니 자주적 방위력을 확보하기 위해 항공기를 개발하자는 대의가 확산됐다. 그리하여 1985년 전두환 대통령 지시로 공군과 각 분야의 항공전문가들이 모여 항공산업육성위원회를 결성했다. 범정부적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에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군 전력 증강의 핵심은 항공력이다. 미국이 유도무기 개발 제한의 굴레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 능력과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훈련기로 도약한 항공기 개발

이 시기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이 대한항공이 독점적으로 구축한 항공산업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존 사업인 제공호 생산은 종료되고 후속사업은 묘연한 상황이라 국민의 피와 땀으로 조성한 대한항공의 항공기 생산시설은 활용되지 못했다. 각종 치공구가 방치되는 등 쌓아온 항공산업의 성과가 유실되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이런 난맥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항공기 개발사업이 요구되었다. 여기에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뛰어듦으로써 항공산업은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항공의 미래를 개척할 사업의 우선 고려 대상은 훈련기 개발이었다. 1987년에 국방과학연구원 연구팀이 내놓은 훈련기 개발사업을 검토한 국방부는 국과연이 기본훈련기를 개발하고, 공군이 고등훈련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1988년에 착수한 것이 기본훈련기를 개발하는 KTX-1 사업이다.

KTX-1사업은 터보프롭 엔진으로 기술 난도가 낮은 저속미 초중등 훈련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개발 업체로는 대우중공업이 선정되었다. 대우중공업은 사내에 ‘항공결사대’를 조직해 550마력의 엔진을 탑재한 KTX-1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KTX-1 시제기를 제작해 시험비행을 할 때 갑자기 조종석이 사출돼 시제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국내 기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해외 도입으로 훈련기를 확보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 KTX-1은 시험비행을 하면서 계속 출력을 높였다. 1991년 12월 12일 첫 비행에 성공한 KTX-1은 ‘여명(黎明)’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올 때는 950마력 엔진으로 바꿔 달고, 이름도 ‘웅비(雄飛)’로 변경되었다. 영어 이름은 KT-1이 되었다. KT-1은 2000년부터 공군에 납품돼 노후화된 T-37 중등훈련기를 대체했다. 국산 항공기로서는 최초로 터키,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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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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