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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 신기록 쏟아낸 우주 자이언트

러시아의 우주 개발사

  • 임석희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shlim@kari.re.kr

‘인류 최초’ 신기록 쏟아낸 우주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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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쉬코와 이사예프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실용 로켓엔진개발학파를 만들었다. 이 학파의 이론적 토대는 1930년대 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로켓 개발 기술을 근거로 했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발사체와 액체로켓엔진 개발을 시도함으로써 열역학, 유체역학, 가스동력학, 열전달 이론, 구조강도 이론, 고강도 금속학, 내열소재, 추진제 화학, 측정기술, 진공 기술, 플라스마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유도했다.

1950년대 초반 켈디쉬, 코첼니코프, 이쉴린스키, 세도프, 라우셴바흐 등은 우주비행과 관련된 수학모델링과 탄도항법에 관한 이론을 연구했다. 이로써 우주비행을 실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이 해결되고 무중력 이론 등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새로운 수학적 해법을 적용하고, 최신 성능의 컴퓨터가 개발되면서, 우주궤도역학 설계, 비행 프로세스 제어 같은 가장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학문인 우주비행역학이 탄생했다.

먀시셰프, 첼라메이 등이 이끌었던 설계국-52(OKB-52, 현재는 NPO Mashnostroenie)는 대륙간탄도로켓인 UR-200, UR-500,UR-700 등에 꼭 필요한 특수 고강도 외피의 대형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국제우주정거장의 모태가 된 유인 우주선 살류트, 알마스, 미르를 개발하는 데 사용되었다.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드는 데 사용된 각종 모듈인 크반트, 크리스탈, 프리로드, 스펙트르, 자랴, 즈뵤즈다 등을 개발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설계국-52는 흐루니체프 공장과 협력해 새로운 발사체 시리즈인 ‘앙가라’, 소형 우주선, 그리고 국제우주정거장용 모듈 개발을 성공시켰다. 설계국-52와 흐루니체프 공장을 합병해 러시아 최대의 우주과학생산 센터인 흐루니체프사가 만들어졌다.

1975년 7월 세계 우주 개발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났다. 초속 7.8km에 달하는 우주속도로 운행 중이던 소련의 소유즈 우주선과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우주공간 도킹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성공으로 국제협력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국제우주정거장이라는 국제 공동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 흐루니체프 사가 기술적 리더로서 국제협력을 주도했다.



탄도미사일 기반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얀겔이 지도하는 설계국 유즈노예(SDO Yuzhnoye, 현재는 우크라이나 소속)가 수행했다. 이 설계국은 우트킨의 지도로 중형 발사체인 ‘제니트-2’를 개발했다. 제니트-2는 2세대 로켓의 대표주자다. 저궤도위성 발사체로 제니트-2보다 뛰어난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발사체와 우주선의 유도제어 시스템도 급속히 발전했다. 독일에서 로켓 기술을 습득한 빌류긴은 1946년 제어 관련 설계국인 ‘연구소-885’를 설립해 초기 로켓인 R-1의 자이로스코프 유도제어 시스템과 비행용 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설계국은 상당히 신뢰성이 높은 발사체 제어 시스템도 개발했다. 그리하여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하던 1957~58년엔 수십km의 궤도 투입 오차가 발생했지만, 1960년대 중반에는 달에 내릴 때 목표지점에서 5km 이내에 착륙할 수 있었다.

우주학의 발전으로 이제 우리는 우주통신, 텔레비전 방송과 재송출, 항법 등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게 됐다. 1965년 인류는 지구에서 2억km 떨어진 화성에서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낼 수 있었다. 1980년엔 15억km 거리의 토성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코룔로프의 시제설계국 OKB-1의 분소로 출발한 ‘응용기계 과학생산연합(NPO PM)’은 레셰트네브 지도하에 우주선 개발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다.

목성 화성에도 탐사선 착륙

이제 세계는 운용지점 두 곳만 있으면 거의 모든 나라와 연결될 수 있는 통신위성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신뢰도가 높고, 경제·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이런 재송출 시스템 덕분에 위성이나 우주선, 탐사선 같은 우주비행체에 대한 동시 제어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제어를 위해 위성항법 시스템이 개발됐는데, 이 시스템은 오늘날 바다와 하늘, 우주를 떠다니는 모든 운송수단에 적용되고 있다.

유인 우주선 분야에도 질적인 발전이 있었다. 1960~70년대에 이미 우주선 밖에서 작업이 가능함을 증명했고, 1980~90년대에는 인간이 미세중력 하에서 장기간(1년 정도)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구물리와 관련된 실험과 천문학과 관련된 실험들이 유인우주비행 프로그램을 통해 수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수행할 때는 우주의학과 생명유지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다. 장기간 우주비행을 할 경우,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초기의 우주 실험은 지구 촬영이 대세였다. 우주에서 지구를 관찰함으로써 지상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자연자원을 새로 발견해 개발하게 되었다. 지구 자원의 합리적인 개발과 활용의 다양성을 깨달은 것이다. 코즈로브가 이끈 시제설계국-3(OKB-3, 오늘날은 ‘프로그래스 중앙설계센터’로 불린다)는 수많은 지구 관측사진을 찍고, 이를 지도로 만들었다. 지구 자연자원을 연구하고 환경을 모니터링했으며 R-7A를 기본으로 하는 중형 발사체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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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희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shlim@ka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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