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별책부록 | 이제는 우주다

非군사에서 군사로, 전범국가의 놀라운 집념

일본의 우주개발사

  • 양욱 / 인텔엣지(주) 대표 naval@nate.com

非군사에서 군사로, 전범국가의 놀라운 집념

3/5
유도장치는 로켓 개발 시 필수 요소다. 그러나 일본은 정치적인 이유로 유도장치 개발에 제한을 받았다. 탄도미사일 유도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유도장치를 개발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할 때 미국과 소련은 인공위성은 물론이고, 유인 우주비행까지 성공했다. 프랑스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유도장치 없이 다단계 발사체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일본은 줄기차게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1970년 2월 11일 비유도방식의 고체로켓인 람다(L)-4S 5호가 올라가 인공위성 ‘오스미(おおすみ)’를 지구 궤도에 띄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24kg에 불과한 초소형 인공위성 발사였지만, 일본은 소련과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자력으로 위성을 띄운 국가가 되었다.

람다-4형은 9번 발사돼 5번 실패했다. L-4S는 1966년 9월 26일 최초로 발사되고 1974년 9월 1일 마지막으로 발사됐다. 그리고 일본은 뮤(Mu) 로켓 개발에 들어갔다. L-4S의 기술을 바탕으로 뮤 로켓의 초기형인 M-4S를 개발했으나 1호기는 발사에 실패했다. 뮤 로켓에도 유도제어장치를 탑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도제어장치 없이 계산만 정확해도 발사에 성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기상과 풍향 변화가 극심하므로 정확한 계산은 소용없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엔진 성능 개량에 집중했다. 그리고 유도제어장치 사용이 허가돼 ‘추력편향제어장치(TVC·Thrust Vector Control)’를 장착하게 됨으로써 뮤 로켓의 정밀도는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 연구도 이토카와 박사가 이끄는 도쿄대학의 우주항공연구소(ISAS)가 주도했다.

고체연료를 향한 우주항공연구소의 고집 덕에 1985년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전장 27m의 M-3S-2 로켓으로 핼리혜성 탐사기인 ‘스이세이’를 중력권 밖으로 발사시킨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고체추진 로켓으로 지구 중력권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M-3S-2의 성공으로 안전성이 증명된 뮤 로켓으로 일본은 20기 이상의 위성을 발사했다. ‘하큐초’‘히노토리’‘아케보노’‘히덴’ 등 주요 과학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돼, 중요한 데이터를 갖고 지구로 귀환했다. 1990년대에 뮤 로켓은 M-5라는 세계 최대의 고체로켓으로 발전했다.

도쿄대 ISAS가 고체로켓을 발전시키는 사이 과학기술청의 우주 개발추진본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연구를 했다. 20여 명의 연구진으로 시작한 우주 개발추진본부는 도쿄대에서 제공받은 고체로켓을 바탕으로 LS-A 로켓(고체로켓과 액체로켓을 연결한 2단식 로켓)을 개발해 시험발사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노하우를 축적해 LS-A의 발사를 성공시키고 이어 LS-C로켓을 개발했다. 또 NAL-6, NAL-16과 SA, SB 등 ‘S 시리즈’ 로켓을 발사하기도 했다.

우주 개발추진본부는 1969년 10월 1일 우주 개발사업단(NASDA)이라는 과학기술청 산하의 특수법인으로 바뀌었다. 개발사업에 힘이 실린 것이다. 추진본부 시절에는 방위청의 니이지마 시험장을 사용했지만, 1968년부터는 다네가시마(種子島)에 우주센터를 건설해 조직적으로 우주 개발을 하게 되었다. NASDA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백했다. 문부성 소관의 도쿄대 ISAS와는 달리 상용(商用) 로켓 실용화를 목표로 잡았다.

양 조직의 관할도 정해졌다. 직경 1.4m 이하의 과학로켓은 ISAS가 맡고, 1.4m 이상의 대형 로켓은 NASDA가 담당하는 것. 1981년 도쿄대학의 ISAS는 문부성 산하 우주과학연구소(역시 준말은 ISAS)로 바뀌었다. 그렇게 된 이후에도 ISAS와 NASDA 간의 경쟁은 계속되었다. 우주 개발을 놓고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은 계속 경쟁하게 된 것이다.

상용 로켓 개발에 나선 NASDA

새로 발족한 NASDA는 5년 이내에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실용 로켓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72년까지 150kg의 위성을 고도 1000km에 올리겠다’는 Q계획과 ‘1974년까지 100kg의 정지위성을 발사한다’는 N계획을 입안한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액체로켓을 개발한다는 엄청난 목표도 세웠다. 경험이 일천한 NASDA로서는 이루기 힘든 목표였지만 개발계획은 의외의 도움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미일우주협정에 따라 미국의 액체로켓 기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로켓 기술을 보유하면 탄도미사일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다. 일본은 ISAS를 통해 고체로켓을 자력으로 개발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일본을 관리감독하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이전해주고 일본의 로켓 개발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미국은 일본과 우주협정을 맺고 미국 우주 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한 액체연료 로켓인 ‘델타’기술을 전수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NASDA는 Q-N 계획을 정지위성을 올리는‘신N계획’으로 수정했다. 신N계획에 따른 제1세대 로켓이 N-I인데, 이 로켓 제작은 미쓰비시가 맡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기술을 도입하되 일본 기술을 결합해 1970년부터 3단의 N-1 로켓을 개발하기로 했다. N-1 로켓에서 1단과 3단은 미국 델타로켓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2단만큼은 우주 개발사업단 시절의 NASDA가 Q계획으로 개발한 LE-3 엔진을 개발해 만들기로 했다.

3/5
양욱 / 인텔엣지(주) 대표 naval@nate.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非군사에서 군사로, 전범국가의 놀라운 집념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