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의 결합체다. 사람의 몸은 생겨난 뒤에도 계속 천기와 지기를 섭취한다. 천기는 코로 섭취하고, 지기는 입으로 섭취한다. 코는 위로 천기를 섭취하는 곳이고, 입은 아래로 지기를 섭취하는 곳이므로, 코가 위이고 입이 아래며, 그 사이가 인중(人中)이다. 사람이 죽으면 모였던 천기와 지기가 도로 흩어진다. 천기 부분은 위로 올라가 하늘로 가는데 이를 ‘혼(魂)’이라 하고, 지기 부분은 아래로 내려가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를 ‘백(魄)’이라 한다. 조상을 초청한다는 것은 이 혼과 백을 초청하는 것이다. 향을 피워 연기를 하늘로 보내는 분향(焚香)은 하늘에 가 있는 혼을 초청하는 예식이고, 모사(茅沙)에 술을 붓는 관주(灌酒)는 땅속에 가 있는 백을 초청하는 예식이다. 관주는 원래 땅에서 해야 하지만, 번거롭기 때문에 땅을 제사상 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것을 모사라 한다. 모사는 모래를 담은 그릇에 풀을 꽂는 것으로 땅을 상징한다. 분향과 관주를 하고 나면 조상이 온 것이므로 모두 다 절을 하여 예를 표한다. 분향과 관주가 실제로 조상의 혼령을 부르는 방식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사진을 꺼내 드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방식일 뿐이다.
天氣의 魂, 地氣의 魄
조상에게 모두가 인사를 한 뒤에는 술을 따라서 올리는 예를 세 번에 걸쳐서 하는데, 이를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이라 한다. 헌관을 결정하는 방식은,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적당하게 정하지만 조촐한 가정에서는 맏이가 초헌관, 둘째가 아헌관, 며느리가 종헌관을 한다. 맏이가 없고 맏며느리가 있는 경우에는 맏며느리가 초헌관을 해도 좋을 것이다. 세 차례 술을 올린 뒤에도 술을 더 올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번거로움을 피해 이미 올려놓은 술잔에 술은 약간 더 따르는데, 이를 첨잔(添盞)이라 한다.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경우라면 첨잔을 하기보다는 모두가 차례로 술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술을 올린 뒤에는 차린 음식을 잘 드시라는 내용의 축문을 읽은 뒤에 한참 기다렸다가 하직인사를 하고 제사를 끝낸다. 제사를 끝낸 뒤에는 다 함께 제사상에 올렸던 천국의 음식을 만끽한다. 제사상에 올렸던 술도 돌려가며 모두가 마신다. 이때만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마시도록 한다. 어린이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그래서 술을 마시라고 하지 않고 음복(飮福)을 하라고 한다. 음복을 하는 일에 남녀노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제사의 방식은 제사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감해도 좋을 것이다. 제사는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제삿날은 조상이 돌아가신 날 전후로 하되, 모두가 모이기 좋은 날짜로 정해도 좋을 것이다. 제사 지내는 시간 또한 모두가 참여하기 좋은 시간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사 때의 복장은 따로 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만나고 싶은 귀중한 사람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갖추어 입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화합에 중요한 목적이 있으므로 화합에 저해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화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벤트를 겸하면 좋을 듯하다.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면서 소풍이나 산행을 겸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고적답사를 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근처에 있는 어른을 찾아뵙고 귀한 말씀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제사와 우상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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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하나 덧붙일 것은 제사가 우상숭배인가 하는 문제다. 특히 기독교에서 제사를 거부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주로 우상숭배인데, 그것은 우상숭배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 중에 ‘하느님’이라는 개념에 대한 것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의식 속에 자기가 판단하는 것들을 집어넣는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거의 예외가 아니다. ‘하느님이란 여차여차한 존재다’라고 하는,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의식 속에 집어넣고 만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이라고 말할 때, 그 하느님은 실제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의 의식 속에 넣어놓은 하느님이다. 의식 속에 넣어놓은 하느님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열이면 하느님은 열이 되고, 사람이 백이면 하느님도 백이 된다. 사람이 자기 의식 속에 하느님을 넣을 때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넣는다. 그런 하느님도 실제 하느님이 아니다. 그런 하느님은 넣은 사람의 아바타일 뿐이다. 죄를 많이 짓고 난 뒤 “하느님,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겠지요?” 하고 기도하면 “그래,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며 응답하는 하느님이다. 그런 하느님이 우상이다. 그런 우상은 매우 위험하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못할 짓이 없다. 수많은 종교전쟁도 거의가 우상숭배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마찬가지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아바타로 만든, 그런 하느님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신앙인 중에 더 많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의 의미를 왜곡해 그것을 제사에 갖다 붙였다. 참으로 큰 실수를 했다.
어쨌든, 이번 추석명절은 제사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