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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③ 예수와 소크라테스 재판

“기득권에 저항한 자, 죽어라!”

정치범의 탄생

  •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기득권에 저항한 자,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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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

당시에는 명절에 죄수 1명을 석방하는 관례가 있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한 무리는 살인죄를 저지른 바라바를 풀어줄 것을 간청했다. 빌라도가 “예수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했다.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로마법에 따르면 정치범은 십자가형에 처해야 하므로 신성을 모독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빌라도에게 예수는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예수의 재판 역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가 살았던 유대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유대인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는데도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았다. 유일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은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나 그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스스로 ‘메시아’라 밝히는 이가 나타났다. 예수였다. 그러나 유대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당시 유대인은 예수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로 여겼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유대인 처지에서는 매우 심각한 잘못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예수는 율법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예수는 공개적으로 죄인들 세리들과 함께 식사했고, 문둥병자를 만졌으며, “모든 음식이 다 정결하다”(마태복음 7:19)는 유대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도 했다.

예수가 율법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는 명백하게 율법을 어긴 것이었다. 예수가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오래된 병자를 고친 것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었으며, 예수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고 말한 것은 신성모독의 문제로 사안이 확대됐다. 예수는 중풍환자를 치료했으며 한 여인에게 향유를 붓고는 죄 사함을 얻었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과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예수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감히 죄를 사할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득권을 위협한 예수



산헤드린 재판에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의 메시아 주장에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신성모독을 주장한 것은 평소 예수가 유대교 율법을 무시하고 불경한 말을 해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유대교에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 말고도 있었고, 그들이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수는 단지 유대교 권위를 훼손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일부 학자는 산헤드린 재판 자체를 부정한다. 유대교에서는 야간에 재판을 하지 않는 데다 복음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이 재판 과정을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예수가 당시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예수를 혁명 지도자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유대교의 잘못된 인습을 타파하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인을 해방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체제 전복을 꾀할 수 있는 인물로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온 뒤에도 그를 곧바로 체포하지 않았고 대제사장과 그의 무리가 예수를 잡아 데려왔을 때도 예수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럼 점에서 예수가 정치적으로 로마에 큰 위협을 주는 인물로 인식됐던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예수를 위험 인물로 판단했다면 빌라도가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의 지지자들을 그대로 두었을 리 만무하다. 고대 국가에서 반란이나 정변과 관련한 사안에서 주모자와 관계된 이들은 철저하게 조사해 가혹한 처벌에 처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돌아간 뒤 누군가 예수에 대해 묻자 그가 예수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다만 빌라도를 위시한 로마 통치자 처지에서는 예수가 강조한 평등 사회 구현과 빈민 구제 등 여러 가지 개혁적 주장이 예수가 로마에 치명적 위협이었느냐를 떠나 궁극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기존 질서와 기득권 계층에 이해와 관련해 거슬리는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떤 점에서는 고의로 죽음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예수가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성전의 붕괴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행동과 언사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수가 몰랐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를 체포하고 산헤드린 재판을 열게 된 것에는 예수의 성전 소동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범죄의 순기능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귀신의 왕, 사탄과 같은 존재인 ‘바알세불’에 사로잡힌 거짓 예언자로 매도한 것은 예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처벌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귀신 들린 거짓 예언자를 처형한 것은 유대교 율법에 따른 합법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기득권의 심기를 거슬렸다. 기존 사회질서를 흔들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사형에 처해진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고, 꽉 막힌 현실을 극복해 이상(理想)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혔고,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범죄자’로 매도됐다.

고대 국가에서 왕권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역시 죽음으로 저항을 실천했다. 그리고 세상은 달라졌다, 그들이 예상한 것처럼.

범죄에 살인이나 절도만 있는 게 아니다. 범죄는 복잡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성자(聖者)들만 사는 곳에서도 범죄는 필요하다”는 뒤르켐의 말 뜻은 예수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통해 명확해진다.

범죄는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하나의 동력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 예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같은 ‘범죄자’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5월 26일 소크라테스 모의재판의 평결은 유·무죄가 5대 5로 갈렸다. 동수(同數)이므로 결국 소크라테스는 방면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석방 판결이 나왔지만 둘로 나뉜 배심원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고대 아테네의 배심원이 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데 반해 올해 모의재판의 배심원은 모두 법률전문가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2400여 년 후 그가 인류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알고 재판에 임한 배심원의 선택이기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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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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