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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周遊天下 ⑥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이불재(耳佛齋) 주인 정찬주 소설가

  • 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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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이 많은가?”

“있는 편이다. 처음에는 고향에 오니까 중·고등학교 동창이 많이 찾아왔다.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다. 인정 있게 대했다가는 일을 못하게 되니까. 냉정하게 대했더니 친구들의 방문은 줄어들었다. 독자들은 한 번씩 찾아온다. 한번은 어떤 노신사가 이불재의 툇마루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했더니, ‘쌍봉사에 왔다가 처마 밑 풍경 소리에 이끌려 여기에 왔다’는 대답이었다. 노신사는 절과 암자를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설암(舌癌)에 걸렸었는데, 죽으려고 보니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남은 인생 산천유람이나 하던 참에 눈에 들어오는 책이 ‘암자로 가는길’이었단다. 이 책에 나오는 전국의 암자를 찾아 여행하다보니까 선고 받은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 6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책을 쓴 정찬주가 바로 저입니다’ 하니까 노신사는 깜짝 놀랐다. 한참 동안 말을 잊고 있다가 ‘너무 미안합니다. 그 책의 저자 정찬주 선생이란 말입니까? 생명의 은인 집에 왔는데, 빈손으로 와서 너무 미안합니다’ 하고 당황해했다. ‘선물이 없어도 됩니다. 생명을 연장했다는 그 말 자체가 ‘암자로 가는 길’을 쓴 저에게는 큰 선물입니다’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인상적인 방문객이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불재는 자연의 평화로움, 시골 생활의 느긋함, 문필가의 서권기 문자향이 어우러진 집이라 전국에서 방문객이 찾아온다. 독자도 있고, 유명인사도 있고, 우연히 들른 과객도 있다. 필자도 휴휴산방에서 살아보니까, 방문객이 너무 많아도 문제이고 너무 없어도 적막하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정 작가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니 대답은 간단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다.

중국의 선승 마조(馬祖)의 제자가 대매(大梅) 법상(法常)이다. 대매 법상의 가풍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 작가는 수연행(隨緣行)을 일상의 기준으로 삼는다. ‘인연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수연행은 달마대사의 가르침인 이입사행(二入四行) 가운데 사행(四行)의 하나에 들어간다. 이입(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이입은 경전 공부로 이치를 깨달아 도에 들어가는 노선이다. 사행(四行)은 행동으로 들어가는 4가지의 공부방법으로, 수연행(隨緣行), 보원행(報寃行), 무소구행(無所求行), 칭법행(稱法行)이다.

수연행은 인연을 받아들이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너무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순응하며 원망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 경지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것이 수연행을 풀어서 설명한 셈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50세는 넘어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일상에서 재수 없는 사람과 인연이 엮여 괴롭힘과 피해를 보는 경우가 한두 번이었던가. 그를 탓할 필요가 없다. 수연행의 관점에서 보면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할수록 고통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인생관이다. 수연행을 하지 못하면 겪는 고통을 외부와 타인에게 전가하는 버릇을 갖게 된다.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으니 원망과 불만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수연행의 원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왜 인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 너무 무기력한 태도가 아닌가?”

“인과(因果) 때문이다. 이런 원수가 나하고 엮인 것도 전생의 업보이고 인연 때문이다. 내가 그 원인을 만들어놓은 탓이다. 이 이치를 깨닫든지 아니면 믿어야 한다. 나는 고승을 만날 때마다 ‘인과가 있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버릇이 있다. 고승들은 즉시로 ‘인과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주곤 했다. 고승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오늘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나중에 인과로 연결된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이러한 인과의 이치를 설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연결되게 돼 있다. 결국에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인과에 집착하면 일상생활이 너무 무겁게 되는 것 아닌가. 이 말 한마디가 내생에 어떤 과보로 연결될까를 의식하다보면 한마디를 하기도 부담스러워진다. 자칫 잘못하면 인과가 현상의 삶을 얽어매는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인과가 이데올로기가 되면 삶을 무겁게 하는 굴레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체화(體化)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몸에 녹아들어야 한다. 불교는 도그마를 경계한다. 인과도 마찬가지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를 보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문구가 있다. 인과가 몸에 익으면 인과를 지키기는 하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되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과가 그물이 될 수 있다. 나도 아직 ‘바람처럼’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물에 걸리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전에 이불재에 자주 오셨던 법정 스님은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리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의 3가지 문구를 강조했다. 이 3가지 문구가 팔만대장경의 요체라고 당신은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법정 스님이 나에게 준 화두가 3가지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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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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