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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⑦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영화 ‘광해’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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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허균(류승룡 분)은 ‘홍길동전’의 인상과는 달리 시대의 권간(權奸)인 이이첨과 결탁해 누릴 것 다 누리다가 그에게 제거당한 사람이었다.

광해가 교지(敎旨)를 읽는 대목이 나오는데 왕은 말로 하는 전교가 많고 그걸 승정원이 받아 적는다. 교지는 대제학 등이 쓰고 왕이 추인해 승정원에 내리면 각 관청의 서리들이 와서 베껴간다. 어디 왕이 몸소 읽는단 말인가? 그리고 상참(常參)은 국무회의, 관계부처장관회의 등을 섞어놓은 듯한 국정운영 회의인데, 근정전에서는 하지 않는다. 근정전은 예식을 하는 공간이고, 편전인 사정전(창덕궁은 인정전)에서 정무를 본다.

영화에는 중전(한효주 분)의 세력이 북인이고, 광해에 반대하는 세력이 서인으로 나온다. 당시 서인, 남인, 북인 일부는 광해군 5년 무렵 이미 조정에서 쫓겨나든지 죽었다. 아니면 아예 조정에 나오지 않든지. 이원익은 조정에 나오지 않고, 이항복은 귀양 갔다가 죽는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광해군 8년은 북인, 그중에서도 이이첨을 중심으로 한 대북(大北)의 독무대였다. 서인, 남인, 북인 일부가 나중에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왕이 교지를 읽는다?

중전의 오빠 유정호가 나오던데, 원래 중전의 오빠는 유희분이다. 북인이다. 영화에서처럼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지사가 아니라 이이첨만큼이나 권세가였다. 그래서 인조반정 후 처단된다. 광해군이 중전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김상궁(김개시=김개똥)에게 빠져서 중전에 대한 모략에도 눈감았을 정도다. 그러니 정말 하선(가짜 광해) 같은 남자가 접근했다면 마음이 어떠했을까.

허균(류승룡 분)은 우리가 ‘홍길동전’에서 받은 인상과는 달리 이이첨과 결탁해 누릴 것 다 누리다가 그에게 제거당한 사람이었다. 광해군이 허균을 죽이는 데 주저했지만, 결국 이이첨의 처리에 동의했다. 허균이 승지를 지낸 적은 있으나 도승지를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승지는 6명이어서 도승지 혼자 이러저런 일을 꾸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조판서 박충서(오랜만에 영화에 특별출연한 김명곤 분)가 광해군 때의 권간(權奸) 이이첨에 가깝다.

이이첨은 정인홍과 함께 오현종사(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의 다섯 훌륭한 학자를 국립대학 성균관의 모범으로 추앙하는 절차)에 반대해 사림(士林)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광해군 정권을 고립시킨다.

영화에 나오는 조 내관(장광 분) 같은 주변인물이 없지는 않았다. 광해군이 왜 요즘 살이 찌느냐고 물었을 때, 환관 이봉정이란 사람은, “선조 때에는 일이 바빠 살이 빠졌는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 일이 없어서 살이 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종종 내관을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할 일이다. 궁궐의 그늘에서 일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국왕도 없다. 궁궐의 나인들에 대해서도 영화는 이해가 부족했다. 사월이를 비롯한 나인들은 조선의 전문직 여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주변 인물들과 대동법

‘도 부장’(김인권 분)도 재미있는데, 영화 속 인물과 완전히 성격이 다른 인물이 있었다. 광해군 1년 강화에서 임해군을 죽인 별장(別將) 이정표(李廷彪)라는 자다. 이 자는 광해군 6년 영창대군을 죽일 때도 별장으로 호송을 담당했다. 그 사이 포도대장(현재의 서울지방경찰청장), 충청도 병사(兵使·지역 사령관)로 승진을 거듭했다. 강화 유수(강화 특별시장)까지 승진하는데 광해군은 그가 강화에 부임할 때 따로 불러 격려했다.

영화에 대동법 얘기가 많이 나왔다. 대동법은 공물로 바치던 특산물을 전세(田稅)로 바꾸어 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땅이 많은 사람은 반대한다. 그럴 수 있다. 누가 안 내던 세금 내라는 데 좋아하겠는가? 그러므로 정책을 시행할 때는 절차와 설득이 필요한 것이다. 왕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다만, 이 정책은 임진왜란으로 불명확한 경지 상황을 조사하고 공물을 조정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했다.

영화에서 산골에 살던 사월이네 집에 바다에서 나는 전복을 내라고 배정하는 데 그런 일은 없다. 단 생산되던 특산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되지 않아 사거나 남에게 비용을 주고 부탁해 내는 방납(防納)을 했는데, 그 고통이 컸다. 그런데 그 방납의 주체가 왕실, 세력가였기 때문에 개혁이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광해군 주변의 왕실과, 좌의정 기자헌 등 핵심 북인세력이 방납의 주체였기 때문에 대동법 시행이 어려웠다.

종종 역사는 관점 차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실에 입각한다. 사실을 확인하고, 그 사실을 놓고 그 다음에 관점이 개입하는 학문이 역사학이다. 사실을 부정하면 역사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역사’라는 말을 붙이려면 사실 확인부터 했으면 한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영화가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조디 포스터와 리처드 기어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영화이기도 하다. 전쟁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는데 나중에 그 남편이 가짜로 밝혀진다는 얘기다. 여기서 남편과 아내, 남편과 친구 및 마을 사람들, 재판관의 갈등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자문으로 참여했던 역사학자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나중에 같은 제목의 책을 썼다. 그가 책을 다시 쓴 이유는 영화로는 역사의 풍부함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허구와 상상력을 통해 역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듯하지만 실은 영화가 역사의 풍부함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 실례다. 실로 광해군 시대를 어떻게 2시간에 담을 수 있겠는가. 광해군 시대만 해도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 소재와 이야기가 있다. 역사공부에 관심이 있는 우리 집 작은아이는 “조선시대를 조금 아는 사람은 불편했을 영화”라고 했다.

‘역사 대중화’를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오만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원래 역사는 인간의 존재 조건이자 결과이고, 모든 사람의 것이다. 다만, 역사적 사건을 소재나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할 때 ‘역사’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관점이나 해석의 경우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광해군이 여자였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되지 않을까?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오항녕

전주대 인문대학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려대 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국가기록원 팀장으로 기록관리도 공부했다.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기록한다는 것’(너머학교),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고대 민연) 등 10여 편의 저·역서가 있으며, 그 외 논문 50여 편이 있다.


영화 ‘광해’에 대해 두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첫째, 역시 백성을 위하는 임금이 제일이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둘째,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들의 고민과 노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 나 같은 역사학자들이 먼저 더 탄탄한 연구를 내놓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더 좋아하게 된 배우들, 이야기를 만든 작가, 메시지를 고민한 감독에게 미안했다. 역사학자로서 많이많이.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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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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