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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⑮

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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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카라얀 학습법

그런데 이때 카라얀은 자신만의 학습법을 찾는다. 당시 국립 오페라극장의 모든 공연 레퍼토리 악보를 독학으로 외웠고, 오페라극장 기술책임자로 있던 삼촌의 도움을 받아 전 리허설을 방청하며 중요 부분을 체크했다. 공연을 관람하면서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놓은 음악과 대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를 통해 빈극장에서 수많은 거장의 지휘봉이 발산하는 관현악의 다채로운 기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매일 이어지는 공연 관람을 통해 카라얀은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오직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만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최상의 음악 색깔과 흐름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몸짓과 표정의 중요성을 터득하게 된다. 그래서 맞춤형 동작을 개발하고 때로는 과장된, 때로는 절제된 포즈를 연구했다. 이 모든 것이 머리에 있기 때문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눈을 감고 지휘하는 게 가능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악기 주자에게 정확한 비트와 성격을 암시해주어야 한다. 그런 지휘자가 눈을 감고 지휘하는 것은 본분을 잊은 채 음악에 도취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음악을 암보로 지휘해 단원들을 더욱 집중시키며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표현하려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많은 스포츠를 즐겼지만 지휘하는 상반신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요가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다.

1929년에 약관(弱冠)의 신출내기 지휘자 카라얀은 데뷔 무대에 선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울름 시립극장 악장으로 위촉받았다. 의욕적으로 시골 도시 울름에 도착하고 보니 울름 시립극장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돼 시설이 무척 낙후되었다. 무대는 협소했고 장치는 학예회 수준이었으며, 17명뿐인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너무나 빈약했다. 성악가들의 기량도 한참 부족했다. 하지만 도전을 즐기는 카라얀은 연습을 반복하면서 하루 18시간 이상 지휘했고, 무대와 조명, 연출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6주도 안 되는 시간에 한층 업그레이드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렸을 때 울름 시민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적은 보수에 만성피로를 달고 살았지만, 카라얀 자신을 인정하는 울름 시민을 위해 연습과 지휘를 이어갔다. 후일 카라얀은 울름에서의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지휘자의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만족했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연출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울름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하지만 울름 시는 3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계약연장을 하지 않아 사실상 그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낙담한 카라얀은 직업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지만 자신을 받아주는 오케스트라를 쉽게 찾지 못했다. 1934년 우여곡절 끝에 임시 수습 악장의 역할을 무난히 소화해내면서 그는 스물일곱 나이에 아헨 시립극장 음악총감독이 된다. 독일 최연소 음악총감독이었다.

나치당 열성 간부인 아헨 시장은 음악총감독에 취임하기 4일 전에 카라얀에게 공식적으로 나치당 가입을 요구했고, 카라얀은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당원 가입은 이후 카라얀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됐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하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린 것도, 자신의 명성을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에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나치당 가입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는 당시 모든 독일 음악인이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위해 피치 못하게 나치당원 가입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귄터 반트(1912~2002) 같은 독일 지휘자는 당원증 없이 소신을 끝까지 지키며 지휘자로서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27세에 쾰른 시립극장 악장까지 지냈다. 카라얀이 나치당원이 되지 않았다면 독일 최연소 음악총감독 자리에는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음악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1933년에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나치당원으로 가입하고 1개월 당비를 납부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그는 지인의 부탁으로 무심코 가입했다고 변명했지만, 그에게 찍힌 나치의 주홍글씨를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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