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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생활 잦으면 오래 못산다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daum.net

성생활 잦으면 오래 못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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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체세포 이론에 의하면 번식에 투자하는 자원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이 내용을 남녀의 수명 문제에 적용하면 문제에 부딪힌다. 번식에 투자하는 자원으로 따지자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 한 달에 한 번 난자를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될 것이다. 임신하고 수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회용 체세포 이론 체계로는 번식에 자원을 덜 쓰는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더 길어야 마땅하다.

또 소식, 즉 열량 제한이 수명을 늘린다는 동물 연구 결과들과도 상충한다. 열량이 제한되면 체내 전체 에너지가 줄어들어서 번식에도 나쁜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지만 열량 제한은 암컷의 번식력은 떨어뜨려도 수컷의 번식력은 그다지 줄이지 못하는 듯하다. 노화 이론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번식, 자원 할당, 노화, 수명의 관계를 다룬 이 이론은 원래 진화론적 관점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공대의 프레드라그 류분시크와 아브라함 레즈니크의 논문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진화의 관점에서 맨 처음 다룬 사람은 찰스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독일 발생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이다. 바이스만은 죽음이 내재된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고 가정했다. 세포는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한 뒤 알아서 죽게 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생물이 번식이 끝난 뒤로도 오래 산다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뒤 그 자식과 자원 경쟁을 벌이는 것은 종족 보전이라는 번식의 궁극적 목적과 상충된다. 따라서 자식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자라면 부모는 죽어야 한다. 자연이 이렇게 우리를 프로그램 해놓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번식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된 죽음이라는 개념은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방식으로 세포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현대적 이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성적 매력 유전자가 나중엔…



바이스만의 뒤를 이어 노화 이론을 더 다듬은 사람은 피터 메더워였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쌓이고 기능 이상이 점점 심해짐으로써 노화와 죽음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러나 세포에는 손상된 유전자를 수선하는 기구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손상을 막아주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메더워는 이러함에도 노화와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한다.

자연선택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를 살려두는 힘이다. 어떤 개체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자식을 잘 키워 종족 보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이를 먹게 된다. 자연선택은 이런 나이 든 개체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택 압력이 약해지므로 나이 든 개체의 몸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쌓여도 굳이 수선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결국 돌연변이가 쌓여 노화와 죽음이 빚어진다.

메더워의 이야기는 조지 윌리엄스의 이론으로 이어진다. 윌리엄스는 유전자를 주로 다뤘다. 그는 젊었을 때에는 유익한 역할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해로운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이 있다고 보았다. 즉 한 유전자가 둘 이상의 형질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젊을 때에는 번식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 해를 끼치는 역할이 예상되어도 이 유전자는 살아남는다. 젊을 때 남성호르몬을 왈칵 분비시켜 남성다운 모습, 강인함, 용맹함을 드러내는 유전자는 번식을 돕는 유익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잘 기르고 나이를 먹고 나면 바로 이 유전자가 오히려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에스트로겐을 일찍 분비시켜서 여성을 성숙시키는 데 기여한 유전자들이 나중에 유방암 발병 확률을 높이는 것이 이런 사례다.

이는 일회용 체세포 이론과 다시 연결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우리의 몸은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이다. 우리의 몸이 자식을 낳아 키워주고 나면 유전자의 번식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므로 유전자는 굳이 우리의 몸을 수선하거나 관리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노화와 죽음의 이론은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와 비슷하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몸이라는 제품엔 번식, 유지 관리, 대사 기능이 있습니다, 각 기능에 투여되는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합니다. 번식 기능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피로 현상이 나타나 유지 관리 기능이 위축됩니다. 이에 따라 몸의 수명이 단축됩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또 있다. 과학자들이 동물에게서 발견한 장수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선충에서 발견된 ‘daf-2’라는 유전자의 한 돌연변이는 선충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렸다. 일부 노화 이론대로라면 수명이 두 배 늘면 생식 능력과 대사 기능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돌연변이를 지닌 선충은 수명이 일반 선충의 두 배이면서 유지 관리 능력과 생식 능력도 정상이었다.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운명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런 사례들이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장수유전자 하나면 다 해결된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오래 살기 위해 제아무리 음식량을 조절하고 무분별한 성생활을 자제하고 심지어 거세까지 한다고 해도 타고난 유전자에는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굳이 거세를 하지 않아도 장수유전자를 지니지 않아도 보건·위생·의료·식생활의 획기적 발달로 우리의 수명이 환관 못지않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할수록 노화와 죽음의 도래를 늦추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므로 여전히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려주는 몸의 프로그램을 찾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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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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