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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1주년 기념 특별기고

“지난 세월 窓이자 벗이었던 그대여”

애독자가 말하는 ‘나와 신동아’

“지난 세월 窓이자 벗이었던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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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

날 보고 촌스럽다 한 ‘그때 그 기자’

“지난 세월 窓이자 벗이었던 그대여”
딱 걸렸네. 하하하.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거침없는 아줌마 스타일로, 통쾌하게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나와 신동아’라니. 창간기념 지면에 편집자의 작가 선택이 기막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나야말로 ‘신동아’에서 가장 꺼려야 할 글쟁이 아닌가? 그동안 나 땜에 고생했으면서 내가 밉지도 않나봐?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나는 대답했다.

“쓸게요. 신동아에 내가 잘못한 게 많으니까. 몇 매이죠? 마감은 언제지요?”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가 들었다. 특정 언론사와 나의 관계에 대한 글은…. 어렵다. 한국의 전업작가로서 가장 쓰기 힘든 글이 언론에 관한 글 아닐까? 내 식대로 마냥 그냥 내 생각을 펼쳤다가 자칫 균형을 잃으면 추락할 수도 있다. 특정 언론과 너무 사이가 가까워 보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둘의 관계를 너무 멀게 설정해도 안 된다. 그러나 내 나이 오십, 죽음도 두렵지 않은 나인데 남의 시선 따위가 두려우랴.

내가 만난, 나와 더불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신 신동아의 세 남자 이야기를 하련다. 시인이 된 뒤에 잡지사와의 첫 인터뷰. 내 총천연색 사진이 (신문광고에 실리는 반신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처음 ‘여성동아’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여성동아 기자였던 J 신동아 차장을 만날 때 나는 서른두 살이었고, 회색 옷을 즐겨 입었고, 정장이라곤 한 벌밖에 없었고, 나를 향한 카메라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촌뜨기였다. 인터뷰하러 나온 내 모습이 얼마나 엉망이었던지, 몇 년 뒤에 충정로를 걷다 마주친 J 차장으로부터 “그때는 아주 촌스러웠는데 최영미 씨 많이 세련돼졌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내게 감히 촌스럽다고 대놓고 말한 남자는 그가 유일무이하다. 흥! 자기가 아름다움에 대해 뭘 안다고 나보고 촌스럽대! 열이 올라 대꾸했던가 속으로 분을 삭였던가.

인터뷰 날 나는 미장원에 가지 않았고, (나는 파마약 냄새가 싫어서 TV 출연을 앞두고도 웬만해선 미용실에 가지 않는다) 머리도 옷도 흐트러진 편한 차림이어서, 정장에 익숙한 그에게 촌스러운 인상을 주었으리라. 서운함을 토로해도 허허 웃어넘기던, 그는 아주 착한 남자였다. 몇 년 뒤에 동아일보 출판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로부터 축구에세이를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밥을 얻어먹고 계약서에 사인한 뒤에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나는 계약을 해지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아주 나쁜 방식으로 그를 곤란하게 했으니 열 번 백 번 그에게 미안했다. 거절할 때 나는 아주 서툴다. 인생을 사는 태도로 평가하자면, 그보다 내가 더 촌스러운 사람이다.

축구 전문가 행세하게 해줘

속초에 살던 2000년 겨울에 처음 신동아에 긴 글을 기고했다.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의 베란다에 앉아 속초중학교와 설악중학교의 축구경기를 멀리서 구경하며 새 천년을 맞는 감회를 꽤 힘을 주어 서술한 글이었고, 퇴고를 되풀이하느라 손목이 아팠다. 축구팬임을 신동아 지면을 통해 처음 자랑한 뒤 여러 매체에 축구 관련 에세이를 기고했다. 황선홍 선수와의 인터뷰를 주선한 신동아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축구전문가로 행세하지 못했을 텐데.

Y 전 신동아 편집장과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나처럼 일산에 살았고 나이도 나와 비슷했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그는 내게 황선홍과의 대담을 제의했다. 나 황선홍 만난다,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얼마나 자랑했는지. 너, 황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열 가지만 내게 말해줘. 열심히 준비한 나를 그도 알아봤는지. 그날 분당의 황 선수 집에서 우리는 아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동석한 신동아 기자들이 녹음하고 정리한 대담을 나중에 보고 몇 군데 수정을 요청했는데, 내 의견을 반영해주어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S 기자는 내가 만난 언론인 중에 가장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나중에는 친해져 같이 야구장에도 갔다. 나처럼 서울내기이며 쿨한 그와의 대화를 나는 즐겼다. 그를 닮은 남동생이 있으면 참 좋겠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 그가 싱글이고 내가 10년쯤 젊었다면…. 만약의 경우를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니. 2010년 잠시 서울의 정릉에 방을 얻어 살 때다. 서울에 입성한 기념으로 신동아에 ‘최영미의 서울이야기’를 연재하마고 약속하고 나서 석 달 만에 나는 또 딴소리를 했다. 원래 6개월 연재할 계획이었는데, 나의 숙원인 장편소설을 써야겠다는 핑계로 약속을 어겼으니. 정말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용서해주시게.

ymchoi3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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